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두 마리의 토끼를 잡다
과학과 철학, 두 마리의 토끼를 잡다
  • 정다경 기자
  • 승인 2021.11.08
  • 호수 1538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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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교수

오전엔 물리 수업을 듣고, 오후엔 방송반 DJ로서 음악을 즐겼던 이상욱 교수. 그는 서울캠퍼스 학생들의 필수 교양과목인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오랫동안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던 그는 현재 과학과 철학이 제기하는 수많은 문제 사이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오랜 시간 연구한 과학 철학에 대한 애정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그 애정이 어떻게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코스모스의 위력
“학창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언제였나요?”란 기자의 질문에 이상욱 교수는 고등학교 시절의 방송반 활동을 손꼽았다. 당시 성적이 좋았던 그는 담임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방송반 DJ를 맡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그는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 ‘방송제’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좋았다”고 밝히며 방송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이처럼 음악을 좋아했던 학생이 망설임 없이 대학교를 물리학과로 진학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과학이 제기하는 수많은 쟁점의 사회·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며 당시 물리학자 칼 세이건이 쓴 도서 「코스모스」를 읽고 “이를 위해선 물리학자가 돼야겠구나”고 느껴 물리학과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입학 후 이상과 실제 물리학 사이의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양자역학의 원리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공부하던 중 고양이의 생존 여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생겨 교수님께 질문했더니 “그건 철학과에서 하는 것이다. 우린 문제만 풀면 된다”고 답해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마침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던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대학원 수업이었던 ‘과학철학’을 듣고 단순히 물리학 교과서의 죽은 지식이 아닌 실제 과학자의 연구 과정을 경험하고자 물리학 석사를 택했다”고 밝혔다. 석사과정을 마친 이후 박사과정을 앞두고 그는 물리학 박사를 선택하면 더는 과학철학에 매진할 수 없단 걸 알았기에 “학년 말에 읽은 도서 「물리학의 법칙은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가」를 읽고 감명받은 기억으로, 그 책의 저자였던 교수님께 과학철학을 배우고 싶어 런던정경대를 가게 됐다”고 답했다.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다
그렇게 그는 과학철학에 첫발을 내딛게  됐지만 첫 발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따로 영어를 준비할 틈도 없이 런던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는 런던 교수님의 요크셔 사투리로 인해 수업의 절반 이상을 알아듣지 못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 교수가 학문의 세계에 깊이 빠질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적 호기심이 많아 각 학문이 세계를 바라보는 공통점 및 차이점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며 “지금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20권씩 연계해서 읽고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워가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은 빠짐없이 기억할 정도의 뛰어난 기억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선천적으로 나빴던 시력 탓에 얼굴 가까이에 책을 대야지만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발표를 들을 때도 ppt가 전혀 보이지 않아 발표자의 말을 굉장히 귀담아서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그의 생존전략으로 “등록금이 비싼 런던정경대를 다니기 위해선 장학금이 필요해 남들과는 다른 노력이 수반 돼야 했다”며 위기를 기회로 삼았던 그다.

“남들보다 많은 공부를 하느라, 고3 수험생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다”란 기자의 말에 이 교수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고, 오전 수업을 듣고 난 후엔 여유롭게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아 미술관에서 그림을 구경하고 뮤지컬도 관람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답하며 기자를 놀라게 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만든 것이 바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란 서울캠 학생들의 필수교양 과목이다. 해당 과목을 제작한 취지에 대해 그는 “21세기는 과학기술기반 사회로,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갖는 의의와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과학기술에 대한 폭넓은 측면에서의 이해가 필수적”이라며 “이를 위해 현대인이 필수 역량으로 메타적 활용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당 과목을 고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나아가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자세로서 “하나의 문제를 둘러싼 복잡성을 인지하고 간학문적인 접근과 더불어 타 분야 전공의 존중하는 마음가짐”이라 말한다. 그는 정부위원회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이에 대한 중요성을 몸소 느꼈다고 한다. “최근 코디네이터로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정하다 보면, 많은 전문가가 자신의 학문적 시각에만 갇혀 문제를 단편적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군사독재 시절, 대학생이었을 때 “마치 각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극단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방송반에서 활동했던 경험과 이들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결실을 맺은 것 같다”고 답했다.

공정에 한 발짝 다가가다
이 교수는 자신이 좋아했던 과학과 철학 어느 한 곳에도 치우치지 않은 결과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이는 그의 ‘공정하자’란 인생의 좌우명이 투영된 결과였다. 학문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나듯 그의 공정은 삶 전체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특히 “나에게 적용되는 잣대와 타인에게 적용되는 잣대가 다르면 안 된다”며 일상 속 작은 실천을 통해 늘 공정하게 자신과 타인을 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끝으로 이 교수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란 메시지를 전하며 “지금 당장 일이 안 풀리더라도 여러분은 미래를 지속해서 만들어 가는 중이기에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향후 계획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과 내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며 책과 방송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학업뿐 아니라 늘 공정을 지켜갈 이 교수. 그의 행보를 주목해봐도 좋을 것 같다.
 

이상욱 교수는 자신을 ‘행복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의 지적 호기심은 단순히 만족감을 주는 것에서 나아가 그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 이상욱 교수는 자신을 ‘행복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의 지적 호기심은 단순히 만족감을 주는 것에서 나아가 그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도움: 지은 수습기자 jieun0523@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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