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증애하는 한대신문
[취재일기] 증애하는 한대신문
  • 박지민 기자
  • 승인 2022.03.14
  • 호수 1543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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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대학보도부> 정기자

딱히 쓸 말이 없다. 일 년이 넘도록 한대신문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더라. 매번 뜻대로 되지 않는 기사 때문에 화났던 기억밖에 없다. ‘학교 기사? 조금 힘들여 쓰는 전공 리포트 정도겠지’라고 생각했던 필자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지난 시간동안 한대신문은 필자를 호되게 다그쳐왔다.
 
한대신문 활동은 ‘다이내믹’, 그 자체다. 인터뷰 몇 분을 위해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학교를 다니는 건 일상이다. 어느 주제를 보고 문제의식을 느껴 취재를 하다 보면 오히려 아무 일 없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반대로 큰 문제가 있던 기삿거리도 기사 작성을 앞두고서 갑자기 해결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사를 작성하게 되더라도, 기사의 논조를 뒷받침할 자료가 없어 기사가 무산되기도 했다. 그뿐일까. 인터뷰이에게 차단당하는 건 물론이고 메시지를 읽고서도 답장하지 않는, 일명 읽씹도 당한다. 그들이 화를 내더라도 얼굴에 철판 깔고 질문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써왔던 많은 기사는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에게-아마도 그들이 신문에 관심이 없는 탓에-닿지 않았다.
 
이전까진 살면서 노력이란 걸 딱히 해본 적이 없다. 원래 무기력한 필자의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노력하는 것조차 재능인데, 그 재능이 조금도 없어서 그런 건지. 그냥 될 대로 돼라 하고 살았다. 필자가 남들보다 운이 좋거나 단순히 만족의 기준이 낮을 수도 있겠으나, 노력을 굳이 하지 않아도 웬만하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고 원하는 걸 할 수 있었다.

이렇게 0에 수렴할 정도로 노력을 하지 않았던 필자가 한대신문에 노력을 100까지 부어도 되는 게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잠수 타는 상상만 삼천 번을 했다.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받다 보니 성격은 점점 예민해지기만 했다. 아마도 이곳에서 필자를 봐온 기자들은, 필자가 성격이 좋지 않다고 볼 것 같다. 한대신문 때문에 카카오톡이 싫어진 건 유머다.
 
그런데도 아득바득, 한대신문을 나가지 않고 기사를 작성하는 이유는 필자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사명감 따위완 다르다. 그래, ‘증애’가 맞겠다. 증애는 애증을 거꾸로 한 단어로, 한대신문 기자들 사이에서 장난처럼 말하곤 한다. ‘한대신문’하면 증오가 먼저 떠오르고, 애정은 양심상 한 톨 정도 차지한단 뜻에서 나온 말이다.
 
케케묵은 신문사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기사를 작성하다 보면 저절로 모든 상황이 증오스러워질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신문은 누가 만드나’란 애정. 노력에 비해 적은 장학금에  서러울 때도 있지만, 가끔 기사 써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들을 때 올라오는 뿌듯함. 고생해서 써봤자 아무도 안 읽는다며 불평하곤 하지만, 기사를 통해 교내 문제가 해결 될 때의 기쁨. 신문사에 가는 건 늘 싫지만, 막상 신문사에서 동료 기자들과 서로 한탄하며 공감할 때의 후련함. 필자가 느끼는 증애란 이정도 되겠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증애로 1년을 이곳에 몸담으며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인생보다 한대신문에 더 큰 노력을 쏟아 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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