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문제, 허울뿐인 고등교육법 앞에서 ‘도돌이표’
등록금 문제, 허울뿐인 고등교육법 앞에서 ‘도돌이표’
  • 최시언 기자
  • 승인 2021.03.01
  • 호수 1524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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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난해 10월 ‘코로나19 상황 속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요구에 부응해 재난 시 등록금을 면제하거나 감액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전국 135개 대학 가운데 131개 대학이 상반기 학부 등록금을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했다. 이에 개정된 법령의 실효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등교육법 일부 신설됐지만…
등록금과 관련해 지난해 새로 신설된 고등교육법 조항은 두 가지다. 먼저 ‘학교는 재난 상황에서 시설 이용 및 실험 실습이 제한되거나 수업 시수가 감소하는 등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등록금을 면제 또는 감액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11조 4항이 신설됐다. 이와 함께 신설된 동법 11조 7항은 ‘면제 또는 감액은 학교마다 설치된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에서 논의해야 함’을 명시했다. 유은혜<교육부> 장관은 신설된 두 조항을 두고 “이것으로 학생들이 재난 시 학교와 논의해 등록금을 감액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거의 모든 대학이 등록금을 동결한 사실은 신설 조항이 큰 실효성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신설 조항은 등심위에서 논의를 통해 등록금 면제 감액을 할 수 있음을 명시했지만, 실제로 등심위에선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역시 그 원인이 등심위에 있다고 지적한다. 등심위에 배석하는 학생 측과 학교 측 위원이 불평등한 위치에서 논의와 의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 속 등심위
고등교육법은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등록금에 대한 사안을 학교와 공식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등심위 제도를 보장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각 대학으로 하여금 △외부 전문가 △학교위원 △학생위원으로 구성되는 등심위를 설치 및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 학생위원은 전체인원 정수의 최소 10분의 3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교육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학생위원은 △고등교육 지원계획 △등록금 및 학생 1인당 교육비 산정근거 △예·결산 명세 등을 학교에 요청할 수 있다. 위 법률을 토대로 등심위는 보통 매년 1월 중순에 개최돼 심의와 의결을 진행한다. 
 

출발선부터 다른 학생위원
등심위 제도가 도입된 궁극적인 취지는 등록금 책정에 학생 의사를 반영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등심위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김한주<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교육활동가는 “학교 측은 등심위가 시작도 되기 전 등록금 책정에 관한 모든 과정을 끝내놓고 학생위원과는 논의가 아닌 통보만 하는 실정”이라 지적했다. 실제로 학교의 등록금 책정은 등심위 설치 전인 10월부터 시작되지만, 학생위원들은 등심위가 개최되는 다음 해 1월 중순이 돼서야 처음으로 등록금에 관한 내용을 접한다. 올해 우리 학교 등심위에 참석한 박정언<자연대 생명과학과 15> 씨도 “학교 측에 제공받은 자료를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없었고, 이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할 시간도 없었다”며 학교 측과 등록금 책정에 심도 있는 논의를 하기 불리한 입장임을 밝혔다.

총학생회나 비상대책위원회 임기로 인해 매해 학생위원이 바뀌는 상황도 학생위원이 등심위에 참여하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학교 위원은 여러 해에 걸쳐 등심위에 참여하지만, 학생위원은 총학생회 임기로 인해 매년 바뀌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성에 있어서도 학생위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효은<대학연구소> 연구원은 “등심위에 참여하는 학교위원은 대학 재정 업무를 오래 다룬 전문가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학생위원은 요구안을 주장하는데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학교육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대학 중 84%는 등심위 회의 진행 횟수가 단 1회, 더 정확히는 하루에 불과하다. 등심위 회의가 한 번밖에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생 측 요구안을 주장하고, 학교위원과 등록금을 심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거부터 이어진 등심위의 구조적 문제
등심위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이전에도 관련법이 개정 및 신설된 바 있다. 지난 2013년, 등심위에 심의권만 있고 의결권이 없다는 학생들의 지적에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서 학생위원들에게도 의결권이 부여됐다. 그러나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새롭게 부여된 의결권은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의장 전다현<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17> 씨는 “등심위의 경우 학생위원이 의무적으로 포함된 것은 사실이나, 전체 위원 수의 30% 비율만 포함하면 돼 의결 회의에 평등하게 참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 등심위는 학생위원이 전원 반대하는 안건도 의결이 가능한 구조다”라며 등심위의 구조적인 한계를 짚었다. 

등심위에선 다수결로 안건이 의결된다. 이 때 대부분의 학교는 학교위원이 학생위원보다 많이 배석되며, 설사 우리 학교처럼 양측이 같게 배석되더라도 외부 전문가가 학교위원에 의해 배석되기 때문에 의결에 있어 학생위원은 불리한 입장이다. 박 씨는 “양측 협의를 통해 외부 전문가를 배석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지만, 학교위원이 추천한 전문가의 약력을 보고 고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소용없는 조항 신설만 되풀이
등심위 제도가 도입된 이후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꾸준히 새로운 조항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김 연구원은 “신설된 조항은 학생위원의 요구에 법적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등심위에서 학교 측과 학생 측이 최종적으로 합의를 거치지 못하면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등심위 운영에 근본적인 개선 없이 겉으로만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법 개정만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올해 신설된 등록금 면제 또는 감액 조항도 같은 원인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을’의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등교육법 △교육기본법 △사립학교법 등 교육 관련 법은 학교법인, 학생과 더불어 정부를 대학재정 책임 주체로 규정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김 교육활동가는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곳은 정부”라며 “특히 사립대의 경우 등록금 폐해가 더욱 심각하니 정부가 등록금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 역시 “학생들이 학교 재정과 등록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창구가 등심위인 만큼 근본적인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그 일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란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신설된 고등교육법 조항으로는 여전히 등록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부는 등심위의 불평등한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도움: 김한주<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교육활동가
김효은<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전다현<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17>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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