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둘레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
‘세계’의 둘레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
  • 이휘경 수습기자, 정채은 기자
  • 승인 2021.05.09
  • 호수 1530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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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미나리가 있다
영화 「미나리」가 연일 이슈다. 「미나리」는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인의 삶을 담았다.
이처럼 세계 각지엔 미나리들이 살고 있다. 타지에서 삶을 찾으려는, 마냥 따뜻하진 않은 곳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살아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외국에서 살아남으려는 ‘한국인’을 보며 감동하는 우리는 과연 우리나라에 삶을 찾으러 온 외국인에게 작은 손길이라도 내밀고 있을까. 또, 국제적으로 인권 보호 나라로 홍보하는 한국은 정말 이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한국에서 ‘세계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세계인의 날을 아시나요?
오는 5월 20일은 세계인의 날이다. 이날은 2007년 5월,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이하 외국인 처우법)에 따라, ‘국민과 *재한외국인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제정됐다. 5월의 많은 기념일 사이에서 세계인의 날은 마음먹고 달력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존재조차 알기 어려운 아주 낯선 날이다. 
세계인의 날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황순재<인문대 사학과 16> 씨는 “알지 못했다”며 “아직까진 단일민족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지정한 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기념일 지정 취지를 묻는 질문엔 “한국 사회를 다문화 사회로 융합하고자 하는 날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시민 A씨 역시 세계인의 날을 “잘 모른다”며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는 날인 것 같다”고 추측했다. 같은 질문에 김우성<서울시 중랑구 56> 씨는 “들어보긴 했지만,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 그 의미나 취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세계인 없는 세계인의 날
외국인처우법 제4장 19조에 의해 세계인의 날부터 일주일 동안은 ‘세계인 주간’으로 지정돼 있다. 지난해엔 코로나19로 행사가 연기되거나 취소됐지만, 매년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는 이날을 맞아 △기념식 △정책 포럼 △체험 프로그램 △축하 공연 등 각종 행사 열기에 여념이 없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얼핏 그럴 듯 하지만 과연 이 일주일은 정말 세계인을 모두 포용하고 있을까. 
또한, 이 일주일을, 5월 20일 단 하루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한국 속 ‘세계인’이 훨씬 더 많다. 많은 이주노동자는 이날에도 건설 현장과 농장,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며 한국 사회의 따가운 차별의 시선을 견디고 있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지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더 넓은 세계를 포용하자는 의미를 담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 날은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세계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코로나19와 이주노동자
1980년대 후반 한국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이주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간 지도 30여 년이 됐다. 그리고 지금,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엔 252만5천 명의 재한외국인이 있다(2019년 12월 말 기준). 
지난 3월 서울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의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에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으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가 ‘이주노동자만을 콕 집어 진단검사를 받도록 강제하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조처’라는 논란이 일었고, 이틀 만에 이를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마스크, 코로나 관련 정보를 비롯한 모든 것에서 배제되거나 후순위로 밀려났다. 우다야 라이<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코로나19 속에서 “몇몇 사업장에선 노동자를 기숙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마스크 지급도, 거리두기도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에서 감염병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 관련 정보도 제공받지 못해 코로나에 걸리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윤자호<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감염)병은 누구나 걸리는데 특정한 존재에게 검사를 받도록 강제하고, 음성이 확인됐을 때에야 산업 현장으로 투입되는 인식과 정책은 되돌아봐야 할 차별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살갗이 아리는 추운 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다 사망한 채 발견된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들의 주거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이 문제에 있어 이주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을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으며,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의 노동환경은 더욱 처참하다. 올해 초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발행한 「한국 이주노동자 실태와 고용허가제의 현황」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내국인 노동자의 6.4배’에 이르렀다. 윤 연구원은 이주노동자들이 산업 현장에서 겪는 가장 큰 노동 문제에 대해 ‘산업재해 문제’를 첫 번째로 뽑으며, “‘위험의 이주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 노동자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치명적으로 산업재해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을 더욱 절망하게 하는 건…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날카롭다. 편견도 많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한국보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시킨 대로 해야 하는,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한국과 비슷하거나 경제적 상황이 좋은 나라의 사람들에겐 ‘대우’하는 한국 사회를 마치 ‘약강강약’같다고 얘기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에 대해 윤 연구원 역시 이주노동자를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우리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기는 문화적 인식 때문인 것으로 봤다. 또한, “가뜩이나 바뀌기 어려운 게 인식인데, 성숙하지 못한 미디어가 ‘외국인 혐오’에 일조하고 있다고 본다”며 “혐오 발언을 해선 안 된다는 인식과 규제 방안이 필요한데 그런 장치가 아직 부재하다”고 덧붙였다. 

