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소리와 현재의 소리가 어울렁더울렁 내려온다
과거의 소리와 현재의 소리가 어울렁더울렁 내려온다
  • 나병준 기자
  • 승인 2021.08.30
  • 호수 1533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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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송희 국악인

지난해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날치의 노래 ‘범 내려온다’. 여기엔 본교 국악과를 졸업한 국악인 권송희 동문의 개성 있는 보컬이 함께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국악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소녀는 어느덧 국내외를 넘나들며 국악의 매력을 알리는 진정한 소리꾼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 2018년 결성한 그룹 이날치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한 그녀. 그녀를 만나 국악인으로서 지나온 삶은 어떠했고 앞으로 어떠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들어봤다.

「서편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가족과 함께 영화 「서편제」를 보고 판소리를 처음 접하게 된 그녀는 영화 속 주인공이 ‘소리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따라 하곤 했다고 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을뿐더러 판소리에 재능을 보였다는 부모님의 생각에 그녀는 그렇게 소리꾼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친구들에게 ‘판소리 하는 특이한 학생’으로 기억됐다고 전했다. “또래 친구들이 보기엔 판소리는 낯설고 독특했던 장르였기 때문에 그렇게 기억됐을 것”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이후 국립국악고를 거쳐 본교 국악과로 진학하게 된 권 동문. 그녀는 대학시절을 각종 대회 준비와 국악 뮤지컬 집단 ‘타루’의 배우 활동을 하며 보냈기에 바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재학 중 여러 활동을 하면서 ‘소리꾼으로서 내가 하는 판소리가 어떻게 하면 동시대와 조화롭게 들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은 물론 수많은 장르와도 협업했던 거죠.”

국내, 해외 그리고 이날치
그러나 판소리를 하고 있음에도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성도 낮을뿐더러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는 그녀. 이러한 고민은 자연스레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는 판소리의 현대화가 아닌 ‘현재화’를 위해 노력해야겠단 결론으로 이르렀고, 자유 국악단 ‘타니모션’의 보컬리스트와 ‘권송희 판소리 LAB’이란 솔로 활동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이러한 활동은 그녀가 △작사 △작창 △퍼포먼스가 가능한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창작의 원천에 대해 그녀는 “아직도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이나 퍼포먼스 등을 따라해 보면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나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 ‘권송희 판소리 LAB’ 활동을 통해 공연 「모던심청」을 선보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다. 그녀는 이 밖에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권송희 판소리 LAB’ 활동을 통해 공연 「모던심청」을 선보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다. 그녀는 이 밖에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소리꾼으로서 그녀의 모습은 국내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해외 각국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의 초청 덕분에 국제무대에도 섰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미국 국무부에서 주최한 ‘원 비트 레지던시(One Beat Residency)’를 통해 처음 해외로 진출하게 된 그녀는 이 공연을 두고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30여 개국의 음악인들이 모여 한 달 동안 미국 전역에서 공연하는 활동이었어요. 활동을 통해 각국의 뮤지션들은 물론 음악감독님들과도 알게 되면서 세계가 굉장히 넓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가 크게 감명받았던 건 국악을 받아들이는 세계인들의 태도였다. “사실 국내에서 판소리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해외에선 판소리를 특정 국가의 특정한 장르로 국한하지 않고 하나의 음악으로 들어주더라고요. 그 모습에 고마웠어요.”

지난 2018년엔 음악극 「드라곤킹」을 선보이면서 함께한 이들과 이날치란 그룹을 결성함으로써 그녀의 국악 인생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들이 지난해 발표한 음반 「수궁가」의 수록곡인 ‘범 내려온다’가 유튜브 조회수 1천만을 넘으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개최된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모던록 노래 △최우수 크로스오버 음반의 3관왕을 차지하기도 한 그녀. 수상 결과와 함께 노래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과 함께 “묘하게 낯선 매력과 중독성 있는 가사, 함께한 댄스팀의 멋스러운 안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게 컸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치의 일원으로 활동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기도 하면서 행복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그녀는 이날치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사실 이날치는 ‘국악을 널리 알려야겠다’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을 하자는 데에서 출발했거든요.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죠. 이날치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더 많은 관객과 호흡할 수 있게 돼서 감사해요. 인생에서 과연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니까요.”

현시대의 소리꾼, 도전은 계속된다
소리꾼으로 활동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은 그녀는 국악이 가진 매력을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지는 게 다르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옛날엔 기술적인 면에만 집중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소리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소리를 배우면 배울수록 노래 가사와 무대 콘셉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됐고 소리가 가진 힘을 느낄 수 있게 됐어요. 배우면 배울수록 몰입감과 깊이가 상당한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공연 혹은 영상 매체를 통해서만 관객들을 만날 수밖에 없어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그립다는 그녀. 실제로 그녀는 지난해 선보인 공연에서 모든 관객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관객들을 영상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고 전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과감한 소리꾼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처럼 지금보다 더 많은 무대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 그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 흔히 소리꾼이라고 하면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음악인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현시대에 활동하는 소리꾼으로서 현재와도 끊임없이 소통하는 그녀는 스스로를 ‘21소리꾼’이라고 표현했다.
▲ 흔히 소리꾼이라고 하면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음악인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현시대에 활동하는 소리꾼으로서 현재와도 끊임없이 소통하는 그녀는 스스로를 ‘21소리꾼’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제공: 권송희 국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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