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져, 등록금 문제 여전히 제자리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져, 등록금 문제 여전히 제자리
  • 이휘경 기자
  • 승인 2021.09.06
  • 호수 1534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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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알바를 뛰는가

우리나라는 올해 기준 339개교의 대학이 있다. 그중 사립대는 285개교로, 전체 대학 중 약 84%를 차지한다. 이렇게 사립대학이 많아지게 된 배경에는 한국 전쟁 이후 산업화와 경제 호황이 있다. 점차 고도화되는 산업구조에 따라 고학력의 인력 수요가 높아졌고, 여기에 교육열까지 가세해 전국적인 고등교육 확대가 이뤄졌다. 당시 대학 설립은 국가 재정 상황으로 인해 전적으로 민간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1995년 5·31 교육개혁에서 *대학설립준칙주의를 통해 설립기준을 완화했고, 다수의 사학 법인이 대학을 설립해 고등교육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이후 등록금은 1985년 시행된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를 기반으로 규제가 있기 전까지 연간 몇백만 원씩 오르게 됐다. 당시 사회는 세계화, 민주화와 더불어 정보화까지, 지식에 대한 열망이 이미 크게 올라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고등교육으로 받는 학생들의 혜택이 크다고 여겨졌다. 이 때문에 교육 수혜자인 학생이 직접 학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사립대는 등록금이 주 수입원이었기 때문에 등록금 인상에 대한 제약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이르러 대학 졸업생들의 부채가 심각해지자 등록금 완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졸업생 10명 중 7명이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높은 대학 진학률을 보인다. 고등교육법 제11조에 따라 등록금은 물가 상승률의 1.5배를 넘지 못하게 규제가 돼 있지만, 앞서 언급한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여전히 연간 사립대 등록금은 평균 700만 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대학 등록금은 민간의 고정 지출로 자리 잡혀 학생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2학기부터 올해 1학기까지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을 이용한 학생 수는 약 54만 명에 이른다. 

법에 묶여 수익 창출 못하는 사학 법인
사립대의 재원 구조는 △등록금 △*법인전입금 △정부지원금이다. 이 중 사립대는 10년 넘게 50%를 넘는 등록금 의존율을 보이고 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선 법인전입금과 정부지원금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 중 법인전입금은 쉽게 늘어날 수 없는 구조다. 

법인전입금의 출처인 법인의 수익용기본재산은 △건물 △*신탁예금 △*유가증권 △토지 △기타 재산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토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만, 이는 고정된 자산이라 수익 창출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법인전입금이 적어져 사립대 재정이 높은 비중으로 등록금에 의존하게 된다. 한국사학재단에서 제공한 ‘2020년 학교법인 수익용기본재산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체 중 토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58%에 달하지만 수익률은 1.1%다. 길용수<한국사학진흥재단> 전문위원은 “사립대의 높은 등록금 의존율을 해결하기 위해선 법인과 학생, 정부 부담이 고르게 맞춰질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수익용기본재산을 적정량 확보해야 하는 대학설립 운영기준 때문에 토지를 팔아 돈을 벌거나 자산 운용으로 수익을 늘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사립학교법」 제 28조에 따르면 학교법인이 기본재산을 매매하기 전 관할청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원금 손실이 없는 내에서 조건부 허가가 이뤄진다. 길 위원은 “학교에 투자되는 재산인 만큼 투명하게 관리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현재 정부는 행정 편의주의로 법인의 재산 운용을 사후 관리가 아닌 사전 감독을 하고 있다”며 “재산을 손실 없이 운용하여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선 자산 운용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학교 법인들은 규제로 인해 재산을 늘리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규제를 완화하기엔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84%가 사립대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부담이 크다. 임재홍<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사학 법인이 수익용기본재산을 늘리기 힘든 것은 맞지만 규제 완화를 했다가 막대한 손실이 나면 우리나라 고등교육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사학 법인의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명균<대한교육법학회> 이사는 “사학 법인 이사회 또한 대학 운영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증대하거나 연구 개발을 하는 등 소유 자산 외 자체 수입을 늘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고등교육 지출 OECD 반토막
법인전입금이 늘어나지 못한다면 정부지원금이 많아지는 것으로 등록금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반적인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이 열악하다. OECD에서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 교육지표 2020’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고등교육에 대한 총 공교육비 중 정부가 부담하는 재원이 OECD 평균 68.2%인 반면 우리나라는 38.1%에 불과했다. 국내 대학 중 사립대학 비율이 월등히 높아 정부의 공교육비 지출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학 법인은 재정 지원을 충분히 하지 않는 정부가 각종 대학 평가를 통해 정원 감축을 우선하고 차등적으로 재정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황인성<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도 고등교육에 투자하는 정부 재원이 현저히 적다”며 “정부가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서 사립대를 평가하고 결과를 가지고 차등적으로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가 사립대에 재정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에는 그간의 사학비리로 인해 사립대 전체에 신뢰도가 낮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전반적으로 사학 법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상황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사립대를 지원하기에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것이다. 

