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이카로스의 추락
[아고라] 이카로스의 추락
  • 배준영 기자
  • 승인 2020.11.30
  • 호수 1522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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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준영<대학보도부> 정기자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로스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상징한다. 그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미궁 위를 날아오른다. 하지만 ‘태양에 날개가 녹지 않도록 하늘 높이 오르지 말고, 물살에 날개가 젖지 않도록 바다 가까이 내려가지 말라’는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무시한 채 태양 가까이 올랐다가 밀랍이 녹으면서 추락해 죽는다.

신화는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자유로이 해석할 여지를 줬다. 이카로스를 무모한 존재로 여긴다면 그것대로의 해석을 존중하겠다. 필자는 이카로스의 날개와 비행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상을 추구하는 가치 내지 능력으로, 추락은 우리를 현실 속에 끌어들이는 힘으로 이해하려 한다. 태양을 향하는 이카로스의 비행이 삶 자체가 도전이었던 우리의 어린 날을 함축한다면, 죽어버린 이카로스는 현실이라는 차가운 바다로 추락한 우리의 모습을 의미한다.

신화 속 이카로스와 분명히 대비되는 것은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 추락과 비행을 끊임없이 반복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단 한 번의 추락으로, 혹은 숱한 추락으로 또다시 비행을 준비하기보다 새로운 살길을 찾아 두 발로 걸을 뿐인 이들도 있다. 인류가 진화하며 남긴 흔적기관처럼, 우리들의 날개는 그렇게 퇴화했다. 꿈과 이상을 좇아 부단히 비행하던 우리가 자연히 현실에 발 묶여 비행할 의지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처럼 여전히 비행의 꿈을 놓지 못한 사람이 있다. 필자에게, 그리고 필자와 뜻을 같이하는 누군가에게 전하고픈 말은 ‘완벽한 비행’은 없다는 것이다. 추락이 그 자체로 비행이 되기도 하며, 비행을 멈추지 않을 때 비로소 추락은 가치있어진다. 단 한 번의 추락으로 죽은 이카로스가 환생해 다시 다이달로스의 미궁 위를 난다면 결코 태양을 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카로스는 죽어 없어졌으므로 다시 그 공간을 날 수 없지만 우린 그리 할 수 있다.

물론 비행에는 언제나 추락의 위험이 따르므로 마냥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또한, 소수의 사람만이 비행에 성공할 뿐 대다수는 추락한다. 이것이 누구에게나 비행을 꿈꾸고 실현하라고 권유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비행은 현실에서 잃은 우리의 순수한 열정과 꾸었던 꿈들을 되찾기 위해, 또 세상을 놀라게 할 무언갈 찾기 위함에 그 의의가 있다. 비록 추락의 시간이 고통스러울 수도, 이카로스가 처했던 슬픈 결말의 재현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가 살아 숨 쉬며 의지를 잃지 않는 한 비행하고, 또 추락할 여력을 가진다. 추락 없는 온전한 비행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진부한 관용구처럼 때론 추락이 비행보다 더 가치 있기도 하다. 필자가 비행을 위해 무뎌진 날개를 펴고, 날갯짓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계속되는 추락 속에서 비로소 잃어버린 어린 날의 날개를 온전히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비행하고 추락하려 한다. 비록 추락뿐일지라도, 잃어버린 날개를 영영 되찾을 수 없을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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