“커피숍에서 둘이 앉아있는데, 나는 남자 너는 여자, 나는 학생 너는 직장인, 나는 나이가 많고 너는 젊고,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서로 대하는 방식이 시작부터 어려워지고 달라진다. 그냥 너하고 나는 같은 ‘사람’이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너도 할 수 있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럼 그사이 쌓여있는 것들이 없어진다” 
- 압둘와합<헬프시리아> 사무국장

겉과 속이 다른 한국의 난민보호
한편, 고향으로부터 도망쳐 이 땅을 밟았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인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사람들이 있다. 난민이지만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한 채 사는 사람들이다. 난민은 국제 협약에 따라 ‘국적국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을 의미한다.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 5백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왔을 때 크게 이슈가 됐다. 당시 언론은 ‘가짜 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난민들의 입국 목적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을 확산시켰는데, 난민은 전쟁, 박해 등을 피해 급하게 피신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 자체를 의미하지 난민 인정 여부가 난민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2013년 난민법을 제정해,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독자적인 난민법을 가진 나라로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난민 보호는 철저히 소극적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난민 심사를 마친 1만1천여 명 가운데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52명뿐이다. 난민 인정률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작년 인정률은 0.4%로 역대 최저였다.

소수의 손길에 의존하는 삶
국내로 들어온 난민 중 심사조차 받지 못한 난민들도 존재한다. 1년 넘게 공항에 발이 묶여 있던 난민을 구제하기 위해 변호인단이 꾸려지고 한 미디어가 이를 알리기 위해 나섰는데, 이렇듯 누군가가 발 벗고 나서야만 조금이나마 해결되는 실정이다. 어렵게 난민 심사를 거쳐 난민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이들의 한국 정착 과정은 쉽지 않다. 2016년 내전으로 인해 예멘을 탈출한 무함마드 아민<아살람레스토랑> 셰프와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아내 하민경 씨는 “예멘 사람들이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남은 돈으로 숙식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라며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주거 공간, 교육 등의 문제를 국가가 아닌 시민들이 나서서 하고 있다. 국가에서 이들의 문화 적응을 위해 돕고, 좀 더 체계적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시선, 불 지피는 언론
아민 셰프는 한국에 정착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언어도 힘들었고, 할랄 음식이나 돼지고기가 없는 음식을 찾기 힘든 등 문화가 달라 적응하기 어려웠다. 또, 우리가 다르게 생겨서 낯선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힘들었다”고 답했다. 하 씨는 여기에 덧붙여 “예멘 사람들이 낮에는 시선이 신경 쓰여서 밤에 다니고, 밤에는 타지에 있으니 무서워서 몰려다니는 것인데, 여기에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라며 “게다가 정부에서 이런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려고 난민 모두를 대충 교육하고 사업장으로 흩어 보내버렸는데, 그곳에서 술을 강권당하고 돼지고기를 몰래 먹게 하는 등의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이에 사업장을 떠나면 오래 일 못하더라는 둥 말이 나왔었다”라고 했다.
