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동물실험, 더 이상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대학 내 동물실험, 더 이상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 임윤지 기자
  • 승인 2021.10.11
  • 호수 1537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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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한 윤리위와 미흡한 법체계 속 여전히 희생당하는 실험동물들

지난 6월 농림축산검역본부(이하 농림부)가 발표한 ‘2020년 실험동물 사용 실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동물실험에 동원된 동물은 총 414만 1천 4백여 마리로 전년 대비 11% 이상 증가했다. 특히 대학에서 심사된 동물실험 건수는 1만 595건, 전년 대비 12.6% 증가한 수치인데 이에 사용된 동물은 총 115만 3천 267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동물실험을 점점 줄이고 대체실험 등으로 바꿔 가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실태다.

동물보호법 제23조 2항은 ‘동물실험을 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학가에서는 △경제성 △직관성 △편의성 등을 이유로 여전히 동물실험을 고수하고 있다. 박재학<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수백 년간 동물실험을 통해 인류 건강 증진이나 질병 연구에 기여해 왔고, 여전히 유효한 데이터가 상당히 많다”며 “동물실험만큼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다른 실험 방법을 찾기 어렵다 보니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진 않은 분위기”라 전했다. 

대학 내 동물실험 승인 과정은 ‘프리패스’
동물보호법 제25조 1항에선 모든 동물실험시설에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윤리위는 연구기관 내 동물실험 계획을 최종 승인하는 기관으로서, 연구기관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동물실험을 심의하고 승인한다. 동물실험을 하고자 하는 연구자는 윤리위에 동물실험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며, 계획서가 승인돼야만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이를 받지 않은 경우, 관련 논문은 어떤 학술지에도 게재할 수 없다. 

그러나 윤리위 내부 구성상 동물실험 과정 전반을 관리·감독하며 윤리성을 확보해나가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동물보호법 제27조에 의하면 윤리위는 3명 이상 15명 이하의 위원들로 구성된다. 위원 중에는 동물보호·복지 관계자나 동물실험 관련 박사학위 소지자가 포함돼 있긴 하지만, 1~2명 내외에 불과해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이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윤<비글구조네트워크 실험동물분과> 팀장은 “아무리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이 꼼꼼하게 실험 계획서를 읽고 의견을 내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큰 효력을 갖지 못하니 과연 의미 있는 심의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며 “동물단체 입장에선 윤리위 내부에서의 한계를 많이 느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윤리위 인력 보강 등 실험동물 설치기관의 행정적인 지원 역시 미비한 상황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한 개의 실험기관에 하나의 윤리위만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실험기관별로 많게는 연간 2천여 건이 넘는 실험 계획서를 위원들이 제대로 검토하기엔 역부족이다. 박 교수는 “과학적인 타당성을 확보하면서 윤리적으로 실험을 준수하려면 위원들이 재심, 3심 등을 거치며 계획서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몇천 건이 넘는 계획서를 15명 남짓한 위원들이 다 검토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다양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행정 편의주의적인 조항”이라 비판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윤리위 개선명령을 가장 많이 받은 곳 역시 ‘대학’으로, 총 26건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일반기업체(20건) △국·공립기관(12건) △의료기관(3건)보다도 많은 수치다. 특히 일반기업체보다도 대학에서 사용되는 실험동물 수가 더 적다는 점을 미뤄 봤을 때, 대학 내 윤리위에서 이뤄지는 실험동물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본지가 이탄희<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대학이 일반기업체보다 실험동물을 100만여 마리나 적게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받은 윤리위 개선명령 건수는 7건으로, △일반기업체(5건) △국·공립기관(3건) △의료기관(1건)보다 여전히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동물보호 법체계 속 대학은 ‘사각지대’
실험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통제하기엔 역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의 동물실험은 크게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보호법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실험동물법에 의해 관리·감독이 이뤄지고 있다. 동물보호법은 모든 동물보호·실험을 포괄하는 반면, 실험동물법은 △식품 △의료기기 △의약품 등의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만을 관리한다. 대학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 혹은 허가를 위한 몇몇 실험을 제외하고는 모든 동물실험이 학술과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동물보호법만을 따르고 있다.

