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삶을 건져 올리다
바다에서 삶을 건져 올리다
  • 박지민 기자
  • 승인 2021.11.08
  • 호수 1538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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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들이 물에 들어가기 전에 쑥으로 수경을 닦으며 정담을 나누고 있다.
▲ 해녀들이 물에 들어가기 전에 쑥으로 수경을 닦으며 정담을 나누고 있다.

 

소로 못나난 여자로 낫주
여기 ‘저승서 벌어 이승서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직업은 바로 해녀, 제주 방언으로 ‘잠녀’로 불리기도 한다. 해녀는 생계를 위해 위험천만한 바다로 나선 여성들이다. 제주에서 해녀란 곧 제주 여성 그 자체다. 엄마가 해녀면 딸도 해녀, 시모가 해녀면 며느리도 해녀가 됐기 때문이다. 강경숙<제주가족여성연구원 성인지정책센터> 센터장은 “제주에서 여성들은 물질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며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만큼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제주엔 ‘소로 못나난 여자로 낫주(소로 태어나지 못해 여자로 태어났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해녀의 인생은 기구했다. 그들은 오랜 기간 지속된 물질로 시력을 잃거나 잠수병을 앓았다. 하지만 이는 가족을 위해 당연시 여겨지던 일이었고, 개개인이 겪는 아픔은 ‘희생’이란 이름 아래 무마됐다. 강 센터장은 “남존여비 사상으로 해녀가 생계부양자 노릇을 해도 인정받지 못했다”며 “차례나 제사와 같은 의식에 여성들은 참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해녀를 ‘어머니’란 단편적인 존재로만 바라보기엔 그들의 역할은 다양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그들은 주체적으로 나서 일본군에 맞선 ‘운동가’이기도 했다. 당시 해녀들은 일본군들의 부당한 착취에 맞서 해녀항일운동을 펼쳤다. 게다가 그들은 예로부터 물질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마을 안길을 정비하거나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데 일조해왔다. 해녀는 곧 제주 경제의 ‘밑거름’이었던 것이다. 

 

▲하군 해녀로 활동하는 김혜자 씨가 해녀 석상 옆에 서있다.
▲하군 해녀로 활동하는 김혜자 씨가 해녀 석상 옆에 서있다.

 

걸어 다니는 문화재, 제주 해녀
다행히 오늘날엔 위와 같은 해녀들의 사회적 기여와 헌신이 인정받고 있는 추세다. 이에 제주에선 지난 2009년 11월에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고, 매년 9월 셋째주 토요일마다 ‘제주 해녀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엔 ‘제주해녀문화’가 세계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처럼 해녀가 주목받을 수 있던 이유에 대해 강 센터장은 “보편적으로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던 것과 달리 제주에선 해녀, 즉 여성이 가족을 부양했기 때문에 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했다고 판단된 것”이라 답했다. 이어 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그들에 대한 인식 또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한이 많고,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을 넘어 제주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한수풀해녀학교 졸업생인 김소정<잠수교육연구협회> 프리다이빙 강사는 “해녀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 표현했으며, 해녀 김혜자<제주시 한립읍 61> 씨도 “내 자신이 해녀란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던 다른 이유로 그들이 ‘환경지킴이’로서 역할을 하고 있던 것도 한몫했다. 그들은 항상 ‘바다’란 자연과 함께하기에 환경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강 센터장은 “바다에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항상 해녀”라고 답했다. 실제로 제주에선 ‘청정제주 바다지킴이’를 상시 채용해 해양쓰레기 수거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이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바다밭을 지키는 해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해녀란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에 기자는 그들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기 위해 직접 바다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테왁과 망사리로, 둥근 박처럼 생긴 것이 테왁이다.
▲테왁과 망사리로, 둥근 박처럼 생긴 것이 테왁이다.

 

기자, 일일해녀가 되다
산소통 없이 몸뚱이 하나만 의지해서 바다에 들어가려니 긴장이 됐다. 해녀들은 해산물을 담아놓는 바구니인 ‘망사리’에 ‘테왁’을 달아 바다 위를 헤엄친다. 여기서 테왁이란 부력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도구다. 기자 역시 테왁을 붙잡고 열심히 나아갔는데, 넘실거리는 파도에 바닷물을 끊임없이 먹었다. 연신 입 안의 물을 뱉어냈지만, 입 속의 짠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몸이 뜨는 것도 문제였다. 잠수복 재질 특성상 부력으로 인해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 해녀는 ‘뽕돌’이란 납으로 된 벨트를 달고 물질을 한다. 이때 뽕돌의 무게는 10kg에 이르며,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야 가라앉지 않는다. 기자는 뽕돌을 착용하지 않은 채 체험을 했기 때문에 바다 위로 계속해서 뜨는 몸을 이기지 못했고, 끝내 바다 깊이 있는 바위 한번 만져볼 수 없었다. 

