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음악의 환타스틱한 만남, 우리네 삶을 노래하다
동서양 음악의 환타스틱한 만남, 우리네 삶을 노래하다
  • 나병준 기자
  • 승인 2021.10.11
  • 호수 1537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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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 가야금 연주자

신라삼현(新羅三絃)에 속하는 악기 중 하나인 가야금. 어찌 보면 예스러워 보이는 가야금을 현대 음악과 접목함으로써 퓨전 국악의 포문을 연 본교 국악과 출신의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 지난 2005년 홍대 인디클럽 무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며 주목받았던 그녀는 이 무대를 계기로 여러 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다양한 무대에서 왕성히 활동 중이다. 스스로를 ‘모던 가야그머(Gayagumer)’라고 칭하는 그녀가 이런 수식어와 함께하기까지 거쳐 온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따라가 봤다.

가야금과의 첫 만남과 결심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한국무용을 배웠어요. 그런데 교통사고가 크게 나 다리를 다쳤고 무용을 할 수 없게 됐죠. 무용이 아닌 다른 활동을 찾던 중에 길에서 가야금 연습 안내 전단을 봤고, ‘취미 삼아 배워볼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와 가야금 사이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죠.” 그녀가 가야금을 배우게 된 이유다. 우연히 시작한 가야금이었지만 배우는 게 너무 재밌어서 잠잘 때조차도 생각날 정도였단 그녀. 그만큼 배움도 빨랐던 정 동문은 가야금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의 권유로 진학한 국악고에서 가야금이 가진 매력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수업 중에 여러 국악기와 합주를 했을 때가 있었는데, 웅장함을 느꼈어요. 동시에 ‘내가 이런 멋진 악기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본교 국악과에 진학했지만, 정 동문은 “학연과 지연이란 카르텔에 밀려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고 악단 입단 시험에도 연이어 떨어지면서 좌절감을 맛봤다”고 전했다. 그녀 역시 여느 국악과 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국립국악원 소속 단원 혹은 다른 악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이 길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러한 실패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밴드인 ‘어어부 프로젝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 인디클럽을 자주 찾았던 그녀. 공연을 즐기며 살아있음을 느꼈던 그녀는 그렇게 인디클럽으로 자연스레 마음이 이끌리게 됐고, ‘이곳에서 공연을 해봐야겠다’란 생각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원대한 꿈을 꾸기보단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부터 집중해가는 태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던 가야그머, 장르를 파괴하다
그녀가 활동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국악기를 클럽에서 접할 기회는 없었기에 그녀는 이를 두고 ‘블루오션’이라 표현했다. 이는 그녀 스스로를 대체 불가한 존재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올라선 첫 무대를 두고 관객들은 클럽에서의 가야금이란 악기가 생소하게 느껴졌을 텐데도 그녀의 연주에 대해 “신선하다”, “잘 어울린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본래 그녀는 보컬 전공이 아니었고 가야금 소리가 밴드 악기에 비해 크지 않기에 노래를 많이 하진 않았다. 하지만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노래도 함께 부르게 됐고, 마침내 그녀는 홍대 클럽에 선 최초의 가야금 연주자가 돼 ‘모던 가야그머(Gayagumer)’로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정 동문은 “홍대 클럽을 자주 찾으며 여러 장르의 음악을 접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추구하는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덩달아 그녀는 음악 외의 예술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굳이 국악단에 들어가지 않고도 나만의 색깔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겠다’란 생각도 확고해졌다. 그렇게 정 동문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 길을 택하게 됐다.

매 순간 무대를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하며 즐겁게 공연하고 있단 그녀는 “활동하면서 기쁜 순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 축제나 콘서트와 같이 흥겹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만족도도 높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음악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한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과거 음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을 때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중에서도 전화 상담원 업무를 오랫동안 했죠. 당시엔 힘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전 배운 게 더 많아서 고생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인생에서 버려지는 시간이란 없다고 생각하는데 저에겐 그 순간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정 동문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무대에 설 기회가 점차 사라지면서 겪는 음악인으로서의 아쉬움에 대해서도 말했다. 특히 오늘날의 정민아를 있게 한 홍대 클럽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간다는 사실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많은 클럽이 닫았어요. 심지어 제가 주 무대로 활동했던 클럽도 닫았으니까요. 사실상 남아있는 클럽이 없다시피 해서 예전의 느낌은 잘 나지 않는다는 게 속상할 따름이에요.” 연거푸 안타까움을 드러냈던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환영한다며 아쉬움을 털어내기도 했다.

