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에게 듣는다 - 중동지역 전문가 신양섭 교수
전문가에게 듣는다 - 중동지역 전문가 신양섭 교수
  • 성명수 기자
  • 승인 2006.10.02
  • 호수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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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파병, 어떤 명분도 없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레바논 파병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국익을 고려하면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는 반면 자이툰 부대부터 빨리 불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대신문은 중동지역 전문가 신양섭<한국외대·중동연구소> 교수를 만나 레바논 파병 문제에 대한 해법을 들어봤다.

레바논 파병 안이 나온 배경은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레바논 파병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 때도 그랬듯이 실질적으론 파병 약속을 다 해놓고 속임수일 수도 있다.
미국으로서는 국제 여론을 합법화·정당화시키기 위해 되도록 많은 국가들이 전쟁에 참여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라크와 레바논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은 미국이 주도하는 것에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동원된 것이고 레바논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간의 충돌이라는 점이다.

레바논은 현재 어떤 상황인가
세계의 여론은 미국 주도이기 때문에 헤즈볼라를 테러세력으로 보고 있지만 그들은 합법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정당이다. 레바논은 오랜 내전을 겪으면서 종파 간, 종교 간의 갈등이 심해 정부군에 힘이 없는 와중에 유일하게 외세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이 헤즈볼라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남부를 강제 점령한 이스라엘에 대항해 국가에 대한 자존과 자립의 차원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인데 어떻게 테러세력이고 무장집단인가.
이스라엘은 남부의 팔레스타인 하마스와도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승부를 보려 했지만 오히려 당한 셈이 됐다. 그 동안 이스라엘과 제대로 대항해 본 이슬람 세력이 없었는데 헤즈볼라는 승리했고 그들은 중동 아랍 세계의 자존심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도와 자존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제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으로 파병을 하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헤즈볼라와의 충돌은 곧 전 아랍세계와의 충돌을 의미하고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무엇이 있을까.

국익을 위해 레바논 파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석유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협조해야 한다고 하는데 미국이 중동지역에 손을 대면 댈수록 유가는 더욱 올라간다. 국제경제를 자유롭게 풀어놔두면 그 원리에 의해 에너지를 수급하면 되는데 왜 군사적으로 빼앗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미국이 지속적으로 이란을 압박하는데 이란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기라도 하는 날엔 전 세계 원유의 90%가 페르시아 만에 묶이게 된다. 그러면 세계는 어떻게 될까.

자이툰 부대 주둔 연장 안은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자이툰 부대는 분쟁이 없는 쿠르드 지역에서 학교·병원·모스크 등을 지어주고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라크의 전후 복구 사업에서 경제적 이득을 노리고 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것인데 사실 중요한 이권은 미국 기업들이 다 가져간 상황이다. 차라리 파병을 통한 경제적 이득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중동 시장에서 한국이 갖는 이미지가 좋으니 그것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중동과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노 대통령은 조사위원회를 파견하겠다고 하지만 이라크 파병 때처럼 국민들의 반감수위조절을 위한 제스처일 확률이 높다. 미국에서 보면 우리는 레바논 파병을 요청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나라다. 어느 정도 군사력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이 레바논 파병을 요청하리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곤란하다’, ‘국민 여론에 붙이겠다’는 반응을 보여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손으로 뽑힌 정부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 어떤 것이 정당한지를 따지는 대토론회를 연다든지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국민들도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파병을 안 한다고 해서 미국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뒤에서는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지만 국민이 싫어하는 일을 밀어붙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국익도 중요하지만 정의와 명분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이 언제까지 패권국가로 있을까. 역사에서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 한 것은 한 순간이다.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졌을 때 양 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캐스팅보드를 쥘 수 있는 자주성을 확보해야 한다. 강대국을 무조건 따라가서는 앞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다행히 국민들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정부 입장에서도 외교 관계를 펼치는데 있어 난감한 일이 많겠지만 정부라는 것이 국민들의 여론을 중심으로 운영돼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들이 반대하니까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는가. 자주적으로 내세울 것은 내세우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거부할 것은 거부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정리·사진 성명수 기자 sumysu@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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