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 대한 새로운 정의, 제로웨이스트
0에 대한 새로운 정의, 제로웨이스트
  • 이다빈 수습기자
  • 승인 2021.03.07
  • 호수 1525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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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덕쿵덕, 지구를 지키는 방앗간
플라스틱의 환경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지만,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 플라스틱이 재활용 선별장으로 도착해도 분리 체계에서 제외된 작은 플라스틱들은 매립되어 약 500 년간 땅 속에 묻힌다. 이렇게 지구생태계 전체가 위협받을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는 노력들이 있다. 플라스틱을 빻아주는 방앗간이 그중 하나다.
곡물을 가공해 식재료를 만드는 방앗간처럼 플라스틱 방앗간에선 작은 플라스틱이 분쇄돼 또 다른 제품의 원료로 태어난다. 이곳에 전국 각지의 작은 플라스틱이 도착하면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이를 세척하고 재질별, 색깔별로 분류한다.
한편 재활용 불가능한 작은 쓰레기와 플라스틱 방앗간을 잇는 시민단체가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라는 속담에서 영감을 얻어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참새로 이름 붙인 ‘참새클럽’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두 달에 한 번 재활용 불가능한 작은 쓰레기들을 모아 플라스틱 방앗간으로 보내 생활 속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한다. 참새가 방앗간으로 보낸 플라스틱을 분쇄기에 넣어 가루로 빻으면 가루가 *사출기 안에서 재활용 제품(튜브짜개)이 돼 참새클럽에게 다시 돌아간다.
 

▲ 플라스틱 방앗간에서 제작하는 튜브짜개의 모습이다.


신우용<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플라스틱 방앗간은 재활용 제품 제작보다 시민들의 참여 촉진에 방향을 두고 있다”며 “플라스틱 범람이 심각하다는 것은 시민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실제 플라스틱이 어떻게 버려지고 처리되는지는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울러 플라스틱 방앗간의 취지에 대해 “일상에서 접하는 병뚜껑 같은 작은 플라스틱의 재활용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고,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과 해결책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모아내는 것이 핵심”이라 전했다.
플라스틱은 일상생활에 없어선 안 될 편리한 소재지만 환경오염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날 순 없다. 편리하지만, 재사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는 노력은 플라스틱 방앗간처럼 동네 단위의 제로웨이스트 문화를 구현하는 첫걸음이 있어야 자연스레 확산될 것이다. 신 사무처장은 “동네 단위의 작은 제로웨이스트샵들의 성장을 위해 재활용 측면에서 다양한 투자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재활용 가게에 시민들의 발길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이곳에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제품의 유통에 다회용 기가 자리 잡는 등 제품 생산단계에서의 근본적인 전환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플라스틱 방앗간의 움직임은 쓰레기 배출량을 시민들이 직접 확인하고 불필요한 플라스틱 감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처럼 일상 속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플라스틱 방앗간의 손길에 우리 역시 반응해야 할 때다. 그들의 도전은 선택받지 못하고 매립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메랑’이 될 플라스틱 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병뚜껑을 모아 그들에게 보내보는 건 어떨까? 작은 플라스틱이 가져오는 변화에 동참해보자.

도움: 신우용<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
사진 출처: 플라스틱 방앗간


*사출기: 실린더 속에서 가열하여 녹인 플라스틱 재료 를 노즐을 통하여 폐쇄된 거푸집 속에 밀어 넣고, 냉각 하여 고체의 물건을 만드는 기계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알맹상점의 슬로건이다.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알맹상점은 이러한 슬로건을 가지고 제로웨이스트를 주도해 나간다. 알맹상점 이전엔 사용하지 않던 에코백을 기부받아 시장의 상인과 시민들에게 무료로 배포하던 알맹 프로젝트(플라스틱 프리 캠페인)가 있었다. 그럼에도 비닐봉지 사용이 에코백 사용을 압도하던 시절, 망원시장에서 플라스틱 비닐규제에 대항하는 것에서 알맹상점은 시작됐다. 고체 치약부터 나무 칫솔, 재생용지 등 실생활에서 필요한 제품들이 이곳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아이와 함께, 친구와 함께 찾은 알맹상점에서 제로웨이스트에 관해 처음 입문하기도, 하나 더 배워가기도 한다.
지난해 6월 오픈한 알맹상점의 리필 스테이션. 이곳에선 샴푸나 세제뿐만 아니라 △발사믹 오일 △선크림 △찻잎 등 다양한 친환경 제품의 ‘알맹이’만을 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리필 스테이션 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증 취득 △식약처의 판매 허가 △화장품 회사의 상품 제공 순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주은<알맹상점> 대표는 “제작 초반, 화장품 공장에게 ‘용기 없이’ 물건을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생산 과정에서부터 포장된 제품들이 대부분이기에, 개인사업자들이 운영하긴 아직 힘든 구조다”라며 무포장으로 들일 수 있는 품목의 수가 늘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리필 스테이션에서 자신의 용기를 재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알맹상점에 다시 되돌려 줄 수 있는 용기도 있다. 그것은 바로 ‘예쁜 쓰레기’ 라는 별명을 가진 화장품 용기이다. 환경부에서 올해 3월부터 소비재 포장 재질의 재활용 용이성을 평가해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4단계로 나누어 표시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화장품 용기는 ‘제품의 10% 이상을 회수해 재활용하겠다’는 협의로 등급 표시대상에 빠졌다. 혼합재료로 이뤄져 용기의 90% 이상이 재활용 ‘어려움’으로 표기될 수준이었지만 업계에서 재활용 불가능하다는 문구가 수출을 어렵게 할 수 있다며 이를 예외규정으로 제외한 것 이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가 직접 화장품 용기를 회사로 돌려 보내보자’며 시작된 ‘화장품 어택’은 화장품 업계와 환경부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대표는 “정부가 주도해 무포장 부분에 대한 제도적인 변화가 이뤄져야 하고 생산자들에 대한 강력한 재활용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 했다. 또한 “기업들은 국가의 규제가 이뤄지기 전, 생산자로서 환경에 책임을 다하도록 재활용이 용이한 용기로 만들어야 한다”며 “과대포장을 벗겨내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알맹상점을 이어 △신세계백화점 △아모레퍼시픽 △이마트와 같은 대기업도 화장품이나 세제 등의 리필 스테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대기업들이 나서서 리필 스테이션을 도입해 제로웨이스트를 대중화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리필 스테이션이나 다른 친환경적 움직임을 보여주기식으로만 시행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대신에 이들은 환경보호를 위한 장기적이고 주도적인 모범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기업의 △공병 회수 시스템 형성 △과대포장 간소화 △용기 재질 개선을 통해 재활용에 소비자의 적극적인 행동 까지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을 완전히 ‘제로’로 만들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제로에 대한 정의를 달리해 ‘0’을 지향하며 이에 최대한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제로웨이스트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는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껍데기‘를 멀리하고 ’알맹이‘만을 사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 대표는 “신발 구매 후 딸려오는 1+1과 같은 운동화 끈을 거절하면 나일론 소재의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물건들은 당당하게 거절하고 불필요한 용기 사용을 줄이며 자신만의 제로웨이스트를 그려나가 보는건 어떨까.

도움: 이주은<알맹상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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