정부는 물타고, 사립대는 문닫은 ‘사립대 공영화’
사학 법인은 정부의 규제 완화와 재정 지원을 외치고, 정부는 사학 법인을 믿지 못해 돈을 못주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어느 한 쪽도 재정을 부담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사립대 공영화’ 정책을 내놨다. 사립대 공영화는 대학 운영비 50%를 국가에서 지원하는 대신 이사회의 절반을 공익이사로 구성해 지원금이 투명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사립대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학 법인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이 이사는 “이사회 자리를 내놓으라면서 재정 지원을 조건적으로 하겠다는 정책을 반길 리 없다”며 “사학 이사회 사이에선 자신들이 정부 대신 고등교육 확대에 기여했다는 인식이 팽배한데,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사학에 대한 불신을 전면에 내세운 정책은 실효성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사립대 공영화를 곧 이사회의 권한 박탈로 여기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임 교수는 “사립대 공영화 정책은 이사회와 별개로 학교 운영비를 부담하는 학생과 법인, 정부로 구성된 재정위원회가 학교 회계를 함께 결정하는 것”이라며 공영화에 대한 이사회의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실제로 우리나라는 부유한 축에 속하고 고등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며 “그러나 사학 법인 이사회가 폐쇄적으로 회계를 결정하는 상태에서 국가 자원을 들이긴 위험하다”고 말했다.

결국 사립대는 공영화 정책을 정부의 간섭으로 바라보며 문을 닫고, 정부는 사립대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학생들만 꾸준히 대학 운영비를 떠받치고 있는 실정이다. 

 

해답은 사립대와 정부의 신뢰 구축 후 협력
이 같은 갈등은 수년 간 이어져 왔다. 이 이사는 “사학 법인과 정부 모두 양보하지 않으니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공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사학 법인과 정부의 갈등 해결 실마리는 신뢰 구축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부 사학들의 부정부패를 말끔히 해결해 투명한 사학 법인과 정부가 서로를 신뢰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사립대 회계 법령을 우선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임 교수는 “고등교육은 학생들이 받을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사교육에 돈을 투자하고, 입학 후에도 막대한 돈을 또 내게 하는 것은 굉장히 기이한 상황”이라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정부의 재정 지원을 확대할 수 있을 만한 신뢰를 구축한 후, 지원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립대의 회계 투명성이 보장되려면 사립대 회계 법령을 국·공립대 법령과 동일하게 개선하고 부정부패에 대한 감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선 모든 사학 법인을 잠재적 비리 사학으로 보는 정부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한다. 황 처장은 "이미 회계는 정보 공시제로 비리를 저지르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정부가 비리 사학과 사학 비리를 구분해 사립대를 믿어주고 마음껏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공고한 법령을 기반으로 일관되게 교육 정책을 추진해나가는 국가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 이사는 “정권이 바뀌면 추진되던 사업도 무산되는 일이 다반사”라며 “우리나라 고등교육을 이끌고 있는 사립대에 대한 법을 확실히 제정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집행해나갈 수 있는 중앙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수명<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도 “현 정부가 추진하는 기본역량 진단 사업은 분명 좋은 취지지만, 고등교육 지원이 ‘사업’처럼 운영돼선 안 된다”며 “국가는 학생들을 위해 교육정책에 있어 꾸준한 자세로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사학 법인도 대학의 교육기관 본분을 잊지 말고 학교 운영에 대한 논의의 장에 구성원을 다양하게 참여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안정적인 고등교육 생태계가 만들어져 모두가 책임감 있게 올바른 대학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사립대 운영 재원을 거의 학생들이 부담하고 있는 상황인데, 회계 결정에 학생이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구조는 말이 안 된다”며 “투명한 사학 법인에 대한 신뢰를 쌓으려면 학생들을 논의의 장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은 갈등의 중심이 아닌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장 교수는 대학 본연의 목적이 진리 탐구를 기반으로 시민 형성 기능과 개인의 경제 활동 역량을 키우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스스로와 사회에 대한 민주적 현안들에 있어, 이를 공론화하고 열띤 토론을 하게 해주는 기능을 잃어버렸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덧붙여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학생들에게 투자되는 교육비가 현저히 적다”며 “학생들한테 받은 돈에 더해 학교 자체 수입, 국가 자원 등으로 양질의 교육과 더불어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게 더 많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에게 진정한 투자가 이뤄지도록 더 넓은 관점에서 대학 사회의 현안을 바라보고 하나씩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학생들이 등록금 투쟁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교육의 탈을 쓰고 책임을 떠넘기는 갈등 양상 속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힘겹게 살아나가고 있다. 오늘도 취업 걱정에 잠 못 이루고 꿈을 향해 과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정부와 사립대 모두 진지하게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고 실질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대학설립준칙주의 :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학교를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법인전입금 : 법인이 학교에 주는 돈을 뜻하며, 학교 법인은 수익용기본재산으로 얻는 소득의 80%를 학교에 출자해야 한다.
*신탁 예금 : 신탁 은행에서 취급하는 예금이다.
*유가 증권 : 사법상 재산권을 표시한 증권이다.

도움 : 길용수<한국사학진흥재단> 전문위원
이명균<대한교육법학회> 이사
임재홍<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장수명<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황인성<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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