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영원한 학교폭력의 트라우마
[아고라] 영원한 학교폭력의 트라우마
  • 김유진 기자
  • 승인 2021.03.01
  • 호수 1524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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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진<대학보도부> 정기자

“사막의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묶여있던 지난밤을 기억하거든. 우리가 지나간 상처를 기억하듯 과거의 상처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지.” 어느 드라마 속 대사다. 필자는 이 대사에 꽤 공감한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대상에 대해 안 좋았던 과거의 경험은 현재까지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로 남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상을 보기만 해도, 얘기만 들어도 불쾌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트라우마가 정신증으로 발현돼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게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때의 경험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기 때문이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고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쉬이 낫질 않는다. 이미 머릿속에 깊게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배구계에선 학교폭력이 화두에 올랐다. 인기 배구 선수들이 과거에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직접 글을 올리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자, 해당 선수들은 중징계를 받았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과도한 처분이라는 의견이 있다. ‘어릴 때’ 했던 일에 너무 과하지 않냐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필자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피해자는 학교 폭력을 당했던 날부터 지금까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고 했다. 가해자들이 분풀이와 재미를 위해 했던 일은 누군가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괴롭히고 있다. 10년의 시간과 비교했을 때 이들의 중징계가 과연 과한 처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피해자는 앞으로도 과거의 기억 때문에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상처는 일상에서 예기치 않게 욱신거리며 그 불결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결국 아픔은 상처 받은 자의 몫이 된다.  

학교폭력은 항상 존재해왔다. 시대가 변하면서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점점 엄격해지는 추세다. 하지만 사회엔 여전히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선이 존재한다. 그렇다 보니 가해자들이 행한 일에 상응하는 처벌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일어난 학폭 미투 사례를 살펴보자. 해당 가해자는 피해자의 폭로에도 사실을 부정했지만, 대중의 관심이 쏠리자 그제서야 사과문을 올렸다.

우리는 학교폭력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가 TV에 나와 여론의 관심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또다시 난도질하는 일이 없도록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 흔히 ‘철이 없었다’고 하는 가해자들은 생각보다 성숙하고 교활하다. 그들이 누군가를 은근히 또는 대놓고 괴롭혔던 경험을 훗날 ‘좀 놀았다’라고 표현하며 으스댈 수 없도록, 어려서 그랬다고 ‘미화’할 수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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