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보고, 습지를 가다
생명의 보고, 습지를 가다
  • 김동현 기자
  • 승인 2021.10.11
  • 호수 1537
  •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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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에 떠난 우포늪으로의 기행, 기자가 마주한 그곳의 첫인상이다.
▲ 지난 8월에 떠난 우포늪으로의 기행, 기자가 마주한 그곳의 첫인상이다.

ERICA캠퍼스 서문에서 자전거를 타고 10여 분 남짓,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안산 갈대 습지’가 있다. 시화호로 흘러 들어가는 세 개의 지천 사이에 조성된 습지 공원, 이곳은 우리 학교 학생뿐 아니라 인근의 주민들에게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로와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습지란 곳은 생명의 보고로서 지친 도시민을 위한 쉼터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실제로 안산 갈대 습지는 간척사업으로 더 이상 생명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죽음의 호수’인 시화호를 다시 살아 숨 쉬는 생태호수로 회복시켰다. 인공으로 형성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습지’라는 생태계가 가져온 변화는 정말이지 놀라웠다. 최종인<안산갈대습지공원> 주무관은 “썩어서 악취가 나던 시화호가 이렇게까지 변할지는 몰랐다”며 “습지로 인해 시화호에 찾아온 변화가 경이로울 따름”이라 답했다. 이처럼 습지는 죽은 호수를 되살려 다시 수많은 생명을 품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엔 앞서 살펴본 안산 갈대 습지보다 더 놀라운 습지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람사르 습지’다. 습지 생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이들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단어 ‘람사르’. 이는 물새 서식지로서의 습지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 협약을 가리킨다. 현재 우리나라엔 이 협약에 의해 인증된 24곳의 습지가 있다. 이곳이 우리나라의 생태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실제로 국립환경과학원이 국내 습지 중 우포늪을 비롯한 보호지역 17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우포늪엔 멸종위기 60종을 포함한 총 4천 백여 종의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는 국가 생물 종 목록에 등재된 약 3만 8천여 종의 11%에 해당하며, 전체 멸종위기 종의 24%인 수치다. 조사 대상 습지의 면적이 국토의 약 0.1%인 것과 비교하면 습지가 ‘생명의 보고’란 말이 가히 이해가 된다. 조현성<국립생태원 습지센터> 관계자는 “이처럼 습지 생태계가 생물 종 보호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그렇기에 더 세심히 관리돼야 하는 것”이라 전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기자와 함께 한반도 최대 내륙 습지이자 우리나라 람사르 제2호 습지인 ‘우포늪’으로 떠나보자.

1억 4천만 년 전 태고의 신비와 마주하다
서울에서 출발한 지 대여섯 시간, 기자는 비로소 우포늪이 위치하고 있는 경남 창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버스에서 내려 마주한 우포늪의 초입, 그곳엔 촉촉하니 습기를  한껏 머금은 공기와 흙 향, 솔 향과 같은 자연의 내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기자가 느낀 ‘늦여름 우포’ 그곳의 첫인상이다.

소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우포(牛浦)’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곳은 배후산지가 습지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나무가 우거진 산지를 십여 분가량 걷다 보면 광활한 늪지대가 펼쳐진다. 잔잔한 수면 위에 우거진 물풀, 태곳적 신비란 말에 걸맞게 이곳은 원시적인 늪의 형태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곳의 습지는 우포늪을 포함해 △목포늪 △시지포 △쪽지벌 총 네 개의 늪으로 이뤄져 있다. 70만 평의 드넓은 이곳은 서울 여의도 전체 면적 세 배에 맞먹는다. 따라서 이곳이 수많은 생물의 터전임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우포는 수십 년 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변 지역민의 삶의 장소이기도 하다. 람사르 습지, 천연기념물이란 이름보단 그저 소박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한결같이 주민들의 곁을 지켜왔다. 기자와 함께 동행을 나선 이현휴<우포늪생태관> 해설사는 “우포는 인근 주민들의 삶의 공간”이라며 “소를 끌고 나와 풀을 먹이는 분들도,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나가는 분도 계신다”고 답했다. 이어서 그는 “우포의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대로 돌아간다”며 “나무가 부러져도, 태풍으로 물에 잠겨도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고 답했다. 이 땅에서 사람의 손이 닿은 곳이라곤 오직 탐방로뿐이다.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 이것이 우포의 순리이자 철칙이다.

