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무제(無題)
[장산곶매] 무제(無題)
  • 배준영 편집국장
  • 승인 2021.11.29
  • 호수 1540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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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준영<편집국장>

두 번의 사계를 보내며 이제 마지막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엔 철없이 어린 내가 있다. 스무 살의 낯설고 위태로웠던 내가 찡그린 표정으로 서 있다. 매 순간을 관통하며 다다른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조금 더 무기력하고 두렵지만 주어진 벽을 문으로 삼아 나아가야 한다. 

언제나 나의 마지막은 문득, 갑작스레 뿌려진 소낙비처럼 찾아와 떠나갔다. 나는 그 구름을 잡거나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았고, 가만 서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뿐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시간이었다. 젖은 생각은 퀴퀴한 냄새나 헝클어진 모양새를 가지게 되었지만 변함없이 나의 것이었다. 집 나간 강아지가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변함없이 그가 우리집 강아지이듯, 그것은 여전히 내 생각이었다.  

스쳐온 지난 순간의 끝이 소낙비 아래에서였다면, 지금의 나는 긴 장마를 보낸 것 같다. 조금 더 긴 기다림이 필요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 비는 내가 쌓아온 것들을 휩쓸고 갔다. 동시에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품에 안겨주었다. 행복했지만 슬펐고, 웃은 만큼 울었다. 장마가 걷히고 이제 눈앞에 놓인 것은 어둠 위로 채색된 여명, 희망보다 어두움의 편에 놓여있던 내 삶에서 약간의 빛을 본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곳에서의 마지막 잉크를 찍는다. 약간의 빛을 틔우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동안 나는 보다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 되었다. 간호학과에서 국문과로 적을 옮겼고, 말보단 침묵으로 일관하게 되었다. 낡은 사무실에서의 사색은 매 순간 내 의식을 깨워주었고, 새로운 사유의 장으로 나를 끌고 가거나 혹은 내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힘, 그로써 들이닥치는 온갖 상황에 유려하게 대처하는 힘을 길렀다.    

지나온 순간 가운데 미처 마침표를 찍고 오지 못한 숱한 날들이 보인다. 그 기억은 대개 극단적이어서 의도적으로 놓아둔 기억이다. 행복했거나 우울했던, 지나갔거나 아직 다 가지 않은 순간의 초상(肖像)을 떠올리면 어딘가 아리다. 반점의 반점을 거듭해 찍고, 이제서야 마침표를 찍는 내 표정은 숨이 차 다시금 위태로워진다. 내가 관여할 수 없는 것들에 잠시 미련을 거둬 오늘의 순간을 잘 살아내기로 한다. 

삶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2년의 시간을 거쳐 얻은 것에 답은 없고 온갖 물음뿐이다. 꿈은 한순간 분명해졌다 찰나에 희미해진다. 때때로 꿈처럼 삶은 주변을 스쳐 갔다. 유난히 변덕스러운 날이면 키(rudder)를 잃고 방황하는 순간이 괴롭다. 나는 이 장면을 영원히 간직하거나 지워 버릴 수도 있지만 다시 눈을 뜨고 끝까지 다 보기로 한다(이기리, 「일시 정지」). 몇 권의 소설과 시집, 철학서와 사전을 지침 삼아, 옅은 별빛을 잔등 삼아 걸음을 옮긴다. 낡고 정든 사무실에 내 자리를 지운다. 추로는 잴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지탱하며 주어진 길을 걷는다. 

추신. 본인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한대신문 동인, 그리고 저와의 인연 속에서 떠났거나 머무는 모든 기자를 존경합니다. 무엇보다도 늘 힘이 되어준 부편집국장과 칙칙한 사무실에 생기를 몰고 온 83, 84, 85기 기자단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귀감이 되어준 선배와의 간극을 미처 다 줄이지 못한 채 역사의 붓을 놓습니다. 절망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대가 절망하지 않는단 사실에 대해서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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