이대로 끝내긴 아쉬워 원래 있던 위치보다 좀 더 얕은 곳으로 이동했다. 해녀는 물질 실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데, 얕은 곳에서 활동하는 해녀를 ‘하군’이라 부른다. 해녀들의 평균 잠수 시간은 보통 1분인데 반해, 상군 해녀는 2분 넘게 숨을 참고 15m 깊이 이상 내려간다. 특출난 이들은 육지에 위치한 다른 지역으로 조업을 가기도 한다. 중군은 8~10m, 하군은 5~7m 깊이의 바다가 일터다. 보통 하군에 속하는 해녀들은 ‘아기’해녀로, 물질에 서툰 사람들이다. 

한편 김 강사는 상군이나 중군 해녀보다 하군 해녀를 제일 존경한다고 말한다. “얕은 곳은 파도가 엄청 세서 몸을 가누려다 다치기가 더 쉬워요.” 기자도 얕은 곳에서 끊임없이 거칠게 내밀리는 파도 때문에 헤엄칠 때보다 더 많은 물을 마셨다. 그리고 발을 헛디뎌 바위에 긁히기 일쑤였다. 하군으로 활동하는 김 씨 역시 “하루하루가 고되다”며 “성게를 잡다가 손을 다치는 일은 비일비재 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기자는 정말로 ‘죽음과 맞닿았던’ 기분을 느꼈다. 물속에서 보말(바다 고동)을 찾고 있던 때였다. 보말은 바위에 딱 붙어있어 육안으론 구별이 어려웠다. 김 강사는 “하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위에 붙어있는 보말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라 답했다. 한참 헤매던 도중 보말을 찾았고, 손을 내밀었을 때 숨이 모자라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것이란 생각에 보말을 잡았다. 하지만 내려가서 참을 숨만 생각했지, 다시 올라가는 동안 참아야 할 숨은 계산하지 못했다. 순간 반사적으로 숨을 쉬며 물을 들이킬 뻔했다. 

실제로 해녀들도 물속에서 숨을 들이키는 경우가 있다. 이를 ‘물숨’이라 하는데, 자신의 숨을 넘어선 바다의 숨이란 뜻이다. 눈앞에 있는 해산물을 채취하려다 자신의 숨의 한계를 잊고 물숨을 먹게 되는 것이다. 물숨으로 인해 매년 1~2명의 해녀가 사망한다. 이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에선 선배 해녀들이 매번 후배 해녀들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위험하긴 했지만 채취한 보말을 보니 벅찼다. 김 씨도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에 매력을 느껴 물질을 시작했다고 한다. “60살이 넘었는데 바다는 들어갈 때마다 새롭네요. 나도 모르는 세계를 보여줘요, 바다는. 그게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가 직접 잡은 해산물로 손님 대접하는 것도 뿌듯합니다.” 

 

▲직접 해녀체험을 하고 있는 기자의 모습이다.
▲직접 해녀체험을 하고 있는 기자의 모습이다.

 

제주 잠녀 많이 사랑해줍서
안타까운 것은 해녀가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단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집계된 현직 해녀는 총 3천 613명으로, 이는 지난 2019년보다 207명 감소한 수치다. 해녀들이 고령화나 질병 등의 이유로 조업을 포기하거나 사망한 것이 곧 해녀 수 감소로 직결됐다. 

제주 해녀가 감소하는 데엔 채취한 해산물로 수익을 얻기 어렵단 점도 영향을 끼쳤다. 그 예로 해녀들의 주 소득이 되는 자연산 뿔소라는 연간 생산량 2천 톤 중 80%가 주요 수출국인 일본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다시피 한다. 거의 20년째 1㎏당 2천 700원 수준인데, 환율이나 물가를 고려하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김 씨는 “이러한 이유로 직업을 해녀 하나만 가질수 없다”며 “물질로만 생계를 유지하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농사일이나 식당일을 겸한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해녀가 되기 위한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해녀 감소의 원인 중 하나다. 제주에선 각 지역의 어촌계가 관할 어장을 관리하는데, 자원 부족 등을 이유로 소속 어촌계 회원이 아니면 물질이 금지된다. 해녀 수가 늘면 기존 종사자들은 개인이 채취할 수 있는 해산물이 줄어들기 때문에 신규 해녀들의 가입을 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김 강사 역시 “해녀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 정식적인 해녀가 되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해녀는 물질 뿐만 아니라 동료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러한 면에선 진입장벽이 높은 것은 이해가 된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에 대해 강 센터장은 “해녀는 자연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직업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그들의 공동체적 문화와 성평등 측면에서의 가치는 발굴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해녀학교를 통해 지속적으로 인재를 양산하고, 해녀문화를 생활에 녹임으로써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씨는 “과거보다 해녀가 주목받고, 인식이 변화할 수 있던 이유는 제주 외의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사람들의 애정이 지속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제주 해녀는 육지에 사는 이들에겐 먼 존재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들의 문화는 누구에게나 귀감이 될 만하다. 한 번쯤 바다에서 삶을 건져 올리는 해녀들의 세계를 탐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도움: 강경숙<제주가족여성연구원 성인지정책센터> 센터장
김소정<잠수교육연구협회> 강사 
김혜자<제주시 한립읍 61> 씨 
사진 제공: 해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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