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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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대신문
  • 승인 2006.10.01
  • 호수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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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빈곤 - 프란스 드발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수희재, 2005)

과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일상 현실과 전혀 무관하게 철학자들의 사변적인 관심사였다면, 인간복제의 가능성이 제법 현실화되고 윤리 논쟁이 가열되는 21세기의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간과할 수 없는 실용적이며 윤리적인 현실 정합성과 절박성을 지니게 되었다.
인간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인간의 노력 중 하나는 인간과 다른 종을 분리시키고, 다른 종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동물은 인간의 열등한 타자로서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폄하되어왔다. 특히 인간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동물 폄하의 전략은 서구의 기독교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또한 계몽의 산물로써, 인간을 동물과 분리시키는 것에 멈추지 않고 동물을 인간의 저등한 타자이면서 동시에 우월적 지위의 인간의 차별적 보살핌의 대상으로 변형시켜왔다. 이러한 일련의 인간정체성 확립과정은 동물 자체의 폄하뿐만이 아니라, 인간 내에 존재해왔던 동물적 요소를 억압, 훈육, 제거해왔으며 이러한 억압의 정체성은 인간자체의 빈곤함과 불완전성을 심화시켜왔다.
<원숭이와 초밥요리사>에서 프란스 드발은 인간중심주의 속에서 억압되어온 동물의 문화론에 대한 독특한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드발은 우리는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문화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문화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가? 라는 세 가지 커다란 주제를 화두로 던지며 동물의 시선으로 인간을 재조명토록 한다.
드발에 따르면 인간 속에 내재된 동물성, 동물 속에 내재된 인간성, 혹은 인간과 동물의 공유점들을 드러내는 작업의 대부분은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이원적 구조에 있기 때문에 우리 내면에 억압되어 있건, 동물에 존재하건 관계없이 그 동물들은 끊임없이 인간 중심적 포섭의 시선에 저항한다. 또한 이런 포섭의 시선은 인간 중심적인 인간의 언어로 풀어 나간다는 점에 있어서 그 저항은 보다 거세다. 특히 인간 중심적 언어로 통상적으로 쓰이는 은유, 상징을 통한 의인화, 개념화, 대상화 등은 오랫동안 인간에 의해 억압된 인간내의 동물성을 환기시키고, 끄집어내는데 구조적인 장애가 되어왔다.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에서 자연을 의인화하는 것을 드발은 밤비 콤플렉스(Bambi Complex), 밤비 신드롬(Bambi Syndrome)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동물에 대한 지나친 감상주의적, 동정적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의인화는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이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며, 피상적이라고 폄하한다거나, 인간적 특성을 고도로 지능이 발달된 극히 일부 동물의 경우에만 인정한다. 전통적으로 의인화를 거부하는 것은 그것이 과학의 방해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사이의 연속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인화가 동물의 정신을 과대평가할 위험이 늘 따라다닌다고 하여, 그 반대의 극으로 치달려서 인간과 동물사이에 일부러 간극을 만드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인간과 동물사이의 공통적 특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미리 부정해버리는 태도를 드발은 의인화거부(anthropodenial)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의인화는 인간과 동물이 유사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이솝우화와 같은 의인화를 사용한 동물 우화를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에게 특정한 교훈을 전달하기위해 인위적으로 특정 동물에게 비생태적인 특성을 부여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의인화란 단순히 인간중심적인 수사적 장치에 불과할 것이다. 즉 이러한 정의의 의인화는 인간과 동물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적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간격을 넓히고 인간의 동물지배를 자연화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비판아래, 드발은 의인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시도한다. 드발의 동물중심적 의인화는 인간중심적인 의인화과정을 탈피한 실험적 개념으로 동물의 저항을 언어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드발에 따르면 동물 중심적 의인화는 허구적 수사법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과의 연속성을 증거하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확인시킨다.
동물중심의 의인화는 이론 전개를 위해 매우 유용한 개념이다. 의인화를 바르게 쓰려면 그것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보아야한다. 우리들 내면에 정확히 대응하는 특질을 동물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의인화를 발견의 수단으로 이용할 때, 의인화는 과학전반에서의 직관과 동등한 역할을 하게 되어 예측하고 그 예측을 시험하는 방식과 증명하는 방식을 자문할 때, 의인화는 도움을 줄 것이다.
즉 의인화는 인본주의에 의해 억압되어온 동물성을 인간내면에서 다시 확인하며 되살리는 과정 이전에, 동물성 자체가 어떤 것인지를 동물에게서 확인하고 발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할 것이다.
<원숭이와 초밥요리사>에서 드발은 동물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은 인본주의의 강화와 지속은 동물성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내재된 동물성을 억압하고, 인간과 동물의 벽을 견고하게 만듦으로써, 결국 인간문화의 빈곤으로 초래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세재 <국문대, 영미언어문화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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