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멍을 치유하는 '멍'
마음의 멍을 치유하는 '멍'
  • 정다경 기자
  • 승인 2021.11.22
  • 호수 1539
  • 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멍, 500mL 생수병 내려놓기
우리는 꽤 오랫동안 멍때리는 시간을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왔다. 대개 멍을 ‘넋을 놓고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멍때리는 것이 더 효율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단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일상생활 속 우리 뇌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와 매체를 통해 새로운 정보와 자극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김은정<ek 심리상담센터> 센터장은 “생수병 500mL를 온종일 들고 있으면 점차 무거워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잠시 쉬었다가 다시 그것을 들면 무리가 없다. 우리 뇌도 멍을 때리면서 생각을 내려놓아야 무게가 가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부터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한다고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 오히려 *흰곰 효과를 불러일으켜 더 많은 생각에 휩싸일 것이다. 안 그래도 이미 머릿속엔 많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를 더 부추기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간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오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생각과 오감의 ‘제로섬(zero-sum)’ 관계를 언급하며 “이 둘의 합은 100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감의 비중을 늘리면 자연스레 생각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다양한 멍때리기의 유행을 불러일으킨 불멍의 경우도 제로섬 관계에서 시각과 청각이란 오감의 비중이 전체의 90%를 차지함으로써 생각을 덜 할 수 있게 되는 원리다. 최근 들어선 멍을 때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 우리 뇌는 마치 여러 개의 라디오 채널을 동시에 틀어놓은 것처럼 많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 우리 뇌는 마치 여러 개의 라디오 채널을 동시에 틀어놓은 것처럼 많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소리멍, 귀를 쫑끗 세우다
소리멍은 뇌에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자연 소리를 경청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독 자연 소리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소리 담당 관계자에 의하면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소리의 기준은 ‘주파수’ 차이라고 답했다. 이어 “자연 소리와 같은 백색잡음은 넓은 주파수를 내재하고 있어 우리 귀에 넓은 면적으로 자극을 주기 때문에 부담이 덜한 것”이라 덧붙였다. 두 번째 이유론 ‘규칙성’을 꼽았다. 흔히 우리가 자려고 누웠을 때 들리는 시계 소리의 일정한 규칙성은 우리 귀를 거슬리게 만들고, ‘저 소리는 뭐지?’하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에 반해 자연 소리는 규칙성도 없고, 생각을 유도하지 않아서 우리 뇌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이것은 파도와 폭포처럼 웅장한 소리가 우리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덮는 마스킹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불면증이나 이명 치료에도 쓰이고 있다.

최근엔 ‘사운드 힐링’으로 불리는 싱잉볼을 통한 힐링 요법도 새롭게 떠올랐다. 이는 싱잉볼을 막대기로 쳤을 때 발생하는 소리와 진동을 통해 몸과 호흡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기자는 싱잉볼을  직접 체험하며 소리멍을 이해하고자 했다. 기자는 소리멍을 하기 전 오로지 청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안대를 쓰고 담요를 덮어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곤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싱잉볼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소리가 점점 커지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몇 분 후엔 적응할 수 있었다. 마치 잠자리에 들기 직전의 느낌처럼 몽롱하고 평온한 상태였다. 그래서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과 뒤섞인 감정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에 제민재<젠테라피 내츄럴 힐링센터> 강사는 “싱잉볼의 진동이 *동조 효과를 일으켜 스트레스로 균형을 잃은 인체의 리듬을 회복시킴으로써 완전한 나의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식(植)중독에 걸린 사람들
식멍은 단순히 멍때리는 것에서 나아가 식물을 키우고 교감함으로써 잡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멍과는 달리 식물을 기르는 과정에 있어 책임감이 요구되기 때문에 조금은 까다로운 멍때리기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멍의 유행과 함께 떠오른 신조어인 ‘식집사’와 ‘반려 식물’ 등의 인기는 뜨겁기만 하다. 이에 이현주<화유플라워앤원예치료센터> 대표는 “식물이 태어나 인간처럼 결실을 맺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은 여러 가지 생각 가운데서 안정을 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인간이 식물을 대하면 본능적으로 발현하는 긍정 심리로 행복감과 안정감 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반려 식물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이와 더불어 이 대표는 “식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안정을 느낄 때 검출되는 뇌파인 알파파를 확인할 수 있다”며 식멍의 긍정적인 심리 효과를 설명했다.

식멍을 때리면서 물을 주고, 자라난 새잎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잎이 진 식물들을 정리하는 시간은 해야 할 일을 이뤄낸 듯한 뿌듯함과 성취감을 제공한다. 이에 이 대표는 “요즘엔 식물을 이용한 치유 목적의 원예활동이 유행하는 추세다. 그래서 이를 통해 참여자들의 자아존중감과 자신감 등이 향상되는 것을 현장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고 답했다.

만약 집에서 식멍을 체험할 여건이 안 된다면, 밖으로 이를 체험하러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한 식물 카페의 경우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보여주고, 식물 관람과 체험 및 전시회까지 각양각색으로 보여주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기분이 우울하다면 식물 앞으로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본다. 
 

아로마 타고 온 향멍
마지막으로 소개할 멍은 향멍이다. 우린 일상생활 속에서도 향멍에 빠져있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바로 △디퓨저 △방향제 △캔들 등을 이용해 실내 공간을 향기롭게 만들고 멍을 때리는 것이다. 이 물건들은 악취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향만 맡았을 뿐인데 왜 기분이 좋아질까? “아로마 테라피의 효능과 활용에 관한 탐색적 연구” 논문은 향이 인체에 흡수되는 경로를 후각신경과 호흡기,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후각신경을 통해 향기를 맡고 0.3초가 지나면 뇌의 정서와 호르몬을 조절하는 중추가 자극받아 각 향이 가진 고유의 작용이 인체에 나타난다. 또 호흡기를 통해 향이 몸에 들어오면 향에 내재된 물질이 폐를 거쳐 우리 몸을 순환하면서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자극해 마음을 안정시키게 되는 것이다.

최근엔 캔들, 디퓨저와 더불어 천연으로 만든 인센스 스틱과 인센스콘과 같은 이색 아이템이 주목받고 있다. 약 15~20분 정도 스틱이 타고 있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는 것을 ‘인센스멍’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불태우다, 밝게 하다’를 뜻하는 라틴어인 Incendere에서 유래된 용어다. 이택희<나그참파 코리아> 대표는 “기존의 캔들과 디퓨저가 후각에 집중한 것이었다면, 인센스 스틱은 후각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멍때리는 행위에 동원한다”며 “향기테라피 관점에서 본 경우 향멍은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 동안 멍에 대한 인식은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멍은 우리의 과부화된 몸과 마음을 식혀주고 다시 일을 재개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러기 위해선 그저 멍하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오감을 활용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또 멍을 때리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땐 그 생각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생각과 오감의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도 수고한 당신. 그런 자신을 위해 휴식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흰곰 효과: 특정 생각, 욕구를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그것이 떠오르기 쉽고 하게 되는 효과다.
*동조 효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진동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우러지는 현상이다.

도움: 김은정<ek 심리상담센터> 센터장
이택희<나그참파 코리아> 대표
이현주<화유플라워앤원예치료센터> 대표
제민재<젠테라피 내츄럴 힐링센터> 강사
사진 제공: 김은정<ek 심리상담센터> 센터장
참고 문헌: 윤나리외 2명(2015). 아로마테라피의 효능과 활용에 관한 탐색적 연구. <뷰티산업연구>, 제9권2호, 85-9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