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계 BK21 사업 예비 선정 가운데 우리 학교, 기초 학문 위기령
4단계 BK21 사업 예비 선정 가운데 우리 학교, 기초 학문 위기령
  • 배준영 기자
  • 승인 2020.10.12
  • 호수 1519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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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4단계 BK21 사업에서 총 29개 교육연구단·팀 선정 

그러나 쾌거 속 기초 학문 연구 부실화 우려 제시돼

바람 앞 촛불 격, 기초 학문 진흥을 위해 학교가 앞장서야…

지난달, 우리 학교 양캠퍼스가 4단계 BK21 사업에서 크게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BK21 사업은 미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우수 대학원의 교육·연구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석·박사과정생 및 신진연구인력(박사 후 연구원 및 계약 교수)을 집중 지원하는 7년 단위의 고등 교육 인력양성 사업이다. 선발 대상은 학과(부) 소속 교수 7인 이상으로 구성하되 전체 교수의 70% 이상이 참여하는 교육연구단과 학과(부) 소속 교수 3인 이상으로 구성된 교육연구팀으로 구분되며 68개 대학 386개 교육연구단과 176개 교육연구팀이 위 사업에 예비 선정됐다. 이후 예비 선정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과 현장 점검을 통한 제출 자료 허위 여부 확인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우리 학교는 서울캠퍼스 총 21개·ERICA캠퍼스 총 8개의 교육연구단·교육연구팀이 선정되며 △서울대(46개) △성균관대(32개) △고려대(30개)에 이어 연세대(29개)와 공동 4위를 차지했다. 

이번 BK21 사업 예비 선정 결과에 따르면 양적으로는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같은 쾌거 속에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지난 3단계 BK21과 마찬가지로 기초 학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자연과학·인문학 분야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은 교육연구단과 교육연구팀 두 단위로 나뉘어 신청을 받는데, 우선 교육연구단에선 총 27팀을 선정하는 △생물 △수학 △화학 등이 속한 ‘기초 과학 분야’ 및 총 8팀을 선정하는 △문학 △역사 △종교·철학 등이 속한 ‘인문학 분야’에 우리 학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동시에 기초 과학 분야의 교육연구팀 역시 지난 3단계 BK21 사업이 진행됐던 당시 두 팀이었던 것에 반해 한 팀으로 감소해 입지가 줄었으며 인문학 분야 역시 ERICA캠 소속 교육연구팀 한 팀이 선정되는 데에 그쳤다.

지난 제6차 대학평의원회(이하 대평) 회의록에 따르면 대평 의장 역시 위 같은 상황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바로 ‘기초 학문’을 대하는 우리 학교의 태도와도 직결된 문제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업이 선정돼 지원금을 받는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인문대학장 유성호<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대학 밖에서 기초 학문이 연구되는 곳은 대개 부가적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기업이나 이익단체의 부설 연구소”라며 “학문의 효율성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기초 학문에 관한 연구가 가능한 곳은 대학밖에 없다”고 답했다. 즉 대학의 존재 가치를 명확히 하는 동시에 기초 학문의 진흥을 위해선 해당 분야에 대한 지속적이고 심화된 연구 및 연구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학교가 보인 연구 지원에 대한 태도는 적절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다소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6차 대평 회의록에 의하면 기초 학문 연구에 대한 BK21 사업 선정 실패 사유를 두고 생명과학과의 경우 학교 본부의 소극적 태도를 문제 삼았다. 다른 학교와 비교해 교수 인원수 등의 학과 규모에서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고, 학교 측에 교수 충원을 요청했으나 이미 적정 교수 인원수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기초 과학 분야에서 교육연구단으로 선정된 중앙대 생명과학과의 경우 우리 학교보다 20~25% 이상의 교수진을 확보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위 같은 학교의 태도는 해당 학과뿐 아니라 기초 학문을 대하는 우리 학교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줬다.

또 “기초 과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우리 학교는 건학이념이나 총장의 운영전략이 실용 기술 중심이기에 기초 과학 인프라가 잘 구축됐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 대평 의원의 입장이었다. 동시에 타 대평 의원은 일부 과의 경우 “지급되는 연구비의 규모에 따라 본부가 관심을 두고 신경 써주는 정도가 달랐다”며 학교 본부가 행한 교육연구단 간 차별적 대우를 비판하고, 학교 측의 지원을 받는 데에 어려움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인문대의 경우 4단계 BK21 인문학 분야에서 두 개의 교육연구팀을 준비했으나 끝내 선정되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교수 A씨는 탈락 사유에 대해 “지원 대학은 많고 선발되는 인원이 적다 보니 경쟁률이 매우 높았던 점도 있고, 학교에서 교수 인원 확보와 같은 정책적인 배려가 다른 대학에 비해 조금 덜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준비 과정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는 터, 탈락 사유를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A씨는 “우리 학교가 인문학과 같은 기초 학문보다 공학이나 실용 학문에 비중을 둠으로써 다른 대학과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에 대해선 존중한다”면서도 “인문학의 홀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에 대한 보호·배려에 대학 본부가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사안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까닭은 기초 학문에 대한 연구 지원의 효과가 해당 연구를 직접적으로 진행하게 될 교수와 대학원생에 국한돼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유 교수는 “연구가 심화되며 누적된 연구 결과가 교육에 반영되고, 교육을 하다 보면 연구가 요청되는 일종의 선순환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기초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곧 ‘교육’의 질 제고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가 보여준 특정 연구 분야에 대한 편향적인 태도는 곧 교육에 대한 편향으로 이어져 학부 범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은 기정사실이다. 

실용 학문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서 시대를 역행하면서까지 기초 학문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기초’라는 단어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초 학문은 오랜 역사 동안 축적되며 갖춘 지식 체계로 문제 인식·해결을 위한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므로 급변하는 현대 사회를 바르게 직면하기 위해 기초 학문을 연구·교육하는 것은 필수불가결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대학의 의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대학의 제 역할을 찾고 기초 학문 연구·교육의 쇠락을 막기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학문에 실용성의 추를 달고 무게를 재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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