실험동물법에선 실험동물을 정식 공급업체에서 받지 않고 출처가 불분명한 곳에서 갖고 와 실험하는 경우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문제는 대학 등 교육기관은 실험동물법의 의무 규제 대상이 아니란 점이다. 이로 인해 대학에서 만약 개 식용 농장을 비롯해 무허가 업체에서 동물들을 몰래 실험실에 들여와도, 대학은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실제로 경북대는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수의대 실습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개를 공급받아 실습을 진행해 사회적으로 공분을 산 바 있다. 이때 당시 실험동물에 사용된 개·고양이 470마리 중 식약처 실험동물공급시설로 등록되지 않은 업체로부터 구매한 경우가 211마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수의대 임상실습 교육 등 교육기관에서의 동물실험에는 관련 법적 규제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를 개선하고자 대학 같은 교육기관에서 이뤄지는 동물실험 역시 법으로 규정된 정식 공급처에서만 받도록 규제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몇 차례 발의되기도 했지만 통과되는 데엔 여러 어려움이 따르는 상황이다. 국제동물보호단체 서보라미<HSI> 정책국장은 “법률마다 속해 있는 소관도 다르고 동물실험 유형별로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며 “동물보호법이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이라 해도 서로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니라 다 같이 모여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대학 측 동물실험에 배정된 예산 역시 한정돼 있어 당장 개정안이 통과된다 해도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기엔 어려워 보인다. 정 팀장은 “비교적 값싼 무허가 업체가 아니라 정식 업체에서 매번 동물을 구매해 공급받아 오기에는 대학 측 연구기관도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단순히 연구 종사자의 생명윤리만을 강조하기에 앞서 문제해결을 위한 예산 지원 역시 충분히 같이 뒷받침돼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 강조했다.

동물실험과 윤리 모두를 고려하려면
전문가들은 대학 내에서 윤리적인 동물실험을 해나가기 위해선 단순히 무엇 하나만 개선할 게 아니라 종합적으로 고려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윤리위가 절차적 과정에 그치지 않고 적절한 규제 기능을 잘할 수 있기 위해선 윤리위의 독립성을 더욱 보장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법에 정해진 동물실험 규정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걸 다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기에 상황에 맞게 결정하도록 윤리위에 권한을 위임한 것”이라며 “그런데 윤리위의 결정에 대해서 외부 단체가 과하게 공격하거나 내부적으로 어떤 연구는 과학적으로 중요하니까 심의를 느슨하게 하자는 식의 목소리가 나올 경우, 윤리위와 그 위원들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동물보호와 실험에 관한 법체계를 정비하는 작업도 시급하다. 박 교수는 “실험동물법은 본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동물실험을 위해 제정된 법인데 ‘윤리’라는 요소가 섞이면서 동물보호법과 애매하게 겹치는 내용이 많아졌다”며 “동물보호법은 동물보호 및 복지 차원의 법으로, 실험동물법은 보다 정확한 실험을 강구하는 법으로 각 성향에 맞게 정리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 정책국장도 “개정안 발의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같이 목소리를 내는 등 후속 작업도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제는 동물실험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다른 대체 방안에 대해 숙고해보자는 목소리도 크다. 서 정책국장은 “유럽의 경우 대체실험에 대한 연구기관의 관심도가 높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않다”며 “동물실험만을 고수하기보다 다른 방법은 없을지 이제는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라 강조했다.

이제는 풍부한 담론이 이뤄져야 할 때
대학 내에서 이뤄지는 동물실험이 보다 윤리적인 환경에서 이뤄지기 위해선 생명윤리에 대한 담론이 지속돼야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동물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정 팀장은 “사회적인 논란 등을 의식하는 동물실험 기관들이 실험을 마친 이후 동물을 구조단체 등에 보내는 걸 꺼린다”며 “결국 구조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안락사당하는 동물이 많은 상황”이라 전했다.

동물실험에 대해선 여전히 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의 수나 종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 당장 동물실험을 완전히 금지할 순 없겠지만,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만이라도 동물을 윤리적으로 취급하고 그들의 복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단지 감정적으로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넘어, 관련 연구 종사자가 동물 및 동물실험에 대한 지식과 절차를 숙지하고 준수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 실험실에서 태어나 몇 차례 실험 이후 지난달 말 처음으로 세상 밖에 구조된 비글의 모습으로, 철장에서 주로 생활해 발바닥 모양이 오리발처럼 변형됐다.

도움: 박재학<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서보라미<HSI> 정책국장
이탄희<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의원실
정부윤<비글구조네트워크 실험동물분과> 팀장
사진 제공: 비글구조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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