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무대, "우리의 노래를 들어주세요"
사라지는 무대, "우리의 노래를 들어주세요"
  • 맹양섭 기자
  • 승인 2021.03.21
  • 호수 1526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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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심심찮게 이용하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일상에 자리 잡으면서 음반 시장의 위상은 추락했다.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CD로 노래를 듣는 사람은 흔치 않다. 손쉽게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다. 음원 스트리밍의 도입이 뮤지션들에게 도움을 주고, 노래를 홍보하기 쉬운 시대가 온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반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인디 뮤지션이다. 지금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구조는 인기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고 있다. 1위부터 순위를 나열하는 차트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에선 아이돌이나 인기 가수를 대거 초빙한다. 많은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듣고,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한 노래가 더욱 유명해지는 순례의 구조, 이른바 ‘주류 음악’만이 오늘날 살아남는다.

주류 음악이란 상업적 성격을 지니고 발표된 디지털 음원과 음반으로, 대형기획사 주도하에 다방면으로 지원받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쉽다. 반면 ‘인디 음악’(Independent Music)은 인디 뮤지션이 음반의 ∧제작 ∧유통 ∧홍보를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들은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본과 힘으로만 헤쳐나가야 한다. 주로 홍익대 부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비주류 음악’임에도 그들은 그들만의 음악성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다.

그들의 노래는 메아리였다
우리나라에서 인디 음악은 지난 1994년 홍익대 앞에서 펑크록 클럽 드럭이 탄생하고, 이후 1996년 첫 인디 음반은 옐로우키친과 크라잉넛이 함께 「Our Nation」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발흥했다. 그해에 음반 사전 심의제가 폐지되면서 인디 음악의 개시를 가능케 한 변화였던 것이다. 공연을 개최하는 데 있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된 1998년 ‘공연법’의 개정도 한 몫 거들었다. 그럼에도 인디 문화가 순탄하게 성장하지만은 않았다.

1990년대 당시엔 인디 음악이 방송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왜곡된 이미지로 전파됐다. 젊은 사람들의 퍼포먼스적 폭주나 새로운 유흥 거리의 발단으로 가볍게 여긴 것이다. 이는 대부분 사람이 인디 음악 자체의 음악적 내용과 수준을 이해하는 것보단 흥미 위주의 편향된 이미지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때까진 공연하는 라이브클럽과, 유흥 목적의 나이트클럽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또한, 당시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라이브클럽에서의 인디 뮤지션 공연은 ‘유흥 행위’에 포함돼 불법으로 간주했다. 이에 1998년 인디 뮤지션들과 라이브클럽이 힘을 합쳐 라이브클럽 합법화 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다음 해에 식품위생법이 개정됨에 따라 인디 뮤지션들은 라이브클럽에서도 합법적으로 공연할 수 있게 됐다.

분명한 건 지난 1990년대 홍익대 앞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라이브클럽들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인디 뮤지션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현대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키워가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저명한 뮤지션 △노브레인 △자우림 △장기하와 얼굴들 △크라잉넛 △10cm들은 이런 라이브클럽에서 인지도를 쌓아 성장해왔다. 영국의 밴드 그룹 비틀스 역시 신인 시절엔 여러 라이브클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우리나라의 음악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장르와 스타일을 넘나드는 노래와 이를 부를 수 있는 뮤지션들이 필요하다. 이때 상업성에 매달려 실험적인 음악에 도전할 수 없는 주류 음악과 달리 뮤지션 본인이 추구하는 다양성과 잠재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디 음악인 셈이다. 김천성<롤링홀> 대표는 “케이팝이 많이 발전했으나 이것이 음악의 전부는 아니다”며 “음악에 다양성이 존재할 때 모든 대중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받으며 음악을 향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라져가는 라이브클럽과 공연장
안타깝게도 지난 2000년대 이후부터 홍익대 앞 라이브클럽들은 폭등하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을 거쳐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익명을 요구한 홍익대 라이브클럽 관계자 A씨는 “인디 음악 자체는 공연만으로 유지가 어렵다”며 “주류를 팔아 운영비를 충당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코로나19 방역 지침은 남은 라이브클럽에서조차 공연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지난달 8일 서울시의 방역 지침에 따라 영업장 내 무대 시설에서의 공연 행위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대부분의 라이브클럽이 공연법에 따른 공연장이 아닌 식품위생법에 따른 명목상 ‘음식점’으로 등록된 데서 비롯됐다. 즉 음식점으로 등록된 ‘라이브클럽’과 음식 섭취가 목적인 ‘음식점’을 나눠 관리하지 못해서 발생한 피해인 것이다.

