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화려한 ‘폭력예방교육’ 알맹이는 어디에
껍데기만 화려한 ‘폭력예방교육’ 알맹이는 어디에
  • 조은비 기자
  • 승인 2020.10.12
  • 호수 1519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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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폭력예방교육’은 성추문이 일 때마다 떠오르는 화두다. 특정 기관에서 성추문 혹은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이나 국회의원 등은 그 기관에서 폭력예방교육을 잘 시행하고 있었는지를 검토한다. 폭력예방교육을 시행할 의무가 있는 기관이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는 의도다.

그러나 故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이 발생한 서울특별시청은 지난 2018년 폭력예방교육 우수 기관으로 선정된 바 있다. 해당연도는 사건의 피해자가 근무하고 있던 해였다. 이 괴리는 폭력예방교육 자체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폭력예방교육이란
폭력예방교육은 왜곡된 성 인식 및 문화를 개선하고 안전한 사회를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법정의무교육이다. 여러 법령에 근거해 모든 △공직유관단체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초·중·고등교육기관 △특별교육기관에선 매년 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학교 포털에 접속할 때마다 폭력예방교육 안내문이 보이는 이유도 대학교가 교육 의무 시행 대상인 고등교육기관에 속하기 때문이다.

폭력예방교육은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소관이며, 여가부 산하 권익증진국 권익기반과에서 관리한다. 따라서 교육의 세부적인 운영지침은 권익기반과에서 매년 예방교육통합관리 시스템을 통해 배포한다. 배포된 운영지침에 따라 각 기관은 △연간 교육 계획 수립 △교육 시행 △교육 참여 인원 파악 △결과 보고 순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또한, 기관의 교육 시행에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가부에선 매년 각 기관의 교육 실적을 점검한다. 운영지침에 미리 공지한 실적 점검 기준표에 따라 각 기관에서 시행한 교육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일정 점수에 미달하면 부진 기관으로, 점수가 높으면 우수 기관으로 선정해 언론에 공표한다.
 

전문가가 만든 교육 내용 그러나···
폭력예방교육은 법정의무교육이므로 교육에 어떤 내용이 포함돼야 하는지도 시행령으로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성폭력 예방교육의 교육 내용에는 △건전한 성의식 △성인지 관점에서의 성폭력 예방 △성폭력 방지를 위한 관련 법령 소개 등이 포함돼야 한다. 나아가 교육 대상자들의 특성에 따라 핵심 교육 내용을 달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법적 절차 이해 △성인지적 인식개선 △폭력의 영향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해야 한다. 교육 대상인 대학생과 조직인 대학 특성을 고려해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교육 목표에 맞게 잘 마련된 것 같아 보이는 내용이 정작 교육 대상의 정서와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교육 이수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는 내용을 성인들에게 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며 교육 수준의 적절성에 의문을 내비쳤다. 우리 학교에서 폭력예방교육을 이수한 학생도 마찬가지다. 손현유<국제학부 19> 씨는 “한 시간 내내 누구나 아는 정의와 사례를 설명하는 강의에 집중하긴 어려웠다”고 수강 후기를 전했다.

폭력예방교육에 어떤 내용을 포함해야 할지 전문가들이 궁리했다고 하나, 실제로 교육을 들은 사람들은 교육 내용이 자신들에게 왜 필요한지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수율’에 집중한 성과 평가 기준
연간 계획한 폭력예방교육이 끝나면 각 기관들은 교육 성과를 평가받게 된다. 현 예방교육 성과 평가는 각 기관 내 교육 대상자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육에 참여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다. 교육 실적 점검 기준표에 따르면 교육 대상자들의 교육 ‘이수율’이 총점수의 70%로 평가 기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가부 권익기반과 직원 B씨는 “폭력예방교육에 관해 각 기관에게 부여된 법적 의무는 사실상 교육을 실시하는 것까지”라며 “실시한 결과 교육을 몇 명이 들었는지가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양적 지표이기 때문에 이수율로 실적을 평가하는 것”이라 답했다. B씨는 “이수율을 주요 평가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이미 오래전부터 법으로 규정돼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제는 이 ‘이수율’이 교육의 주요 성과 지표로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실시하는 예방교육의 경우, 교육을 제대로 듣지 않고 동영상을 틀어놓기만 한 사람도 교육 이수자로 집계된다. 오프라인이라도 출석만 하면 교육 이수자로 집계된다. 우리 학교 교직원 C씨는 “여가부에게 평가받는 학생 이수율과 학생들이 실제로 교육을 제대로 들었는지는 별개인 것 같아 우리 학교는 교육의 질적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방교육통합관리 홈페이지의 대국민 공개 자료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청 내 종사자들의 폭력예방교육 이수율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100%에 가깝다. 서울특별시청에서 오랜 기간 동안 성추행이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과는 모순되는 우수한 이수율이다.

교육  효과 측정은 뒷전
단순 이수율 이외에 폭력예방교육의 질적성과를 점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교육 이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가 있다. 폭력예방교육의 질적 성과는 교육을 이수한사람의 수가 아닌 교육의 ‘효과’다. 여가부에선 각 기관들이 교육의 효과를 점검할 수 있도록 운영 지침에 설문조사 예시를 첨부했다. 첨부된 설문조사로는 △교육만족도 조사 △교육 전후 효과 조사 △교육효과성 및 만족도 조사 △예방교육 개선의견 조사가 있다.

그러나 설문조사를 기관에서 시행하는 것은 권고 사항일 뿐이다. 실제로 여가부 권익기반과 직원 B씨는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관들이 교육 효과를 점검하고있는지는 모른다”고 답한 바 있다.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이수율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심이 드는 지금, 여가부에서는 적극적으로 각 기관이 교육의 질적 성과를 점검하게끔 권고 이상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폭력예방교육이 법정의무교육이 된 것은 이 예방교육이 각종 범죄 근절에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만큼 중요한 교육이라면 총괄 부처에서는 시행 단계 별로 세세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후에도 꾸준한 점검과 수정을 해나가야 한다. 제도가 부실한 상태에서 하위 기관과 교육 대상자들에 의무만 계속해서 부과한다면 폭력예방교육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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