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대상] 왕관의 무게, 리더의 자격
[2020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대상] 왕관의 무게, 리더의 자격
  • 유재혁<인문대 철학과 19> 씨
  • 승인 2020.11.30
  • 호수 1522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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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이 문장은 잉글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헨리 4세’에서 유래된 말이다. 왕관을 쓴 자는 명예와 권력을 누리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막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아마 사람들에게 동물의 왕이 누구인지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사자라 대답할 것이다. 사자가 가진 강인함, 용기, 리더십, 위엄 등의 이미지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을 것이다. 실제로 사자는 옛날부터 한양대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집단에서 인기 있게 활용되는 상징 중 하나다.

‘라이온 킹’은 그런 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다. 본 작품은 1994년 월트 디즈니에서 개봉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9억 6848만 3777달러의 수익을 올려 상업적으로도 흥행했고, 2019년에는 실사영화로 개봉되기도 했다. 라이온 킹의 줄거리는 아기사자 ‘심바’가 가상의 동물왕국 ‘프라이드 랜드’의 왕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심바의 여정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왕의 후계자, 아기사자 심바의 탄생

영화는 음악과 함께 프라이드 랜드의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생명력 넘치는 동물들과 함께 후계자 명명식이 진행되며 아기사자 심바는 프라이드 랜드의 차기 왕으로 임명된다. 심바의 아버지이자 현 프라이드 랜드의 국왕인 ‘무파사’와 어머니 ‘사라비’는 그런 심바를 뿌듯하게 바라본다. 프라이드 랜드의 구성원들과 현 리더의 축복 속에서 새로운 차기 리더가 탄생한 것이다.


-왕관을 탐하는 자, 스카

명명식 뒤로는 곧바로 프라이드 랜드에서 소외된 자 ‘스카’가 등장한다. 스카는 무파사의 동생으로 서열에서 밀려 왕이 될 수 없는 사자다. 그는 자신이 왕관을 쓸 수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왕관을 쓰지 못한 스카는 왕인 무파사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에게 비협조적으로 행동한다. 무파사의 비서인 ‘자주’는 명명식에 참석하지 않은 스카를 나무란다. 그리고 이내 무파사도 찾아와 스카를 꾸짖는다. 스카는 무파사를 향해 비아냥으로 일관하고 무파사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이냐며 몰아세우지만 한 편으로는 스카를 걱정한다.


-라이온 킹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 무파사

무파사는 작중에서 유능하고 포용력 있는 리더로 묘사된다. 그는 권력 자체를 욕망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력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집단 구성원들 간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권력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균형에는 개미와 같은 미물들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강자의 이익만이 아닌 약자의 이익까지 함께 고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또한 무파사는 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음에도 무모한 용기를 부리지 않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가족과 집단의 안전이 위협될 때만 힘을 사용한다. 힘과 권력에는 그만큼의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이해하고 모자라거나 과하지 않은 중용의 덕, 즉 탁월함을 실천하는 것이다. 무파사는 왕관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내며 프라이드 랜드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한다. 적절한 리더의 역할 덕분에 프라이드 랜드는 무파사가 군림하는 동안 번영을 누린다.
 

-왕관을 쓰기에 부족한 그릇을 가진 두 마리 사자

아기사자 심바와 스카의 공통점은 둘 모두 왕관을 쓰기에 부족한 그릇을 가졌다는 것이다. 먼저 심바의 경우 오만함에 사로잡힌 철없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심바는 타인의 처지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바는 스카를 찾아가 자신이 차기 왕이 될 것이라며 뽐낸다. 이는 스카의 상황이나 기분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철학자 맹자가 지도자의 덕목으로 남의 불행을 보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을 제시한 것을 생각한다면 심바는 지도자의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기사자 심바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실감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심바는 소꿉친구 ‘날라’와 함께 무파사와 스카가 가지 말라고 당부한(물론 심바의 호기심을 자극해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스카의 계략이었다) ‘코끼리 무덤’을 찾아간다. 코끼리 무덤은 프라이드 랜드 밖의 영토로 어린 심바와 날라에게는 위험한 장소다. 하지만 심바는 자신이 가진 힘이 약함에도 이를 알지 못하고 과신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무지의 지’를 전혀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바는 돌아가야 한다는 자주의 조언을 무시한 채 모험을 감행하다 결국 하이에나 무리에게 쫓기게 된다. 비록 무파사가 등장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프라이드 랜드의 미래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부족한 현실감각이 무책임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공동체에 위험을 가한 것이다.

