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된장이라 다행이다
[취재일기] 된장이라 다행이다
  • 이휘경 기자
  • 승인 2022.01.03
  • 호수 1541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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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경<대학보도부> 부장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느냐’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필자는 먹어봐야 안다. 뭐든 백 번 말리고 천 번 뜯어말려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귓등으로도 안 듣는 필자는 이러한 이유로 살면서 후회를 많이 했다. 일을 여럿 벌이는 탓에 하루 24시간 동안 숨 쉬듯 겪는 감정이 자책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것은 특히도 쉬이 멈출 수가 없다. 필자의 몸과 마음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세상과 맞닿아 있고, 곳곳에서 오는 자극들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책을 넘어 바깥을 향한 분노와 슬픔이 필자를 움직인다.

필자가 처음 언론인을 생각했던 건 고등학교 시절, 터키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3살배기 난민 아기 아일란 쿠르디의 기사를 봤을 때였다. 온갖 복잡한 감정이 들면서 기함했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갈듯한 분통에 휩싸여 치열하게 공부했다. 세상을 바꾸는, 아니 뜯어고치는 언론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영화 속 대사를 듣고는, 도망쳐버렸다.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안타까워하겠죠. 그리고 그냥 먹던 저녁밥을 계속 먹을걸요.’ 간절히 꿈꿔왔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 기분이었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펑펑 울었다. 

그렇게 깎이고 깎여 모난 짱돌에서 둥근 조형돌이 돼버린 필자는 세상에 까막눈인 사람으로 몇 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다시, 추억에 잠겨있던 중 한 번 해보기나 하자 싶어 한대신문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수습기자로 일을 시작한 후, 운 좋게도 창간기념호에 실릴 아이템 회의 때 냈던 기획안이 채택돼 난민 관련 기사를 쓰게 됐다. 카페에 앉아 기사를 쓰고, 인터뷰 요청 메일을 돌리는 데 문득 필자가 의자에 편하게 앉아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난민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난민을 한 명도 만나보지 않았다는 게 우습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그 즉시 수소문하여 난민분들을 직접 찾아뵀다.

누군가를 알려면, 단순히 어떤 형체로서 인식하는 게 아닌 그 사람이 걸어온 과거와 현재를 알려면 두 눈을 맞추고 이야기해야 함을 깨달았다. 난민분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먼 땅으로부터 이 자리에 오기까지 거쳐 온 시간과 공간, 삶 자체가 필자에게로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이 기사 이후에도 어떤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때마다, 또 어떤 이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 볼 때마다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의 흐름이 필자의 몸통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그림자에 가려진 이야기들을 몸통에 담아, 볕이 드는 곳으로 부지런히 퍼다 나르는 일. 언론의 의미를 이제야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아직도 필자라는 한 명의 작은 인간이 드넓은 세상에서 뭘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시대가 역행한다고들 하지만 엔트로피 이론에 따르면 원래 혼돈이 우주의 자연 상태다. 이런 회의감에 빠져들다가도 눈앞에 놓인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뇌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대로, 뇌가 시키는 대로, 끊임없이 꿈틀대보려 한다. 적어도 삶 전체에 있어 후회의 총량은 낮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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