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를 바디 포지티브로 채우다
런웨이를 바디 포지티브로 채우다
  • 정다경 기자
  • 승인 2021.09.27
  • 호수 1536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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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 모델

학창 시절, 외적인 모습으로 놀림 받던 소녀가 지금은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 됐다. 바로 박이슬 동문이다. 진정 자신이 어떤 사람인 줄 모르고 타인의 잣대에 흔들렸던 어린 시절을 지나 박 동문은 이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버킷리스트를 달성하는 소녀
그녀의 학창 시절은 크게 버킷리스트를 쓰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를 쓰기 전 그녀는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자신을 판가름하는 시선에 위축돼 자신을 타인에게 맞추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한 후로, 서서히 변화할 수 있었다. 이에 박 동문은 “버킷리스트의 항목을 하나씩 실천하며 느낀 성취감을 통해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답하는 시간을 통해 그녀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제2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하는 그녀
대학교 3학년을 앞두고 그녀는 “지금이 아니면 꿈을 찾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았기에 휴학을 결심했다”며 “대학 생활 안에서 잘하는 것도 많았지만 마음 한켠으론 날씬한 몸과 예쁜 얼굴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 동문은 인생 마지막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섭식장애와 다이어트 강박증만 남아 그녀에겐 오히려 독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독한 다이어트를 강행했던 이유는 꿈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그녀는 「도전! 슈퍼모델」이란 방송을 보고 모델에 대한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박 동문은 “카메라 앞에서 워킹과 포즈로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마치 작품 그 자체가 되는 것 같았다”고 말하며 오랫동안 모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를 전했다.

하지만 날씬한 몸을 위해 먹은 걸 토해내고 허탈하게 앉아있기만을 반복하던 와중에 ‘단지 꿈을 이루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란 생각에 빠졌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명상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거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해외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알게 돼 지원했지만, 돌아오는 건 “너는 플러스 모델을 하기엔 너무 말랐어”란 말뿐이었다. 또다시 그녀에게 고비가 찾아온 것이다. 박 동문은 “이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결국 모델을 하기 위해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밝혔다. 오랜 꿈이었던 모델을 포기할까 생각한 그녀였지만, 친한 동기의 “그럼 네가 1호해”란 말이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 탄생에 불을 지폈다. 이에 박 동문은 더 이상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세상의 기준이 되는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란 직업을 창조했다. 

그녀는 “국내에선 한국인의 체형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마네킹 사이즈만 존재한다”며 모든 신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초점을 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처음 그녀가 구독자 100명을 대상으로 바디 포지티브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대부분이 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앞으로도 못할 것이란 답변을 남겼다고 한다. 이에 그녀는 ‘당장 지하철만 타도 성형 광고가 널려있는데, 과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있는 것인가?’란 고민을 하며 그들에게 “바디 포지티브를 실천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같이 만들자”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전엔 없었던 한국인 체형에 맞는 현실적인 마네킹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그녀는 「제1회 차별없는 패션쇼」를 직접 기획부터 운영까지 담당하면서 바디 포지티브를 알리고자 다양한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 패션쇼는 언론 매체들을 뜨겁게 달궈놓았을 뿐만 아니라, 모델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제공했다. 

 

▲ 지난 2018년도에 개최된 「제1회 차별없는 패션쇼」에 출연한 모델들의 모습이다. 사진 속 중간에 앉아있는 이가 박 동문이다.
▲ 지난 2018년도에 개최된 「제1회 차별없는 패션쇼」에 출연한 모델들의 모습이다. 사진 속 중간에 앉아있는 이가 박 동문이다.

수식어 없는 모델이 되기까지
그녀가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로서 입지를 다지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지난해 우울증을 겪으면서 버거움이 있었는데, 명상을 통해 회복했다”며 “당시 힘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 힘들어하는 다른 이들을 돕고자 명상지도자로서도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강연가와 작가 등으로도 활동하며 자신이 전하고픈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현재 약 1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그녀의 유튜브 채널명은 영화 「매드맥스」 속 조연 ‘치도’에서 비롯됐다. 그녀는 “초반에 자신감 없고 힘들어하던 치도가 나중엔 악의 무리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박 동문은 “현재는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란 명칭으로 활동 중이지만 궁극적으로 ‘수식어 없는 모델’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녀가 가진 내면의 단단함을 통해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굳건히 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박 동문은 같은 상황에 처해있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며, 자신을 ‘내생각나름’이라 표현했다.
▲ 박 동문은 같은 상황에 처해있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며, 자신을 ‘내생각나름’이라 표현했다.

사진 제공: 박이슬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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