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생의 진리는 이곳에
[칼럼] 공생의 진리는 이곳에
  • 김하늘<사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 수료
  • 승인 2021.05.09
  • 호수 1530
  • 1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하늘<사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 수료

필자가 사는 곳은 충정로역에서 도보 3분 거리의 작은 오피스텔이다. 1000에 50. 알만한 가격대에 알만한 사이즈리라. 다만 필자가 사는 이곳 7층의 전망은 알만하지 않다. 인근 건물들 중 높은 축에 속하는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깥은 험난하다.

충정로에서 유명한 곳은 먼저 충정 아파트(193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로 드라마 「스위트홈」의 배경), 그리고 성 요셉 아파트(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인근 약현성당의 △성직자 △수도자 △신자를 위해 지어진 아파트), 마지막으로 돼지 슈퍼(영화 「기생충」에서 등장한 슈퍼로 영화 초반 기우와 민혁이 술 마시던 곳)가 있다. 그리고  필자가 머무는 방에서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달동네는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행복동 마을의 배경인 곳이다.

곳곳에 ‘철거’라는 붉은 페인트칠이 얼기설기 창문과 벽, 문을 물들이고 여기저기 건물 외벽의 철근은 벽돌이나 자재가 수줍게 노출돼 있다.

재개발 논의가 꾸준히 돼 왔다던 충정로역 인근 새소문로와 중림로5길 지역은 주위의 기본 15층 이상 건물들의 위용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역사 속에서 조용히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왔다.

몇 년 전 아직 이 지역에 사람이 살던 시기에 크리스마스 이브, 필자가 이 지역을 지나가던 길이었다. 폐지를 주워 리어카에 싣고, 그 폐지 덩치가 본인보다 3배는 큰데 그 리어카를 끌고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시는 분을 본 일이 있다.

공익광고 클리셰처럼 한겨울에 장갑도, 그리고 목도리도, 길거리에 천지 빼까리라던 패딩도 입지 않으시고 긴 소매 옷에 누빔 조끼 하나 걸치셨던 할머님. 그 큰 리어카를 본인이 사는 곳까지 끌고 들어갈 수 없어 마을 입구 초입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계셨다.

평소 숫기가 없어 나서고자 하는 마음만 있지 실천력은 잘 없던 필자는 날짜가 주는 훈기에 용기를 얻어 목적지를 여쭙고, 같이 있던 친구와 같이 그 폐지 덩이를 나눠 들고 할머님이 사는 곳까지 들어 드렸다.

다 옮긴 뒤 할머님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우리를 문밖에 세워두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님은 시간의 때가 잔뜩 묻은 손으로 우리에게 땅콩 캬-라멜 두어 개와 따뜻한 율무차를 타서 내어 주셨다.

지금 사는 이 집에선 그때 갔던 할머님의 집이 보인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채 방치돼 벽 곳곳엔 넝쿨이 주렁주렁, 이름 모를 식물이 자욱하고 인근에서 날아온 아무개 꽃이 지붕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도 작은 마당은 존재해 뚜껑이 날아가거나 깨져 아무렇게나 놓인 항아리, 마당 한 편에 수도꼭지와 물을 받는 바구니가 낡고 헤진 모습으로 놓여있다. 밤이 되면 이곳에 치안을 목적으로 설치된 가로등이 켜진다. 아무도 살지 않아 켜질 필요가 없는 가로등이 하나둘 켜진다. 군데군데 패여 관리되지 않은 길바닥에 만들어진 웅덩이엔 비가 온 뒤 어김없이 물이 고여 새와 고양이가 물을 먹고 간다.

재개발의 광풍이 휩쓸고 간 이곳 풍경은 어느 집이나 공평하게 이런 모습이다. 이전에도 이 공간은 모두가 공평했을 것이다. 재개발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저 돈을 기다려줄 뿐이다. 이곳은 곧 없어질 것이다. 여기에 수많은 이야기가 이제 곧 소멸할 것이다. 다음엔 어떤 삐까뻔쩍한게 들어올지는 모른다.

우리가 사는 곳들, 터전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주춧돌을 딛고 선 ‘현재’이다.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다 어느 곳으로 갔을까? 요 몇 년간 ‘레트로’, ‘복고’ 이런 단어가 유행한다고 하던데. 필자는 내 방 창문 너머를 지그시 바라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