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전세대출? 대학생에겐 유명무실할 뿐
청년 전세대출? 대학생에겐 유명무실할 뿐
  • 조은비 기자
  • 승인 2021.06.06
  • 호수 1532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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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주거 정책 있어도 방 한 칸 얻기 힘든 대학가···주거 복지 사각지대 놓인 학생들

“안 돼요, 안 돼. 내가 한양대에서 15년째 부동산 하고 있는데 중소기업취업청년이니, 버팀목이니 하는 전세대출로 계약 성사시켜 본 게 딱 한 번이라고. 하루에 ‘버팀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 없습니까’하고 전화가 50통이 오는데 나도 답답하고···. 아니, 취지는 좋아요, 나라에서 보증금 없는 대학생들 대신 돈 내주겠다는데. 근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현실이랑 안 맞아. 이건 구조적인 문제라고.”

청년 전세대출로 얻을 수 있는 원룸 매물이 있냐고 묻자 왕십리역 부근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한 말이다. 이외에도 우리 학교 서울캠퍼스 인근 부동산 32곳을 돌며 같은 질문을 했지만, ‘어렵다’ 또는 ‘없다’는 대답들만 돌아왔다. 청년 전세대출을 이용하면 목돈인 전세 보증금을 금융 기관에서 대부분 해결해주는 데다 월세보다 훨씬 저렴한 대출금 이자만 내면 되기에 많은 학생이 기대감을 안고 부동산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문제는 실제론 이를 활용해 자취방 한 칸 구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대학가 원룸 중엔 전세대출 승인이 어려운 ‘불량한’ 건축물이 대다수라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가 만연한 불량 건축물들, 모조리 대출  불가
대학가 원룸 중엔 ‘불량한’ 건축물이 대다수인데, 이런 경우 금융 기관에서 대출을 승인해주지 않아 대학가에선 청년 전세대출 제도가 유명무실한 상황이라 한다. 전세 보증금 대출이 최종 승인되기 위해선 신청이 접수된 집이 주택이어야 하며, 위반 건축물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에 따르면 이 요건을 충족하는 원룸이 대학가에선 매우 귀하다. 학교 인근 원룸 건물 중에선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로 편법 등록돼있는 경우가 더러 있고, 주택 종류로 등록돼있는 건물들마저 ‘위반 건축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먼저, 대학가 임대인들이 건축물을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받은 뒤, 내부를 주택 형태로 개조해 원룸 임대를 해온 관행이 청년 전세대출의 걸림돌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린생활시설은 법적 성격이 주택이 아닌 상가이므로 청년 전세대출은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형태의 주택 전세대출도 불가능하다. 용답역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 A씨는 “불법 용도변경으로 만들어진 일명 ‘근생 빌라’가 대학가에 많고 그 경우 일반적으로 저소득층 학생들의 수요가 높은데, 거긴 ‘주택’ 전세자금대출 승인 자체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세대출이 불가능한 위반 건축물 또한 대학가에선 흔한 풍경이다. 여기서 위반 건축물은 준공 후 소속 구청 건축과에 사용승인검사를 받고 나서 무단으로 불법 증축, 방 쪼개기 등을 한 건축물을 말한다. 이런 식의 불량 건물이 난립한 탓에 우리 학교 인근 △마장동 △사근동 △왕십리역 주변 △용답동에서 청년 전세대출로 입주가 가능한 원룸이라 판단되는 매물은 드물다. 왕십리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 B씨는 “한양대 앞 건물들은 100% 위반 건축물”이라며 “오래된 건물은 당연하고, 최근 지어진 신축 건물들도 들여다보면 전부 불법이니 전세대출이 가능한 집이 없는 것”이라 말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 기금지원 관계자는 “청년 전세대출은 보증금 마련이 어려운 이들에게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일종의 복지 제도는 맞지만, 그렇다고 공공기관이 자격도 안 되는 건물들에 대출 승인 허가를 해주긴 어려운 일”이라 답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 B씨는 “이미 불법이 판치는 대학가에서 전세대출 요건을 맞출 수 있는 매물은 거의 없다”며 실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봤을 땐 복지 정책이 현장에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단 지적을 했다. 

 

 

청년 전세대출 세입자 거부하는 임대인들, 동의 구하기 어려워
이론상 대출 승인이 가능한 주택이라 하더라도 넘어야 할 관문은 아직 남아 있었다. 청년 전세대출 중 주택도시기금의 대출 상품들은 집주인, 즉 임대인의 주택을 담보로 하는 대출 상품이므로 임대인 동의 절차가 필수인데, 허락해주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나이가 많은 임대인들은 청년 전세대출 제도도 생소하고, 자신의 집이 담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기 때문에 중개사가 나서서 간곡히 설득해도 10명 중 1명이 허락해 줄까말까 한다”고 말했다. 

담보 대출이 아니어서 임대인의 동의가 필수적이지 않은 상품도 있지만, 어차피 임대인에게 통보가 되므로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임대인들은 대출금 비중이 큰 세입자를 선호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선뜻 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장역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 C씨는 “세입자가 대출을 90%, 100%까지 받아 보증금을 내면 이후 임대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줘야 할 대상이 세입자가 아닌 은행이 된다는 점을 많이들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가장 필요한 학생들은 이용하지 못한다
하후상박(下厚上薄)이어야 할 복지 제도가 오히려 하박상후(下薄上厚)로 실행되고 있단 의견도 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 D씨는 “대출이 90%까지만 나오는데 학교 근처 원룸의 전세가가 워낙 높다 보니 10%의 보증금을 학생 신분으로 마련할 여력이 안 돼서 이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무 살 D씨가 생애 처음 자취방을 알아본 한 달 전 학교 근처 원룸 전세보증금은 최소 7천. 보증금 지원 최대한도인 90%까지 대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7백만 원의 자기 돈이 있어야 했지만, D씨가 그 돈을 마련할 방법은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 주택에 따라 90%까지 대출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D씨는 대출 지원을 받는 것은 포기하고, 보증금 0원/월세 37만 원짜리의 고시원을 들어갔다. 
 

대학생에 실효성 있는 맞춤 주거 복지 정책 별도로 마련돼야
대학가의 현실 앞에 무용지물이 된 청년 전세대출을 두고 지수<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공공의 힘으로만은 주거 문제 해소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임대시장의 공공성을 높이는 청년 전세대출 정책도 주거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병행될 필요는 있다”며 “대출 정책 자체보단 대학가의 위반 건축물같은 불법적인 형태의 공간이 방치되고, 현재까지도 양산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지적했다. 덧붙여 지 위원장은 “하지만 현 대출 정책은 대부분 자부담금이 필요하므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는 ‘월세 직접 지원’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확대하는 것이 주거 복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대학생들도 대상이 된다고 알려진 청년 전세대출은 막상 손을 뻗어보면 멀리에만 있다. 현실과 괴리가 큰 정책은 대학생들의 허탈함만을 키울 뿐이다. 대학생 맞춤 주거 복지 정책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움: 지수<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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