주요 언론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여론에만 집중했다. 제주도에서 한 여성이 실종된 사건과 난민을 연관 지어 보도하고, 이슬람 혐오, 혈세 낭비 등을 내세워 난민에 반대하는 입장만 보도했다. 또, ‘가짜 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혐오 여론이 확산되도록 부추겼다. 시리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현재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시리아 난민 구호 단체를 운영하는 압둘와합<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은 “언론의 역할은 정말 크다. 이를테면 무장 테러 단체인 IS 앞에 무슬림이라는 단어 하나만 붙여도 모든 무슬림 사람들이 IS 사람이 된다. 시리아에 대해 모르는, 멀리 있는 한국인들은 그런 기사를 보면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다”라며 “한 글자로도 의미가 달라지는데, 언론이 무책임하게 수식어를 붙여 기사를 내보내면 피해는 고스란히 난민들이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숙제 많은 난민법
오로지 ‘난민법’을 먼저 제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대외적으로 난민 보호 국가로 홍보되기엔 여전히 엉성한 부분이 많다. 재작년까지 우리나라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의 출생에 대해서만 증명사항을 규정했다. 이는 외국인의 경우 국적국 *재외공관에서만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난민의 경우 탈출한 본국의 승인이 있어야만 출생 신고가 가능하다는 얘긴데, 탈출한 입장에서 신고하러 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압둘와합 사무국장은 “한국에서 난민법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중간중간 잘못되고 애매한 부분들이 있다”라며 “한국의 경우 아주 최근 들어 난민 아동의 출생 등록 권리가 인정됐다”고 했다. 
압둘와합 사무국장은 “먹고 자는 것만이 인간의 삶이 아니다. 법적으로도 인간으로서 기본 권리를 인정해줘야 난민들도 똑같이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다”라며 “또, ’난민이 있다’, ‘난민이 지나간다’라고 말하기 이전에 그냥 ‘사람이 있다’라고 말하면 서류나 지원 등 모든 것이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법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은 채 난민으로 이름 붙이고 그렇게 부르는 순간, 일반 사람과 구분되고 이를 시작으로 처우 면에서도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 제주시에서 ‘아살람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하민경(좌)씨와 무함마드 아민(우)씨의 모습이다.

세계의 둘레는 누가 정하는가
아민 셰프는 현재 한국 생활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행복하다. 지금 내게는 아내가 있고, 가족이 여기에 있다. 책임감과 안정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정 문화’에 익숙하다. 그러므로 코로나19로 나눔과 배려가 위축된 요즘이지만, 마을 단위 공동체를 이루던 시절 ‘정’으로 이웃을 맞이하고, 낯섦을 너머 모든 이를 환대하게 되리란 희망이 있다.
일각에선 수많은 ‘분류 기준’을 만들어낸다. 남자와 여자로 성별을 나누고, 노인과 젊은이를 세대로 나누고, △민족 △인종 △재산 △직업 △출신 △학력 등 수 많은 분류 속에서 ‘공식적’이라는 명목하에 사람들은 세세하게 나뉘고 서로 구분된다. 공동체의 질서를 이루기 위해서라지만 그 구분이 차별의 시발점이 돼서는 안 된다. 모든 것 이전에 우리는 각자의 ‘삶’을 가진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경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 본질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다시, 세계의 둘레는 누가 정하는가. 우린 이미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그 답을 알고 있다. 나와 같은 사람들, 인간 모두가 세계의 둘레 안에 있다는 것이다.

*재한외국인: 대한민국에 거주할 목적을 갖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을 말한다. 
*재외공관: 외국에 설치하는 외무부의 파견 기관으로, 외교, 통상, 국제 정세 조사, 교민 보호 및 대외 선전 등에 관한 역할을 수행한다.

도움: 무함마드 아민<아살람 레스토랑> 셰프
압둘와합<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우다야 라이<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윤자호<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
하민경<아살람 레스토랑>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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