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지기 위한 족쇄, 미적기준
예뻐지기 위한 족쇄, 미적기준
  • 이재희 기자
  • 승인 2021.05.02
  • 호수 1529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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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바르면 원하는 대로 외모를 바꿀 수 있는 ‘성형수’, 영화 「기기괴괴」의 소재다. 성형수의 재료로 부모의 살점을 떼어 성형하며 그 부작용으로 살이 모두 녹아내려 욕조가 살덩어리로 가득 차는 장면은 기괴함 자체다. 뚝뚝 떨어지는 살점, 흘러내린 피부 사이의 뼈, 찌그러진 얼굴 등 영화가 묘사한 병적 외모지상주의는 우리 현대 사회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외모에 대한 타인의 시선이 족쇄가 돼 그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외모가 곧 스펙’인 사회 
우리나라는 현대 사회로 접어들게 되면서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기업이 직원을 채용함에 있어 용모단정자 우대 등의 외모 규정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1995년 직업 선택에서 외모 차별을 금지한 「남녀고용평등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최근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에서 여성들이 옷차림을 이유로 모욕을 당한다는 피해 사례를 공개했다. 직장인 A씨는 “어떤 옷을 입던지 몸매와 관련해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법이 통과된 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외모가 스펙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엄격해진 외적기준의 영향
갈수록 사회의 외적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사람들의 일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 쇼핑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사이즈가 작아 반품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전은별<언정대 광고홍보학과 19> 씨는 “쇼핑몰에서 옷을 사면 사이즈가 작게 느껴져 반품할 때가 많았다”며 호소했다. 그러나 이는 체형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사이즈 측정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와 비교했을 때 역시 우리나라 사이즈 기준이 터무니없이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쇼핑몰 바지 사이즈 대부분은 XS 사이즈 허리둘레가 59㎝인 반면 미국의 경우 XS 사이즈가 61~64㎝ 정도다. 미국에선 S 사이즈가 한국에선 XXL 사이즈란 소리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나라 여성복 사이즈는 계속해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소비자들이 구매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대중매체의 발달도 외모의 기준화에 일조해 부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미디어 수용에 적극적인 MZ세대는 TV 등에서 이상적인 외모의 연예인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이들을 미적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들처럼 외모를 가꾸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곽경화<인제대 정신건강연구소> 박사는 “대중매체는 극단적으로 마른 체형을 가진 사람의 사진이나 동영상과 같은 시각적 자극을 통해 규격화된 미의 기준을 내재화 시킨다”고 설명했다.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증가하게 된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이를 따라하려는 결과를 낳는다. 

SNS  역시 외모에 대한 집착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SNS에선 극단적인 방식으로 살을 빼고 있다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글엔 ‘프로아나’ 같은 해시태그가 달려 있다. 프로아나는 거식증을 동경하거나 지지하는 말로, 이들은 무작정 굶거나 ‘먹고 토하기’, ‘씹고 뱉기’ 등의 방법을 통해 깡마른 몸을 만드는 데 열중한다. 식이장애 관련 상담을 하는 김윤아<나를 만나는 시간> 심리상담사는 “이런 현상은 SNS에 올라오는 다이어트, 몸에 대한 이미지들의 영향이 크다”며 “날씬한 몸이 기본적인 기준인 것처럼 얘기하는 SNS상에서 현실과 이상을 분별하기 어려운 10대와 20대는 이를 자동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외모‧체중 강박이 향하는 곳은
예뻐지고 싶고 날씬한 체형을 가지고 싶다는 가벼운 이유로 시작한 다이어트가 압박으로 다가올 때, 이는 다이어트 중독으로 이어지며 결국 거식증과 폭식증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 김 상담사는 “다이어트 자체가 모두 식이장애로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들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해 일상이 흔들리게 될 때 식이장애를 겪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식이장애는 신경성 식욕부진과 폭식증을 아울러 지칭하는 질병이다. 식욕부진은 환자가 강박적으로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를 거부하는 것이고, 폭식증은 반복적인 과식과 구토 증상을 보이는 질병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제도적인 해결책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외국의 경우엔 ‘외모 다양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구축된 편이다. 프랑스에선 BMI 18 이하 모델은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제도가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지나치게 마른 모델은 패션쇼에 설 수 없다. 영국은 정당과 교육기관이 연계해 ‘몸 이미지’ 연구 보고서를 꾸준히 펴내고, 미국엔 ‘미디어에서 건강한 몸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곽 박사는 “우리나라도 학교에서 긍정적 신체 상을 형성하려는 교육 부문의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상담사는 “자극적인 다이어트 보조제나 성형 광고에 대한 제재와, 이에 지나친 중점을 두는 엔터테인먼트사업에 심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개인의 노력도 이뤄져야 한다. 많은 사람이 유행 혹은 습관처럼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보니 이에 대한 집착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곽 박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말하거나 듣게 되는 ‘살 좀 빼’, ‘꾸미고 다녀’ 등 비정상적인 다이어트의 도화선이 되는 말을 자제하게끔 사회구성원 모두의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름다움은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 단어가 지금 사회에선 외적인 부분에만 치우쳐 오히려 우리를 옭아매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다양한 얼굴과 체형을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의 미적 기준에 고통받지 않기 위해 다양한 차원에서 노력이 이뤄지길 바라본다. 

도움: 곽경화<인제대 정신건강연구소> 박사
김동식<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윤아<나를 만나는 시간>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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