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을 가장한 소통(消通)
소통(疏通)을 가장한 소통(消通)
  • 배준영 기자
  • 승인 2021.04.05
  • 호수 1527
  • 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19일 개최된 2021학년도 제1차 대학평의원회(이하 대평) 회의에서 스포츠산업학과와 체육학과를 통폐합해 ‘스포츠산업과학부’를 신설하는 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이 사안이 대평 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의결되기까지 당사자인 해당 학과 학생들은 관련 내용에 대해 전혀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커리어 개발’과 ‘학문의 융복합 시너지 효과 창출’이란 명목을 내세워 논의 없이 학칙 개정에 나선 학교 측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단 의견이 학생들 사이에서 주를 이루고 있다. 과거부터 여러 차례 빚어왔던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하향식 통보’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것이다. 

한편 학과 통폐합안이 학교 본부의 최종 의결을 거치면 오는 2022학년도부터 예체대의 스포츠산업학과와 체육학과가 스포츠산업과학부로 통폐합된다. 학제 운영은 각 전공을 분리 선발해 1, 2학년은 학부 소속으로 공통 교과목을 이수한 뒤 3학년부터 각 전공에 대한 심화 과목을 이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스포츠산업학과와 체육학과의 학과 명칭은 각각 스포츠매니지먼트전공과 스포츠과학전공으로 변경된다.

소통은 서로를 통(通)해야 하지만…
당시 대평 회의에 참석한 평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해당 회의는 사안에 관한 ‘논의’를 위한 자리였다기보다 사실상 해당 안건에 대해 의결을 ‘요청’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평 회의 당시 첨부된 ‘통폐합 대상 학과 교수진 회의록’에선 ‘이 사안이 통폐합 대상 학과인 A학과 학생들과 동문회의 의견을 종합해 교수진 사이에서 합의를 거쳤다’고 언급돼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대평 회의에 참석한 평의원들 역시 학과 내 공식적인 논의를 마치고 대평의 의결만을 남겨둔 안건으로 이해해 큰 이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학과 재학생들과 동문회의 반응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다. 스포츠산업학과 재학생 A씨는 “총학생회 SNS를 통해 대평 회의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 학과 통폐합에 관한 내용은 일절 들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동시에 “학과 통폐합이란 중대한 사안을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진행하려 한 사실에 대해 통탄스럽다”며 “해당 안건이 우리 대학 최고의사결정기구에 이르기까지 어떤 정보도 접하지 못한 학과 학생들은 이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좀처럼 끊기지 않는 불통의 계보
학교가 학내 사안에 관해 학생과의 소통을 회피하거나 의견 수렴 없이 중대한 학칙 개정을 강행한 것은 과거 여러 차례 있었던 일이다. 멀리 돌아볼 필요 없이 약 일 년 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대면수업’과 ‘대면시험’이 강행된 당시, 학교 측은 지속적으로 학생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강제성은 띤 일방적 통보로 일관했다. 수천 건에 이르는 학생들의 의견은 묵살됐으며 대면으로 강행됐던 수업과 시험이 불러온 결과와 무관하게 학교는 ‘불통’이란 고질적인 문제를 내비쳤다.

학과 정원 감축과 같은 학생의 교육 여건과 직결되는 학칙 개정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지 1492호 기사 ‘학과 정원 감축, 예견된 갈등’과 1501호 기사 ‘학생 없는 공(空)청회, 총학은 보이콧’에서 조명한 당시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듯 학교 측이 제안하는 논의는 어떤 사안이 결정된 후에야 이뤄지는, 선후 관계가 뒤바뀐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소통의 자리를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아닌 학교의 일방적 의사결정에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한 자리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속되는 불통에 학생들은 문제의식을 느끼기보다 점점 무뎌지고 있다.

논의의 끝과 시작, 그 사이에서
최근 학교 측은 각종 소통 기구를 통해 학생들에게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듯 했다. 그러나 정작 학과 통폐합과 같은 중대한 사안에 관해선 소통이 결여된 채, 학생들은 실질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종훈<예체대 체육학과 18> 씨는 “학과 통폐합의 취지나 결과와 별개로 그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다면 학생들의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학교 측은 형식적인 소통에서 벗어나 진정성을 갖고 학생과 대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비상대책위원장 권한대행 정지호<산업융합학부 정보융합전공 19> 씨는 “학교와 학생 간 실질적인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학교 측에 요청할 예정”이라며 “학교 내 모든 학과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 만큼 관심 가져줄 것”을 학생들에게 요구했다. 

소통은 학과 통폐합 사안이 대평 회의를 거쳐 의결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될 전망이다. 스포츠산업학과 학생회와 교수진 간담회 및 2021학년도 제1차 소통위원회가 오늘 개최된다. 소통위원회의 첫 번째 주요 안건은 ‘예체대 소속 학과 통폐합’이다. 학과 통폐합의 7부 능선에서 비로소 소통은 시작됐다. 이 소통으로써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 단순한 보여주기식 소통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소통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해당 기사는 다음 호에서 이어집니다>

도움: 이휘경 수습기자 socialer12@hanyang.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