스카의 경우 오직 권력만을 욕망한다. 그는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보두 동원한다. 스카는 정당한 방법으로는 왕이 될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외부 세력인 하이에나들과 결탁하게 된다. 하이에나 무리가 스카의 앞에서 열병식을 하는 장면은 스카가 가진 권력을 향한 욕구를 잘 표현한다. 스카는 자신의 혈육인 무파사와 심바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스카는 하이에나들과 함정을 파서 무파사를 제거하고 심바를 프라이드 랜드 밖으로 내쫓는다. 조선의 태종이나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세 아들처럼 권력을 위해 혈육을 제거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이를 비현실적인 전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카는 하이에나들에게 심바를 쫓아가 제거할 것을 명령하지만 하이에나들은 이를 실패하게 되고 심바는 생존한다. 이후 스카는 사라진 심바와 무파사를 대신해 프라이드 랜드의 왕이 된다. 스카와 무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왕이 된 스카는 프라이드 랜드로 하이에나들을 불러들이지만 이는 오직 자신의 권력을 위함이다. 그는 권력만을 욕망할 뿐 집단의 구성원들이 잘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스카가 군림한 뒤로 프라이드 랜드는 살기 어려워졌고 많은 동물들이 떠나갔다. 결국 왕관을 쓰기에 부족한 그릇을 가진 스카로 인해 프라이드 랜드는 점점 빈곤해지며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왕관을 외면하는 왕의 후계자

프라이드 랜드에서 도망친 심바는 탈진해 쓰러져 있다가 미어캣 ‘티몬’과 멧돼지 ‘품바’에게 도움을 받는다. 구조된 심바는 프라이드 랜드에서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이내 근심과 걱정을 버리라는 티몬과 품바의 가치관 ‘하쿠나 마타타’에 물들며 정글에서 생활하게 된다. 정글에서 심바는 프라이드 랜드에서의 일들을 묻어두고 자신의 본성과 맞지 않게 정글에 적응하며 성체로 성장한다. 심바는 정글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며 안락함을 느끼지만 한 편으로는 찝찝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던 중 심바는 정글로 찾아온 날라와 재회하게 된다. 심바는 날라로부터 프라이드 랜드가 위기에 빠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부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정글에서의 삶에 안주하기를 원하는 심바는 그런 부름을 애써 외면한다.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가 왕관의 무게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도망치든가, 극복하든가

하지만 날라와 다투고 자책하는 심바에게 원숭이 장로 ‘라피키’가 찾아온다. 본래 심바는 왕의 후계자였다. 그러나 정글에서 살아가던 심바는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도망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라피키는 심바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내 심바는 자신이 왕의 후계자임을 자각한다. 왕이 되기 위해서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닌 직면하여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심바는 여전히 과거의 아픔으로 망설이지만 라피키는 ‘아프긴 하겠지. 하지만 둘 중 하나야. 도망치든가, 극복하든가’라 조언하며 심바에게 용기를 준다. 결국 각성한 심바는 왕관을 되찾기 위해 다시 프라이드 랜드로 향한다. 정체성의 변화가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왕관을 향한 여정

