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로운 세상 속 오래된 뇌
[칼럼] 새로운 세상 속 오래된 뇌
  • 송원철<미디어 빅데이터 연구센터> 연구교수
  • 승인 2020.11.08
  • 호수 152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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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0만년전 어느 날, 우리의 선조 중 하나가 평원에 앉아 있다. 이른 저녁, 그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들판에 앉아 그 날 채집해온 열매를 나누어 먹고 있다. 평화로운 저녁 그의 눈에 들판 저 멀리서 수상한 작은 점들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늑대 같기도 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옆 부족 사람들 같기도 하다. 우리의 주인공은 긴장해 손에 쥐고 있던 저녁식사를 내려놓고 가족들에게 알리며 다가오는 위협과 싸울 준비를 한다.

2020년의 우리는 매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뇌는 이러한 미디어 사용을 위한 준비가 전혀 돼 있지않다. 인류의 문명과 과학기술은 지난 역사 동안 가파르게 발전해 왔다. 하지만 진화는 아직이다. 분명 뇌도 발전해 왔겠지만 50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뇌는 괄목할 만한 차이가 없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뇌는 사실은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있다. 이런 상황을 진화심리학적으로는 새로운 세상 속 오래된 뇌라고 일컫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네만은 우리가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한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됐는데, 인터넷 상의 프로필을 보고 상대가 믿을만 한지를 판단하는 순간의 인간 뇌를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한 결과,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는 뇌의 서로 전혀 다른 부분에서 동시에 처리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곧,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단순히 하나의 의미선상에 있는 양극단이 아니고, 서로 전혀 다른 개념으로 우리 뇌가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는 부정적인 정보와 긍정적인 정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일까? 앞선 50만 년 전 선조의 저녁 식사는 긍정적 정보로 이뤄져있다. 긍정적인 상황은 촉각을 곤두세워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받아들인다. 긍정적인 정보는 일종의 기준선, 혹은 평소의 상태가 된다. 반면 멀리서 다가오는 잠재적인 위협은 부정적인 정보다. 이를 느긋하게 받아들인 개체들은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 갔을 것이다. 부정적인 정보에 민감하고 효과적으로 반응한 우리의 선조는 살아남아 자손을 남겼고, 그 과정의 반복 끝에 우리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지금도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정보에 보다 격하게 반응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공해 올린 좋은 순간만을 본다. 유명인들 역시 대체로 바르고 정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이에 따라 긍정적인 정보를 대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상향평준화된다. 반대로 유명인들의 과오에 대해 ‘논란’과 ‘폭로’의 형태로 마주한다. 부정적인 정보에 민감한 우리는 이러한 논란들에 격하게 반응한다. 이렇게 미디어를 통한 자극의 반복 속에서 우리의 뇌는 야생에서의 생존상황을 위해 개발된 방식으로 대응한다. 우리는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사실 우리 뇌는 몹시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수 있다. 이 혼란스러움을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부정적인 정보에 사람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이용해 논란거리가 될 만한 포스팅들이 우선적으로 노출되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해 더 많은 광고 수익을 창출해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50만년 전 선조의 뇌와 우리의 뇌는 전혀 다르기에 우리가 현대사회의 정보들을 올곧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과학은 애석하게도 그 둘 간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문명발전과 진화의 간극에서 비극이 발생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뇌가 뒤떨어졌다는 이유로 문명을 퇴보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뇌를 진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 역시, 우리 모두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답을 줄 수 없다. 다만, 그러한 뒤떨어짐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만 있다면 좀 더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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