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무덤, ERICA캠 유리벽
새들의 무덤, ERICA캠 유리벽
  • 최시언 기자
  • 승인 2021.03.07
  • 호수 1525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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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ICA캠 컨퍼런스홀 외부 유리 난간에 충돌해 목이 꺾인 채 죽은 직박구리의 모습이다.
▲ ERICA캠 컨퍼런스홀 외부 유리 난간에 충돌해 목이 꺾인 채 죽은 직박구리의 모습이다.

 

쿵! 큰 소리와 함께 새가 유리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진다.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4일까지 5일간 ERICA캠퍼스 내에서 유리벽에 부딪힌 △박새 △직박구리 △참새 총 6마리가 사체로 발견됐다. ERICA캠 청소 미화원들은 “그동안 유리벽 주변에서 새 사체를 자주 봤다”고 말했고, 그중 몇몇 미화원은 “최근에 목격한 사체만 3구 이상”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나타냈다.

ERICA캠 근처엔 새들의 서식지가 많아 캠퍼스 내에서 새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캠퍼스 내 건물들은 이 같은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듯하다. 유리벽이 새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ERICA캠 △언정대 흡연 부스 △컨퍼런스 홀 외부 계단 △학연산 클러스터 지원센터 외부 난간 등 많은 설치물이 유리로 돼 있다. 특히, 풍환경 실험관 건물 전체 외벽과 학생복지관 뒤편은 거의 대부분이 유리로 이뤄져 있다. △갈대 습지 △사동 공원 △생태습지공원 △안산호수공원 △약초원 숲 등 교내외로 새들이 살아가는 자연환경과 맞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ERICA캠 내에서 새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긴 어렵다.

유리벽이 새들의 무덤이 되는 까닭은 새의 공간 인식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눈이 머리 정면이 아닌 측면에 위치한 탓에 새들은 유리벽을 인식하지 못하고 허공을 나는 속도 그대로 부딪혀 죽는다. 죽은 새를 처리해야 하는 미화원들의 고충도 심각하다. ERICA캠 제1과학기술관 담당 미화원은 “피 흘리며 죽어있는 사체를 치우는 일은 아무리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위 같은 문제의 해소를 위해 환경부에선 지난 2019년 ‘야생조류 충돌저감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조류 충돌이 일어나는 모든 건축물의 유리벽에 가로 10cm, 세로 5cm 간격으로 최소 6mm 이상의 테이프를 설치하거나 불투명한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이 담겼다. 그러나 해당 지침이 아직 우리 학교에까지 적용되지 않아 ERICA캠 내 유리벽에 조류 충돌 방지 테이프가 붙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에 대해 정숙자<대구환경교육센터> 사무처장은 “조류 충돌 저감 지침이 단순히 권고에 그치기 때문”이라며 “제도화를 거쳐 설치가 의무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해당 지침을 준수해 조류 충돌방지 테이프의 부착 효과를 입증한 사례 역시 존재한다. 지난 2019년 한국도로공사에서 순천, 영암 등 8곳의 고속도로 유리 방음벽에 충돌방지 테이프를 부착한 뒤로 조류 충돌 사고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우리 학교와 마찬가지로 조류 충돌 문제가 있던 경기대 수원캠의 경우, 환경부가 진행한 ‘조류 충돌방지 테이프 부착 지원사업공모’에 선정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ERICA캠 박지정<총무관리처 시설팀> 부장은 “조류 충돌이 심각한 사안인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학생들이 구체적인 수치나 자료를 제공한다면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캠퍼스 내에서 조류 충돌이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다. 조류 보호를 위해선 우리 학교가 선제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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