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감 넘치는 문화재 디지털 복원 제 1세대 복원가, 박진호
박진감 넘치는 문화재 디지털 복원 제 1세대 복원가, 박진호
  • 정다경 기자
  • 승인 2022.03.14
  • 호수 1543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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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디지털 문화재 복원가

1,800여 권의 독서, 10만 8,000분의 시간 
사춘기, 죽음, 입시지옥.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단어들은 중학교 시절 박진호 박사가 겪었던 고충이었다. 그럴 때마다 박 동문에게 한 줄기 희망은 다름 아닌 책 한 권이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읽기 시작한 책 한 권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약 1,800여 권에 다다랐다. 이처럼 책의 향연에 흠뻑 젖어있었던 소년이 제1세대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가 되기까지 그에게서 인생 이야기를 들어 봤다.

내가 셰익스피어가 될 관상인가
1,800여 권의 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무엇인가란 기자의 물음에 박 동문은 「돈황」이라고 답했다.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 실크로드 소설책인 「돈황」을 가져갔어요. 책을 펼치면 타임머신을 타고 1,300년 전 과거에 와있는 듯했고, 책을 덮으면 현실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죠.” 비디오도 없던 시절, 그는 과거 역사 여행의 단초를 책을 통해서 찾은 것이었다. 그날의 소년 박 동문은 “그때 겪었던 감동은 아직도 잊히지 않을 만큼 환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풍부했던 역사 지식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역사학자가 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당사자인 그는 역사학자가 될 마음은 없었다고 전했다. “‘역사’라는 한 분야에만 집중하기보단 인류사 전반을 아우르는 총체적 학문에 더 이끌렸다”며 본교 문화인류학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독서의 계절’이었다면, 대학 시절은 ‘방황의 계절’이었다는 그. 대학 입학 후에도 뚜렷한 꿈이 없어 진로에 대한 방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즐거움을 줬던 활동이 있었으니 바로 ‘글쓰기’였다. 당시 SF 소설책인 「디지털 도시」 등을 집필하면서 글쓰기의 즐거움에 빠진 박 동문은 처음엔 시나리오 작가를 꿈꿨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글은 타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절대 셰익스피어가 될 수 없겠구나’라며 펜을 꺾었다고 전했다. 

이번 역은 서라벌, 다음 역은 백제입니다
졸업 후 그는 고(故) 이어령 교수와 함께 1,300년 전 경주 유적을 VR로 재현하는 ‘경주 서라벌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던 그지만 학창 시절 쌓아온 1,800여 권의 독서량과 과거 시나리오를 작성했던 경험을 토대로 무사히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불국사 △석굴암 △황룡사 등 경주 문화유산 관련 전문가들과도 만나면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세계가 매력적이었다”고 밝힌 그. 박 동문은 그렇게 1,300년 경주의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둘씩 맞춰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 끝에 프로젝트는 약 170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될 수 있었다. “과거엔 문화재가 박물관 유리창에 갇혀 ‘이는 7세기 통일신라...’란 팻말 설명에만 그쳤어요. 하지만 현재는 VR, AR 등 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려 유물과 박물관 간의 간극을 메꿔주는 디지털 뮤지엄을 통해 역사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 경주 서라벌 프로젝트 당시 박 동문이 신라 황룡사를 초대형 VR로 연출한 화면이다.
▲ 경주 서라벌 프로젝트 당시 박 동문이 신라 황룡사를 초대형 VR로 연출한 화면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최근 몇천 년 전 존재했던 백제인의 얼굴을 그대로 복원시킨 기술인 ‘디지털 휴먼’에 대해서도 설명을 덧붙였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가수나 배우 등의 실물을 재현하는 이 기술은 최근 유명인을 대상으로 제작되며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을 되살리는 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박 동문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지만, 앞으로는 디지털 및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선보임으로써 역사를 더욱 재밌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만약 디지털 휴먼으로 히틀러나, 대량학살을 일으킨 테러 집단이 다시 되살아나면 어쩌지’란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질문에 박 박사는 “아직 인류사에 해악을 끼친 인물들의 복원 시도는 없었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1천억 명의 부활을 위해
현재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지난해 미얀마에서도 전쟁으로 인해 국민들은 물론 문화재까지도 함께 피해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박 동문은 “특히 미얀마의 경우 문화유산을 회복 및 고양하고 싶었는데, 예기지 못한 정치적 사건으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하루빨리 전 세계가 평화로 물들어 많은 문화유산을 회복시킬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신에게 문화재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박 동문은 “내 인생의 모든 것이자 평생 내가 탐구해야 할 것”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지구 역사상 총 1천억 명의 인간이 살다 갔는데, 이들을 모두 인공지능 기술로 복원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보단 문화유산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고 있는 박 동문. 문화재 디지털 복원가 제1세대인 그지만, 많은 성공을 거둔 프로젝트 이면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프로젝트가 더 많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그는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이라며 문화유산 복원을 향한 사명을 드러냈다. 

끝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지금 자신의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암담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하고 싶은 일을 끊임없이 모색하다 보면 그 일이 운명처럼 당신 앞에 나타나 있을 거예요.” 그의 끊임없는 도전을 응원하며 다음엔 어떤 프로젝트를 선보일지 그의 행보를 기대해 보자. 

전 세계에 퍼져있는 다양한 문화유산. 그중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 사각지대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한 문화유산과 더불어 역사 인물들까지도 디지털로 복원하고 싶다며 박 동문은 자신을 ‘새것에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 전 세계에 퍼져있는 다양한 문화유산. 그중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 사각지대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한 문화유산과 더불어 역사 인물들까지도 디지털로 복원하고 싶다며 박 동문은 자신을 ‘새것에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제공: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박진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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