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자기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
[아고라] 자기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
  • 최시언<대학보도부> 정기자
  • 승인 2021.09.27
  • 호수 1536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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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언<대학보도부> 정기자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게 살아간다. 필자가 느끼는 ‘평범함’이란 사회라는 큰 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큰 틀 속에서 우린 스쳐 지나가는 주위 사람들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비슷한 사람을 만나며 평생을 보낼 뿐 그 외의 사람을 만날 일은 거의 없다. 

필자도 그런 사람이다.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 남들과 비슷하게 교육을 받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나름 행복하게 살아왔고 평범함 그 바깥의 세상에 대한 존재 자체를 떠올려 보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외계인을 마주쳤다. 

시내에서 가족과 저녁 식사를 마친 날이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좋아 집까지 혼자 걸어가겠다고 가족에게 말한 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로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 앞에 희미하게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은 채 끌고 가고 있었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토바이에 문제가 생겨 오랜 시간 끌고 온 것 같다고 짐작한 필자는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도움을 받아본 듯 놀랐고 안절부절못했다. 필자도 초라한 그의 모습에 조금 놀랐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기에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얼마 못 가서 뒤돌아보니 그는 체념한 듯 앉아서 쉬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 “도와드릴게요”라는 말과 함께 고장 난 오토바이를 둘이서 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외계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40대 정도 돼 보이는 그에게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몰라요”였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는 말엔 “없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휴대전화는커녕 통화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했다. 평생 여러 공장을 다니며 일해 왔고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있었으며, 오늘도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고 설명했다. 집 주소도 외우지 못한 그였다.

평생 필자가 보고 경험했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존재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 밖에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던 그가 있었다. 그를 마주쳤을 때 처음엔 동정심이 일었다. 한편으론 그가 경험한 삶 대신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 필자의 과거를 떠올리며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를 도와 오토바이를 끌면서도 이런 이중적인 생각은 계속됐다. 

세 시간 넘게 고민 가득한 상태로 무거운 오토바이를 끌다 결국 필자는 포기했다. 아버지를 불러 상황을 설명했고, 필자의 상태를 보곤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아버지는 수리 기사를 불러 오토바이를 고친 뒤 트럭에 태워 외계인을 집에 보냈고, 모든 비용을 지불했다. 그날 필자는 크게 혼났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으면서 선의든 연민이든 쉽게 갖지 말라며 말이다. 그 뒤로 외계인에 관해 아버지에게 물을 수 없었다. 필자는 외계인을 만나 불편한 사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나 기억은 금방 흐릿해졌고, 그동안 살던 아늑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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