가장 정적이며, 가장 동적인
우포늪과 그 일대는 지난 1998년엔 람사르 등록 습지로, 2013년엔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지정됐다. 이처럼 우포늪은 수많은 동식물의 보금자리다. 실제로 우포늪엔 △800여 종의 식물류 △209종의 조류 △28종의 어류 등이 살아가고 있음이 밝혀진 바 있다. 학자들이 이곳을 ‘생태계의 교과서’라 부르는 것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기자가 느끼기에 이곳은 다양한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라고 하기엔 이상하리만큼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 달리 우포의 생태는 가장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해설사는 “물의 흐름과 그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식물 종,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피식(被食)과 포식(捕食)이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늪지대의 식물 종은 급변하고 있었다. 낙동강의 수위와 강우의 정도에 따라 *우점종이 시시각각 교체되는 것이다. 이 해설사는 “불과 얼마 전까지 마름이라는 물풀이 엄청 많았는데 지금은 물이 차올라 다 내려앉고 있다”며 “한 달 정도 지나 마름이 다 꺼지면 습지 전체를 개구리밥과 같은 부유 식물들이 물 위를 초록색으로 뒤덮는다”고 답했다. 낙동강의 배후습지인 이곳의 특성상, 해마다 돌아오는 범람은 지금까지 우포를 지탱해 왔다. 이 해설사는 “이런 식의 순환이 우포를 지금껏 지켜왔으며 낙동강 하류의 수해를 방지해왔다”고 답했다. 그렇게 우포는 가장 정적인 모습을 하며 역동적으로 수많은 생물을 품어왔다.

 

▲ 복원 사업으로 방사된 따오기 두 마리가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 복원 사업으로 방사된 따오기 두 마리가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우포, 따오기를 품다
옛 동요 「따오기」 속에서 따옥 따옥 우는 그 새, 따오기는 지난 1979년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관측된 이후 한반도에서 그 자취를 감췄다. 이 같은 멸종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습지 생태계 파괴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중국으로부터 한 쌍의 따오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이를 기점으로 따오기 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렇게 따오기는 현재 360여 마리로 늘어났고, 그 중 120여 마리의 따오기가 이 곳 우포늪에서 자연으로 방사됐다. 이처럼 어느새 천연기념물 따오기는 우포늪의 상징이 됐다. 이 따오기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해설사는 “우포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도 있지만, 따오기가 워낙 행동이 둔해 담비 같은 천적들에게 많이 잡아먹히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지난 4월엔 우포늪에 경사가 났다. 바로 방사된 따오기들 중 한 쌍이 42년 만에 자연 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포의 환경이 따오기가 살아가기 충분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동시에 이 해설사는 “따오기와 더불어 우포늪에는 노란부리저어새 등과 같이 정말 많은 멸종 위기 종이 있다”며 “이러한 개체에 대해서도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해질녘 우포늪의 모습, 수면 위 떠 있는 한 척의 쪽배와 하늘에 감도는 붉은 기운이 인
▲ 해질녘 우포늪의 모습, 수면 위 떠 있는 한 척의 쪽배와 하늘에 감도는 붉은 기운이 인상적이다.

땅거미 지는 황혼의 시간, 광활한 우포늪 그 한가운데를 거니는 기자의 귓가엔 수많은 새의 울음소리가 스쳤다. 새들의 자유로운 비상과 노을의 어우러짐은 마치 시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우포늪 기행을 마친 후 기자는 ‘이곳은 인간의 손때가 닿아서는 안 되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습지에 관한 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전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역할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우점종: 식물 군집 안에서 가장 수가 많거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종을 말한다.

도움: 이현휴<우포늪생태관> 해설사
조현성<국립생태원 습지센터> 관계자
최종인<안산갈대습지공원> 주무관
사진 제공: 창녕군청 우포따오기사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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