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표절이 사라지는 날까지
[칼럼] 표절이 사라지는 날까지
  • 이예찬<언론중재위원회 감사관실> 과장
  • 승인 2021.03.07
  • 호수 152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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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찬<언론중재위원회 감사관실> 과장

지난 1월 문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국내 5개 문학상을 휩쓴 작품이 2018년 백마문화상을 수상한 김민정 작가의 소설 「뿌리」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베낀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표절을 행한 A씨는 큰 문제가 될 것이라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표절 행위는 문학 분야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공공기관과 민간에서 주최한 각종 공모전에서 표절작으로 입상한 사실이 밝혀져 줄줄이 수상이 취소됐다. 국내의 유수한 학술단체들도 피해를 입었다.

A씨 본인이 한 논문공모전에서 입상한 논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학술지 네 곳에 중복투고 한 것이다. 이미 학술지 한 곳은 논문 철회 사실을 공시했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 또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는 표절을 매우 죄악시한다. 표절 의혹을 받는 당사자는 어지간한 흉악범 이상으로 비난을 받는다. 실제로 작년만 하더라도 가수 홍진영 씨와 강사 설민석 씨가 논문표절로 대중의 비난을 받으며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정부는 고위공직자 인사 배제 7대 원칙 중 하나로 논문표절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공직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의혹 때문에 최근까지 망신을 당하고 사과하는 일이 반복돼왔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A씨의 적나라한 표절 사건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표절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대학 시절 아니, 중학생 때부터 돌아봐도 학교에서 표절 예방교육을 제대로 받은 기억이 없다. 선생님들로부터 “부정행위 하지 말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일상과 학업에서 금지되는 표절에는 무엇이 있고,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배울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연구윤리의 중요성을 정식으로 접한 것은 석사과정 때 논문작성법 수업 내용의 일부로서가 처음이었다. 이런 계기가 아니면 대학원생조차도 표절 예방이나 바람직한 인용법에 대한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 본인이 학술지 투고를 준비하며 논문작성규정이나 연구윤리규정 등을 찾아 익히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학부생에게 그런 노력을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과제물 제출 시간에 쫓겨 다른 사람의 연구결과를 통째로 베끼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가 학부생 시절엔 인터넷 자료를 그대로 긁어와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학우도 있었다.

변호사시험은 법조윤리 과목을 두고 있고, 이를 응시하기 위해선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조윤리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법조인으로서의 실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윤리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법적 절차에 관여하는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미래의 연구자를 육성하는 곳이다. 연구자의 성과는 올바른 연구윤리를 전제로 한다. 아무리 뛰어난 성과라도 정직하게 이뤄낸 것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다.

부정하게 쌓아올린 탑은 언제 무너져 자신을 덮칠지 모른다. 표절이 사실로 드러나며 그 동안의 수상경력이 송두리째 사라진 A씨의 사례처럼 말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대학과 학회에서 표절을 예방하기 위해 논문 제출 시 표절검사 결과를 필수로 첨부하게 한다. 하지만 이는 궁여지책일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론 학생과 연구자의 연구윤리가 바로 서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대학 교육과정에서 연구윤리 과목을 기초필수 과목으로 둬 표절 행위에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한다. 표절 의혹 사건이 더 이상 보도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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