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람이 개를 문 일'이란 무엇인가?
[칼럼] '사람이 개를 문 일'이란 무엇인가?
  • 곽영신<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1.03.01
  • 호수 1524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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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신<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기자들 사이에서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라는 말은 유명한 격언이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행위는 뉴스거리가 아니고, 사건의 충격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끄는 요소가 있어야 뉴스거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여러 저널리즘 교과서에서 ‘이상성’ 또는 ‘일탈성’이란 이름으로 소개돼 있고, 수습기자 교육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개가 사람을 무는 행동을 일일이 기사로 보도한다면 신문 지면이 넘칠 것을 걱정한 기자들의 우려가 섞인 문장일 것이다.

그런데 뉴스를 볼 때마다 가만히 의문이 떠오른다. 매년 2천 명이 넘는 사람이 노동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노동시장 이중 구조’ 속에서 수백만 노동자가 임금과 고용에서 차별을 당하는 것은 ‘사람이 개를 문 것’만큼 비정상적인 일인데 왜 이렇게 중요하게 보도되지 않을까? 지독한 학벌 전쟁, 경쟁교육 속에서 교육 불평등이 커져가고 비명문대생의 좌절과 소외와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한 보도는 부족할까?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값과 부동산 양극화 때문에 제 몸 하나 뉘일 공간도 찾기 어려운 청년과 젊은 부부, 경제적 약자들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왜 이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집을 제공하기 위한 방법을 다룬 뉴스는 찾기 어려운 것일까? 시민 절대다수의 문제인 △교육 △노동 △주거 문제에 대한 보도가 이럴진대 그보다 수가 적은 성 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에 대한 보도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반면 어떤 사건은 ‘뭘 이렇게까지 자주, 자세히 보도하나’ 싶을 만큼 뉴스에 많이 등장한다.  대통령이나 여당 인사의 한 마디, 이에 대한 야당 인사의 한 마디, 또 이들에 대한 ‘정치 인플루언서’들의 SNS 글 한 마디를 지엽적인 것까지 중계하듯 보도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의 일상을 좌우하는 결정을 둘러싼 권력자들의 의견과 토론은 중요하지만, 문제는 언론이 이를 불필요한 정쟁으로만 소비하고 마는 데 있다.

언론의 관심은 한 마디로 권력 자체에 있다. 이 권력과 저 권력이 어떻게 얼마나 싸우나? 누가 이기고 지나? 그래서 결국 누가 더 센 권력을 차지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권력자들이 권력 다툼을 하는 것이야말로 ‘개가 짖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여기에 대단한 뉴스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의 인력과 역량을 총동원해 취재에 몰두한다.

그런데 막상 권력이 그 힘을 통해서 사회경제적 자원을 얼마나 공정하고 정의롭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 사건과 대책을 하루 몇 건씩 보도하는 것은 중복이라며 꺼려하면서도, 힘 있는 정치인들의 말꼬리 잡기로 매일의 뉴스를 가득 채운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를 대변하는 당원 오브라이언이 한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힘이 주어지면 그것을 통해 대중을 위한 정치를 펴겠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의 욕망은 권력 추구 자체일 뿐이라는 뜻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욕망 역시 우리 사회 공공선에 기여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권력 자체에 있다.

한국 언론은 무엇이 뉴스이고 뉴스가 아닌지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교육 △노동 △주거에서의 차별과 불평등과 같이 너무 구조적이고 지속돼 온 일이라 마치 개가 사람이 무는 것처럼 당연해져 버린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뉴스거리이다.

언론이 할 일은 권력자들의 핑퐁게임을 시시각각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문제를 시민들이 급히 해결해야할 새로운 문제로 느끼도록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것이다. 정치인과 인플루언서들의 SNS를 뒤지기보다 길거리 사람들의 속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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