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며 떠나보내는 방법
죽음을 기억하며 떠나보내는 방법
  • 이재희 기자
  • 승인 2021.05.09
  • 호수 1530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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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장례문화는 크게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금지 조치가 시행되면서 외출에 대한 심리적인 불안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로,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조문객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가족장 △무빈소 △하루장 장례식 등 차례 절차를 간소화 한 ‘작은 장례식’이 생겼다. 이를 선택한 사람들은 기존의 장례 관습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고인을 추모한다. 그뿐만 아니라 비대면 장례문화도 활성화됐다. 요즘엔 부고 알림에서 ‘조문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계좌번호를 담아 보내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해 시작한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e하늘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에서 유족이 고인의 영정 사진을 온라인 누리집에 등록할 수 있고, △분향 △상차림 △헌화 등 이미지를 선택해 온라인 추모관을 꾸밀 수 있다. 고인을 추모하는 영상을 메신저나 SNS로 친척에게 공유해 가족이나 친지와 공유해 고인을 추억하는 방식이다. 

장례문화 속 일제 잔재
이렇듯 장례문화는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 내부에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여전히 우리나라 장례문화 속 존재하는 일제 잔재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나라는 일본 의례에 영향을 받았다. 본래 고인이 입는 옷은 수의였다. 전통적으로 비단이나 벼슬을 한 사람에겐 관복을 입히기도 했는데 고인에 대한 존중, 최고의 예우의 의미를 담았다. 유족들이 입는 옷은 상복인데, 이는 죄인들이 입던 삼베로 만든다.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못한 죄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고인에게 삼베옷을 입힌다. 이건 일본이 만든 ‘의례 준칙’ 때문이다. 의례 준칙은 일제가 조선의 관혼상제가 지나치게 번잡하다면서 만든 일종의 *가정의례를 간소화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장례 문화가 대폭 수정됐다. 원래 조선 시대 상복은 삼베옷이 주를 이뤘는데 지난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의례 준칙을 기점으로 상복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통 상복인 거친 삼베로 만든 건(巾)과 옷을 생략하고, 왼쪽 가슴엔 검은 리본, 왼쪽 팔엔 완장을 차게 했다. 요즘 상가에서 보는 상중임을 표시하는 상장과 완장이 여기서 유래했다. 영정에 놓는 국화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시기, 수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일제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의례 준칙을 만든 것이다. 이철영<동국대 생사문화산업학과> 교수는 “비단옷을 입히는 우리나라 장례 방식을 두고 볼 수 없던 일본은 가장 싼 베를 이용해 의례복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제의 문화를 주입시켰다”고 설명했다. 

‘보여주기’ 식 장례문화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과시성 장례문화도 문제다. ‘마지막 며칠, 효도해야하지 않겠습니까’란 장의업자들 마케팅에 비싼 장례식 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이필도<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엔 없는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장례 관습 속 체면을 세우거나 과시적인 행태가 나타는 것이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례식을 치르게 되면, 그 유가족은 장례식장 직원에게 금액에 따라 달라지는 장례 방식에 대한 서류를 받는다. 여기엔 △수의의 등급 △음식의 질 △장례식 공간 △제단 장식 이 포함된다. 조문을 하러 온 사람들은 고인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급을 매기고, 부조를 얼마나 할지 눈치를 보거나, 이를 내세워 생색을 내기도 한다. 고인 중심으로 치러져야 할 장례가 보여지기 위한 형식으로 변질된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장례문화의 모습은…
계속 존재했던 문제들에 대한 원인을 들여다보면, 결국 장례에 대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국가의 지도층들이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했는데, 이것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 이유는 일제강점기 후 국가 지도층들이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데, 자연스레 이들이 만든 국가의 법이나 제도엔 일본 영향이 담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난 1934년도에 일본이 발표한 의례준칙이나 1969년도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가정의례준칙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이철영 교수는 “이마저도 일본의 의례준칙을 모방한 것과 다름 없고, 우리의 장례 의례 자체가 지금 일제강점기에 멈춰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에 대한 국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죽음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필요하단 말도 나온다. 이철영 교수는 “잘못된 의식을 가진 의례방식을 계속 끌고온 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다”며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 그 앞선 세대로부터 이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로 현대 사회까지 와 있는 것”이라 말했다. 즉, 죽음과 의례에 대한 교육과 바른 이해가 이뤄져야 장례에 대한 바른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장례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맞물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다. 앞으로 변화할 장례 방식은 우리 관습의 형식을 훼손하지 않는 모습으로 발전하길, 과시성이 아닌 진정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장소가 될 수 있길 바라본다. 
 


*가정의례: 개인의 일생에서 경험되는 중요한 사건과 관련해 가족을 중심으로 행하는 혼례·상례·제례·회갑연 등의 의례다.
도움: 이철영<동국대 생사문화산업학과> 교수
이필도<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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