심바는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온다. 하지만 프라이드 랜드는 과거와 달리 황폐화된 죽음의 땅으로 변해 있었다. 심바는 날라, 품바, 티몬 등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프라이드 랜드의 재건을 목표로 스카를 찾아간다. 심바와 대면한 스카는 심바의 과거를 지적하며 심바를 몰아세운다. 심바는 위기에 처하지만 이내 스카가 무파사를 살해했다는 진실이 밝혀지며 상황이 반전된다. 그리고 결국 심바의 세력과 스카의 세력 간 전쟁이 벌어진다. 심바가 스카를 몰아세우자 스카는 하이에나 무리를 적이자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목숨을 구걸한다. 스카가 자신의 지지자들을 권력을 위한 소모품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바는 과거 스카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스카에게 프라이드 랜드를 떠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결국 스카는 다시 싸움을 택한다. 이후 싸움에서 패배한 스카는 하이에나 무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스카의 속내를 알게 된 하이에나 무리의 손에 스카는 결국 최후를 맞게 된다.
 

-여정의 끝, 왕관의 자격

스카를 무찌른 심바는 ‘프라이드 락’에 올라가 크게 포효하며 자신이 왕이 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흘러 프라이드 랜드는 무파사가 군림하던 시절처럼 활기를 되찾는다. 심바는 많은 동물들의 지지를 받으며 날라 사이에서 낳은 아기사자를 차기 왕으로 임명한다. 이전의 나약하고 무책임한 아기사자가 아닌 무파사와 같은 강인한 리더로 거듭난 것이다.

리더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를 통해 만들어진다. 결말 부분의 심바와 스카의 가장 큰 차이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스카는 작품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일관되게 지지자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스카에게 있어 자신의 지지 세력인 하이에나 무리는 그저 권력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이에나 무리와 결탁한 스카는 왕관을 쓰는 것에는 성공한다. 하지만 결국 집단 구성원들의 지지를 잃음과 동시에 권력을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반면 심바는 작품의 전개에 따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반부의 심바는 진심으로 자신의 동료들을 대하며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이러한 지지는 심바가 왕관을 되찾는 과정의 원동력이 되었다. 동료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심바는 왕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지지는 다시 프라이드 랜드에 번영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지지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두 리더는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현대사회 속 작은 리더들의 중요성. 하지만 모두가 왕관을 쓸 수는 없다.

프라이드 랜드와 현대사회를 비교해 보자면 현대사회는 다원화되어 작은 리더들의 역할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프라이드 랜드는 군주제 국가로 막대한 권력을 가진 한 명의 왕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된다. 무파사와 같은 리더가 왕이 된다면 번영을 누릴 수도 있지만, 스카와 같은 자가 왕이 된다면 몰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현대의 우리사회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공화제를 선택했다. 복수의 주권자들이 여럿 모여 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하고 그만큼 다양한 리더의 자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프라이드 랜드처럼 한 명의 큰 리더가 아닌 작은 리더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명의 작은 왕들 간 협력이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리더의 자리가 더 많아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리더가 되거나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심바의 역할을 맡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품바, 티몬, 자주처럼 리더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기업의 회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누군가는 리더가 되고 누군가는 집단의 구성원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에서 왕이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리더의 자리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리더들은 열린사회를 구성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 즉, 노력을 통해 적절한 능력을 갖춘다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온 킹의 프라이드 랜드는 닫힌사회다. 스카는 아무리 노력을 하고 능력을 갖추어도 정당한 방법으로는 왕이 될 수 없다. 이는 라이온 킹에 등장한 캐릭터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노력을 해도 계층이동이 어렵거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이는 곧 집단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들은 개인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형성되도록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리더들이 구성원들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 주며 균형을 맞추고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리더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만의 왕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각자의 인생에서 왕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렇기에 책임감을 배양하여 리더의 자세로 자신의 삶을 운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가장 상위에 있는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 극대화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리더와 집단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개인과 사회는 발전할 것이고, 이러한 경향이 점차 확대될 때 세상은 영화 속 프라이드 랜드처럼 번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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