일상에서 답을 찾다
음악가로서 그녀의 삶을 살펴보면 이를 관통하는 한 가지 키워드가 있다. 바로 ‘일상’이다. 작사 영감에 대한 물음에 “젊었을 때와는 다르게 최근엔 일상 속에서 영감의 원천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때론 익숙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가면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단 것이다.

직접 작사한 곡 중 정규 1집 「상사몽」에 수록된 「무엇이 되어」란 곡을 가장 좋아한단 그녀는 이 곡을 두고 ‘기적 같은 노래’라고 언급했다. “젊었을 땐 작사 영감이 바로바로 생각났었는데, 이 노래도 펜을 잡자마자 한 번에 써 내려갔던 곡 중 하나에요. 게다가 창작 국악곡의 예시로 교과서에 실리기도 해서 저에겐 기적 같은 곡인 셈이죠. 앞으로 이 곡과 같은 정서로 노래해야겠단 영감을 주기도 해서 특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 「작고 작게」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성에 대한 금기나 검열에 대한 반감’이란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낸 공연 「음탕 2」를 선보이는 등 음악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어느 순간 우리의 목소리는 거대 권력에 의해 쉽사리 묻힐 수 있단 걸 깨달았다”며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어 “공연이나 축제의 형식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만들려 한다”며 그녀만의 철학을 전하기도 했다.

▲ 지난 2018년 홍대에서 열린 ‘음탕2’의 포스터다. 그녀는 이 공연을 통해 성에 대한 금기와 검열에 대한 반감을 유쾌하게 풀어내고자 했다.
▲ 지난 2018년 홍대에서 열린 ‘음탕2’의 포스터다. 그녀는 이 공연을 통해 성에 대한 금기와 검열에 대한 반감을 유쾌하게 풀어내고자 했다.

대체 불가한 음악가로 남았으면
가야금과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는 만큼 그녀에게 가야금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실제로 그녀는 “가야금이란 단어만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가야금을 ‘이름’처럼 인식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그룹 이날치가 불러 국내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곡 ‘범 내려온다’에 이어 지난달 JTBC에서 선보인 「풍류대장」에 이르기까지. 최근 대한민국은 ‘국악 신드롬’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퓨전 국악’을 선보이고 있는 정 동문은 이러한 장르가 주목받는 현실에 대해 반갑단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미 우리 곁에 있었던 장르’라고 설명했다. 단지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기에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란 것이다. “국악을 기반으로 한 그룹들은 예전부터 있었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어요. 20년 전 제가 좋아했던 어어부 프로젝트가 그러했던 것처럼요. 여러분들의 관심이 이어진다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한 물음에 그녀는 “지난 2월 앨범 「ESP」를 발매한 걸 계기로 전자음악에 관심이 생겼는데 이 장르와 조금 더 작업해보고 싶다”며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 의식을 시사했다. 끝으로 클래식처럼 오랫동안 사람들 곁에 남을 수 있는 음악가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단 바람을 전한 그녀. 하지만 기자가 만난 그녀는 이미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며 유일무이한 음악가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나를 대체 불가하게 만들 수 있는 지점을 고민해야 한다”란 그녀의 말처럼 우리도 나만의 것을 가꾸는 데 조금씩 시간을 투자해보는 건 어떨까.

▲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는 그녀. 그 자리를 생태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위치로 생각하는 그녀는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고 표현했다.
▲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는 그녀. 그 자리를 생태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위치로 생각하는 그녀는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고 표현했다.

*젠트리피케이션: 중·하류층이 생활하는 도심 인근의 낙후 지역에 상류층의 주거 지역이나 고급 상업가가 새롭게 형성되는 현상이다.
나병준 기자 songforyou@hanyang.ac.kr
도움: 윤현희 수습기자 yhyeon1229@hanyang.ac.kr
사진 제공: 정민아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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