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을 헤매던 음성이 당신의 귀에 흘러가기까지
공중을 헤매던 음성이 당신의 귀에 흘러가기까지
  • 김유선 기자
  • 승인 2022.03.21
  • 호수 1544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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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미 <TBN 경남교통방송> 라디오PD

본교 철학과 출신의 박혜미<TBN 경남교통방송> PD는 지역언론인으로서 사명을 갖고 지역 소식을 전하고 있다. 최근 라디오 다큐멘터리 「팔도잔디의 꿈」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정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과 한국PD연합회의 ‘한국PD대상’을 거머쥔 박 PD는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사람들의 퇴근길을 책임지고 있다. 주파수를 타고 흐르는 글이 음성이 되기까지 그녀의 여정을 만나봤다.

아기사자 펜을 들다
‘재밌어 보여서’. 대학 생활 중 여러 활동들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박 동문은 이렇게 답했다. 그녀는 “대학 시절 재밌어 보이는 건 다 하려고 했다”며 그 시절을 추억했다. 과 학생회 활동을 하면 재밌겠단 생각에 철학과 부학생회장에도 출마했고 교지편집부 활동을 하는 동기들을 따라 교지편집부 활동도 했다. “교지 활동은 글을 써야겠단 목적의식이 있어서 시작했기보단, 구성이 예뻤고 계간지만이 담을 수 있는 글들이 재밌어 보였어요. 그래서 취재하면서 글을 쓴다면 재밌겠단 생각을 했죠.”

실제로 그 활동들이 재밌었냐는 물음엔 “그건 아니었다”며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면 언론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묻자 박 동문은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며 자연스럽게 언론고시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렇게 고된 취준 끝에 그녀는 경남 창원에서 PD로 일을 시작했다.

교지 ‘한양’의 편집실에서 방송국의 라디오 부스로
박 동문은 지난 2017년 TBN에 입사한 이후 5년간 8관왕을 석권했다. 지난 2020년 라디오 다큐멘터리 「수상한 피난명령」을 시작으로 「낭만이 있는 곳에: 동지의 깊은 밤, 밤을 완성하는 사람들」, 지난해 「팔도잔디의 꿈」까지 모두 라디오로 이뤄낸 일이다. 이에 대해 박 PD는 “언론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곳에 와 일하다 보니까 지역 방송이 있는 이유와 지역 언론인이 져야 할 책임 같은 게 있는 거예요. 단지 그걸 따른 거죠. 저는 이런 이야기를 라디오에 노출했을 뿐이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알아야 했지만 몰랐던 것에 불과해요.” 하지만 그녀는 이후 상이 주는 부담감과 부채감을 갖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 PD는 수상을 계기로 언론인의 소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녀는 「낭만이 있는 곳에: 동지의 깊은 밤, 밤을 완성하는 사람들」을 위해 야간노동자를 취재했던 경험을 예로 들어 말을 이어나갔다. “이 프로그램은 야간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기획됐어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겐 사회적 채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 채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더라고요. 취재에 나서며 이분들을 만나 뵈니 이런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계속 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이 생겼죠.”

이어 라디오 다큐멘터리 「수상한 피난명령」을 만들며 느꼈던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방 방송이나 미디어가 없으면 사라질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수상한 피난명령」은 한국전쟁 당시 마산 곡안마을의 주민들이 미군의 공격을 받아 절반 이상이 학살된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물론 진상조사를 하며 남은 기록은 있지만 취재 전까진 우리도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어요. 더군다나 한국전쟁 때 이야기다 보니 이 사건의 당사자인 분들은 고령이었고 몇 분 남아계시지 않았죠. 자칫하면 이 이야기가 없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해 취재하게 됐어요.”

그녀가 기록하고자 했던 것
박 PD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 시야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전했다. “처음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순간부터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 그 안에서 주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어요. 그들의 삶은 고군분투의 연속이었죠.”

일례로 해남 독일마을로 취재에 나섰던 일을 설명했다. 그녀는 “사회가 파독 노동자를 두고 ‘우리나라를 부흥시킨 산업일꾼’이라 부르는 호명 방식에 의문을 느꼈다”며 취재 당시 갖고 있던 마음가짐에 대해 전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대상을 호명하는 데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파독 노동자분들의 삶도 그 틀 안에 갇히게 된 것 같더라고요. 그 이후로 기록해야 할 것이나 이미 기록됐지만, 시선을 달리해야 할 것을 계속 조명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녀의 다짐처럼 그녀가 제작한 라디오 프로그램 속 인물들은 또 다른 시선으로 조명됐다. 피난민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의 생존자, 피해자가 아닌 전쟁 중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 여생을 살아간 사람이 됐다. 마산 한일합섬의 여공들은 식솔을 부양하기 위해 돈 벌러 온 누나가 아닌, 학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한일여고로 모인 학생들이 됐다. 그렇게 박 PD의 라디오 속 인물은 자신의 삶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자 한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앞으로 그녀가 들려줄 이야기는
직장인이자 언론인으로서 바쁘게 달려온 박 PD. 지난 5년의 세월을 직장인으로선 맡은 업무를 책임지고, 언론인으로선 개인의 삶을 희생하며 지낸 시간으로 떠올렸다. “나를 먼저 만족시켜야 타인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순전히 이 일에 애정을 갖고 임했기 때문에 이런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녀에게도 지역언론인으로서 지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는 여전히 숙제다.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단 박 PD. 그녀의 말대로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가 굴러가듯, 그녀의 선한 영향력으로 우리 사회가 선한 모습으로 기록되길 바란다.
 

▲ PD로서 매일 라디오 생방송을 내보내며 치열한 하루를 보내는 그녀. 날이 저물 때마다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이 없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고 전했다. 이에 그녀는 스스로를 ‘자리를 지킴’이라 표현했다.
▲ PD로서 매일 라디오 생방송을 내보내며 치열한 하루를 보내는 그녀. 날이 저물 때마다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이 없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고 전했다. 이에 그녀는 스스로를 ‘자리를 지킴’이라 표현했다.

김유선 기자 afa0821@hanyang.ac.kr
사진 제공: 박혜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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