라이브클럽이 공연장으로 승인받기 위해선 공연법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공연 일수를 연간 90일 이상 혹은 30일 이상 채워야 하며 적절한 실내 시설 등을 갖춰야 하는 등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여기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지나치게 세밀한 조항에 발목 잡힌 사례 또한 존재한다. 고기호<인넥스트트렌드> 이사는 “출입구가 2개 있어야 한다는 공연장 조건을 채우지 못해 공연장이 아닌 라이브클럽으로 지정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공연장으로 승인된 이후에도 존재한다. 라이브클럽이 법적 기준을 충족해 공연장으로 승인되면 식품위생법에 따라 일체의 음료와 주류를 판매할 수 없게 돼 다시 수익 창출이 어려워지는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공연장 입장에서도 막대한 적자를 견디지 못해 줄줄이 폐업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4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코로나19로 인한 대중음악(공연관련) 업계 피해 영향 사례조사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모든 공연장에서 매출이 감소하면서 공연예술기관이 휴업한 경우는 43.6%였으며, 폐업한 경우는 2.2%였다. 심각한 건 지난 2019년보다 지난해에 공연기획업과 공연장의 평균 매출이 18%로 급감했고, 68%의 공연장은 공연 횟수가 50% 이상 감소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2019년 전엔 연간 공연 횟수가 230~240건이었으나 지난해엔 20~30회밖에 못했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대관을 원하는 뮤지션들도 있었지만, 지난해부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부턴 공연을 한 번도 못 했다. 방역 지침이 개정된 지난달 말에서야 겨우 공연을 시작한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심각한 운영난을 겪은 홍익대 근처 공연장 △무브홀 △브이홀 △에반스라운지 등 10여 곳은 임시 휴업하거나 폐업하기까지 했다. 갈피 못 잡는 공연장에 ‘규제안’보다는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암묵적 전제에 숨겨진 Fair Play
이렇듯 무대에 설 수조차 없게 된 인디 뮤지션을 위한 온라인 무대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관련 기업 △뮤지션 △비영리단체가 추진한 캠페인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Saveourstages)’를 통해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70여 개의 뮤지션 팀이 무대에 섰다. 홍익대 앞 대표적인 공연장 △드림홀 △라디오가가 △롤링홀 △웨스트브릿지 △프리즘홀의 이 5곳이 무관중 콘서트가 개최된 곳이다. 김 대표는 “연달아 공연장이 폐업하면서 뮤지션들이 소리를 내고자 캠페인을 제작하게 됐다”며 “한 온라인 시청자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세요’라고 말해준 것이 인상 깊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한 이 캠페인이 큰 울림이 돼 정부에서도 인디 음악에 관심을 가져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라이브클럽 관계자 A씨는 “이 캠페인은 인디 무대가 사라지지 않는 걸 보여줬던 역할”이라며 “인디 음악은 영원히 있을 거고, 그렇기에 우리는 공연하는 동안 목소리를 낼 거다”고 전했다. 캠페인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과 후원금은 위기에 처한 인디 뮤지션과 공연장을 돕는 데 쓰이며, 인디 음악 생태계를 위한 기금으로 사용된다.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라이브클럽을 돕는 정책 역시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공연장에 대한 법적 제도 완화와 더불어 라이브클럽의 생존을 위한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현실적인 공연장 기준과 현재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객석 지침을 마련해 라이브클럽이 더는 피해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고 이사 또한 “방역 지침 개정을 통해 무대를 열어줌으로써 공연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미국의 인디 공연장 협회도 #Saveourstages 캠페인을 열었던 적이 있다. 이에 많은 가수가 참여하고, 정부에서도 긴급 구호 자금 법안을 통과 시켜 기금을 지원한 바 있다. 해당 캠페인은 총 150억 달러의 수익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긍정적 반응이 절대적이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지원하는 데 있어 케이팝이나 순수예술(뮤지컬·연극 등)에만 치우치다 보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디 뮤지션은 소외된다”며 “정부가 음악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연예술종사자에게 필요한 실질적 대책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영화배우는 스크린에서, 작가는 책에서 빛나듯 모든 이들은 저마다의 무대에서 빛난다. 인디 뮤지션 역시 그들이 공연할 수 있는 무대에 오를 때에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이곳에선 뮤지션에 의해 여러 장르의 음악이 탄생하고, 음악 생태계가 개척되고 있다. 무대마저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과 범람하는 주류 음악 속에서 그들에게 페어플레이(Fair Play)란 그들의 정신과 무대를 지켜주는 것이다. 이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사라지는 무대, 빛을 잃어가는 인디 뮤지션.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때다.



*젠트리피케이션: 주변 상권이 과열돼 기존 세입자들이 쫓겨나고, 이곳에 새로운 매입자가 들어오는 현상이다.

도움: 고기호<인넥스트트렌드> 이사
김천성<롤링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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