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으로 모두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한 장의 사진으로 모두가 기억할 수 있도록
  • 이다빈 기자
  • 승인 2021.04.11
  • 호수 1528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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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효제 사진작가

진정한 영웅들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우리 학교 동문이 있다. 현효제 동문은 본교 인문학부를 졸업해 미국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지난 2017년부터는 6·25전쟁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참전용사를 웃게 하고, 참전용사를 기억하게 만들자(Let them smile, Let them be remembered)’라는 주제의 ‘프로젝트 솔져’를 진행하고 있다. 촬영이 끝나면 ‘당신의 복무에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참전용사에게 사진이 담긴 액자를 전달한다. 국가보훈처와 영국참전협회 등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 받으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연한 기회에 사진과 가까워지다.
그는 학창 시절 특별한 꿈을 가졌다기보단 모범생으로서 성실하게 공부했다. 대학교 입시 준비 당시엔 영문과 진학을 원했지만, 학과가 통합돼 학부제가 시행되던 당시 인문학부에 입학하게 된다. 입학 후엔 음악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천극장 정자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그는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위해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군 복무 당시 웹디자인 열풍이 불어서 전역 후에 웹디자인을 비롯한 다양한 컴퓨터 기술을 배우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웹디자인을 배우던 그는 사진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사진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 역시 이 무렵부터였다. 그는 한 선생님에게 들었던 “네 안에 있는 게 풍족해야 사진도 더 옹골차게 찍을 수 있다.”는 말을 새겨 부단히 자신의 내면을 채우고자 했다. “사진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 친구와 보내는 순간들로 제 안을 채우려 했어요. 이런 순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동시에 제가 찍고 싶은 사진들에도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죠.”

그가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꾸며내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것이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사진에 담길 사람들이 가진 모든 걸 끌어내는 것으로 생각해요.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촬영해 솔직하게 담아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피사체의 외관뿐 아니라 내면까지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 그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운 이들을 위해
상업사진부터 풍경 사진까지 다양한 사진을 찍던 그는 지난 2016년에 진행했던 한 군복 전시회에서 참전용사를 만나게 된다. “한국을 지켰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그분의 눈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어요. 그러다 그와 같은 참전용사의 모습을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인 사진으로 담아내야겠다고 다짐했고, 프로젝트 솔져 사진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현 동문은 수많은 참전용사의 모습을 카메라 속에 담으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참전 용사분께 빠른 시일 내에 액자를 갖다 드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어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졌던 분인데 액자 전달 직전에 돌아가신 분이 가장 안타깝고 마음에 오래 남는 거 같아요.” 

그는 ‘군인의 가장 큰 명예는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구하고 지키는 것’이란 참전용사의 신념을 듣고 이들의 이야기를 알리며 자신의 프로젝트를 지속해서 이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951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대령 ‘윌리엄 빌 웨버’는 전투에서 하루 만에 오른팔과 다리를 잃었어요. 하지만 그는 ‘2차대전은 독일군을 패배시키기 위해 참전했지만, 한국전쟁은 자유를 뺏길 위험에 처해있던 대한민국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참전했기에 후회가 없다’고 전했어요.”

참전용사들을 촬영하는 과정은 시작부터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처음엔 단체나 정보기관이 대부분 비협조적이었어요. 그 시절엔 제가 인지도가 없다 보니 참전용사들을 팔아서 돈 벌고 유명세 얻으려는 게 아니냐며 오해도 받았죠.”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그에 앞서 ‘내가 누구인가’를 소개하는데 많은 시간을 써야 했어요. 제가 하는 일을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한편 현 동문은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지치는 순간이 생길 때면 자연, 특히 나무에서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저 역시도 활기찬 에너지가 필요할 때가 많아요. 오래된 나무의 생명력은 강하기에 세계 곳곳의 오래된 나무를 찾아 사진을 찍으며 힘을 얻어요.”
 

▲ 사진 가운데에 있는 ‘살 칼라토’는 현 동문이 첫 번째로 촬영한 참전용사이다. ‘잊혀진 전쟁’ 속 ‘잊혀진 참전용사’였던 그의 빛나는 눈은 우리의 역사를 증명하는 듯하다.
▲ ‘윌리엄 빌 웨버’ 대령은 현 동문에게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윌리엄 대령을 포함한 참전용사들을 떠올릴 때면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고 마음을 다잡는다.

 

미래 세대들에게 주는 메시지
그는 사람들에게 ‘메신저’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참전용사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 메신저가 되고 싶어요.” 또한, 현 동문은 앞으로도 자신을 희생하며 무언갈 지키는 이들을 사진으로 담고자 한다. “프로젝트 솔져는 전쟁으로부터 나라와 사람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참전 용사에서 나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며 봉사 중인 △경찰 △군인 △소방관들까지 사진에 담고 싶어요.

그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 세대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한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참전용사들에 대한 교육까지 계획 중이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살아계시는 참전 위인들을 만날 기회,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요. 하지만 초등학생과 같은 어린 세대는 그 기회가 없으니 이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주고 싶어요.” 

현 동문은 젊은이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참전용사는 우리를 이 땅에 있게 만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자유’가 당연해진 오늘날을 있게 한 참전용사들의 정신을 사진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그.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는 사진을 촬영하는 현 동문의 활약을 기대해보자.
 

▲ 현 동문은 자신을 ‘나는 사진가’라고 표현했다. 사진 속에 피사체의 모습과 이야기를 동시에 담아내고자 하는 그. 끊임없이 사진가로서 삶을 이어나갈 그의 사진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길 바라본다.

사진 제공: 현효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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