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살피지 못하는 교육부의 ‘현장실습 운영규정 개정안’
현장 살피지 못하는 교육부의 ‘현장실습 운영규정 개정안’
  • 김동현 기자
  • 승인 2021.11.22
  • 호수 1539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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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 근절한다는 취지는 좋아
그러나 참여 기업 부담은 가중될 듯
중소기업 중심의 현장실습 T.O. 감소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
참여 주체인 △기업 △학교 △학생 
모두 헤아리는 정책 마련 필요해

청년 세대의 취업난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취업을 위해선 △동아리 및 대외활동 △어학 △인턴 활동 △자격증 취득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중 인턴 활동의 경우 ‘금턴’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활동처를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학과 교육부는 정규 교과 과정의 하나로 ‘현장실습’을 고안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실제 산업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적용함으로써 진로 선택을 위한 정보 습득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됐다. 현장실습에 지원한 학생들은 급여를 받게 되는데, 크게 기업이 제공하는 임금과 학교에서 장학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현장실습 지원금을 합산한 형태로 지급된다.

그러나 최근 이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실습생들의 근로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일명 ‘열정페이’가 성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교육부 공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73개 대학에서 4주(20일)간 현장실습 학기제에 참여한 2만 2천여 명의 학생 중 1만여 명에 달하는 학생이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게다가 임금을 받은 학생 중 110만 원의 임금조차 수령하지 못한 학생이 전체의 79%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했을 때의 임금이 113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 모두는 최저시급 이하의 노동을 한 셈이다. 한편 공시자료에 따르면 우리 학교 양캠퍼스에서도 현장실습에 참여한 학생 중 68명이 ‘열정페이’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열정페이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교육부는 지난 7월 현행 규정을 전면 개정했다. 본 개정안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기존에 한 가지에 불과했던 현장실습 유형을 ‘표준형 현장실습’과 ‘자율형 현장실습’ 두 가지로 나눴다는 것이다. 

표준형 현장실습의 경우, 참여 기업은 실습생의 노동에 대해 최저임금의 75% 이상을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만약 이 규정을 어길 시 사용자는 실습생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다른 실습 기관으로 이동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고등교육법」에 따라 별도의 행정처분도 받을 수 있다. 자율형 현장실습 역시 급여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상황에 따라 급여를 일절 제공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엔 ‘실습생의 직무로부터 그 어떤 이익도 취해선 안 됨’, ‘실습생의 업무가 반복적이면 안 됨’ 등과 같은 다소 엄격한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참여 기업을 표준형 현장실습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기업들은 표준형 현장실습을 선택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본 개정안을 둘러싸고 현장실습 참여 기업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대기업보다 재정적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교육부의 취지는 이해하나, 현장실습생에게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지 취재 결과, 현재 양캠 현장실습 참여 기업의 80%가량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들을 위한 적절한 대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대학사회 전반에 현장실습 제도의 존립이 위험 받게 된다. 

실제로 ERICA캠 현장실습 참여 중소기업 관계자 A씨는 “후배들을 돕고자 하는 좋은 취지로 참여했는데, 앞으로 금전적 부담이 늘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더는 현장실습생을 받기 힘들 수 있다”며 “현재 8명 정도 받고 있는 현장실습생도 앞으론 6명, 4명으로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다. 

현재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에 대해 백동욱<중소기업중앙회 청년희망일자리부> 부장은 “최저임금 상승과 주52시간제 등으로 기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개정안 실시로 인해 가중된 실습생들의 인건비 부담을 감내하면서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할 수 있다”며 “적절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인건비 부담으로 현장실습 T.O. 자체가 줄어들어 이 피해는 그대로 학생들에게 갈 것”이라 분석했다. 

기업뿐 아니라 현장실습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정인<소융대 소프트웨어학부 17> 씨는 “실습생의 상당수가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게 된다는 본 개정안의 취지는 동의하나, 이로 인해 현장실습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또 그것대로 문제”라고 답했다. 서울캠 LINC+사업단 현장실습지원센터 관계자 B씨 역시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우리 학교 참여 기업들의 어려움을 들은 바 있다”며 “학교의 경우 교육부 지침에 의해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 체계 자체에 변화를 줄 수는 없지만 참여 주체인 학생과 기업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장의 우려와 달리 정부로선 아직 별다른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이 같은 기업들의 우려에 대해 ‘별도의 세재 혜택 등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질의응답 보고서만을 내놓을 뿐이었다. 교육부 관계자 C씨는 개정안의 방점이 열정페이를 없애는 데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기업은 교육부가 진행하는 다양한 제도를 통해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며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중소기업벤처부 관계자 D씨 역시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한 상담프로그램 정도는 마련돼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하나 같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임은희<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학생들이 제 노동에 대한 값어치를 받지 못하는 열정페이 현상으로 인해 정부에서 법을 개정한 만큼, 발생 되는 기업의 어려움에 대해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덧붙여서 이건<정책대 행정학과> 교수는 “특히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에 관해서는 최저임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부가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 개정안이 기업 현장에 적용된 지 벌써 넉 달이 다 돼간다. 정부는 기업 현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곡소리를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적절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현장실습의 공급이 줄어들게 돼 오히려 현장실습이라는 제도 자체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 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현장실습의 관여 주체로서 보다 현실적인 정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도움: 백동욱<중소기업중앙회 청년희망일자리부> 부장
임은희<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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