촬영에 가려진 동물들의 고통, 미디어 동물 학대
촬영에 가려진 동물들의 고통, 미디어 동물 학대
  • 문세찬 기자
  • 승인 2022.04.04
  • 호수 1545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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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지난 1월 낙마 사고로 한 달여간 방영이 중지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낙마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달리는 말을 고의로 넘어뜨려 말에 심각한 부상을 입힌 것이다. KBS는 ‘사고 이후 외견상 부상이 없어 말을 돌려보냈으나 이후 사망했단 소식을 들었다’며 무성의한 공식 입장을 밝혀 더욱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낙마 장면을 위해 말을 넘어뜨리는 촬영 방식은 해외에선 1920년대에서나 벌어지던 일”이라며 “촬영 현장에 동원되는 동물을 대하는 윤리 의식이 매우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 비판했다.

미디어 동물 학대란
미디어 동물 학대는 미디어에서 동물에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상황까지, 상당히 넓은 범위를 동물 학대로 인정하고 있다. 이 대표는 “촬영을 위해 동물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종의 동물들을 좁은 공간에 두는 것 등 동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장면들 모두 미디어 동물 학대”라 설명했다.

촬영 소품이 된 동물들
미디어 동물 학대는 동물을 소품처럼 여기는 태도에서 기인한 문제라 볼 수 있다. 동물을 한 생명체로서 존중하지 않고 촬영 도구로 ‘이용’한단 것이다. 실제로 동물이 출연하는 작품에선 기획자가 의도한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동물을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키는 등 극적인 요소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대표는 “공중파 방송에서조차 동물 출연에 관한 매뉴얼과 관리감독이 미흡해 「각시탈」, 「정도전」 등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작품에서도 동물을 소품처럼 이용해 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 앵무새 꼬리 부분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방영하기도 했다.

1인 미디어에서도 동물을 높은 조회 수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조회 수가 높을수록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구조의 1인 미디어에선 △동물을 가둬두고 탈출로를 어렵게 제작해 빠져나올 수 있는지 확인하기 △동물의 털을 염색시키기 △맵고 짠 음식을 동물에게 먹여 반응을 살피기 등 자극적인 소재의 영상이 수두룩하다. 임채헌<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 활동가는 “최근 SNS에서 유행하는 각종 챌린지는 동물에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강요하거나 연기를 시키는 등 동물의 습성과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 동물 학대가 향하는 곳은
동물권을 고려하지 않은 미디어 콘텐츠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퍼뜨릴 수 있다. 미디어가 특정 동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 방영된 S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공생의 법칙」은 생태계 교란종을 혐오종으로 설정해 우악스럽게 잡아 죽이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해외에서 들여온 생태계 교란종의 근본적 해결 방법에 관한 설명은 전무한 채로 방영한 것이 문제였다. 이에 임 활동가는 “사회에 미칠 파장이 큰 공중파 프로그램에서의 무분별한 포획과 살상의 모습은 해당 종에 대한 혐오와 학대에 대한 의식을 조장했다”며 생명경시 풍조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동물권이 보장된 촬영 현장을 위해
미디어에 출연하는 동물의 안전과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실질적인 관리·감독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에 동물 보호를 위한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지난 3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미디어에 출연하는 동물의 생명권 보장을 위한 지침을 제정하기로 결정했다. 지침에선 동물의 생명권 보장을 위한 △보호자 △수의사 △안전관리자 등의 인력을 배치해야 한단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미디어 속 동물 학대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많은 사람들이 촬영 현장에서 동물권이 얼마나 경시되고 있는지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정부와 방송사에선 이 일을 계기 삼아 동물 출연에 대한 확실한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 전했다.

더불어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도 수반돼야 한다. 동물을 촬영 소품 중 하나로 여기고 장면 촬영 후 동물 복지를 등한시 했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전문가들은 동물의 권리 및 복지 증진에 관한 교육의 의무화가 효과적일 것이라 전망한다. 이 대표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촬영관계자에게 의무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는 것처럼, 미디어 제작자들도 동물권 교육을 필수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동안 동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촬영으로 인해 많은 동물들이 고통을 겪어 왔다. 미디어 동물 학대의 심각성이 주목받게 된 것을 기점으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나아가 동물이 등장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도 바람직한 환경에서 콘텐츠가 제작됐는지 주목하는 자세를 가져보자.


도움: 백세빈 수습기자 baekseb@hanyang.ac.kr
이원복<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
임채헌<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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