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독재까진 아니어도 갑질은 분명한데…
[장산곶매] 독재까진 아니어도 갑질은 분명한데…
  • 이예종 편집국장
  • 승인 2020.09.28
  • 호수 151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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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예종<편집국장>

'삭’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웹툰 「헬퍼」의 작가 신중석 씨와 방송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 출연해 전성기를 맞은 예명 ‘기안84’인 작가 김희민 씨 등이 연이어 여성혐오 표현을 이유로 파장을 맞게 된지 한 달이 지났다. 특히 김 씨의 웹툰엔 장애인 비하 논란도 있었지만,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여 대중으로부터 방송 하차 요구를 받은 전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 18일, 웹툰 「신과 함께」로 큰 성공을 거둔 웹툰 작가 주호민 씨가 앞선 혐오 표현 논란과 관련해서 ‘시민독재’라는 단어를 들어 설명한 것이 화제가 됐다. 주 씨는 “옛날에 국가에서 검열을 했다면 지금은 시민과 독자가 검열한다”며 독자들이 웹툰에 간섭하는 행위를 비판했다. 대중으로부터 큰 반발에 놓인 주 씨는 “시민독재는 과장된 실언”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창작물 시장에서 수용자 주도 규제는 중요하다. 이를 독재라고 표현하는 것도 부적절했을 수 있다. 하지만 수용자 주도의 규제가 과도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주 씨를 위시한 창작자들의 딜레마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사실이다. 최근 시청자 주도의 규제를 보면 위의 기본 원칙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에게 수용자 자기 생각을 강요하려는 행보가 늘어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 창작자들은 ‘뭘 표현할지’ 고민하고 신묘한 아이디어를 짜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창작물을 ‘내보내도 될지’를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수용자들은 창작자의 풍자를 비난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혐오자로 낙인찍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젠 ‘창작물에 대한 독자들의 지나친 간섭’ 논란을 더 이상 덮어두기는 어려워졌다. 

이는 웹툰 콘텐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창작활동에 전부 적용되는 이야기며, 방송 콘텐츠에선 ‘훈수질’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직접 방송의 방향과 운영에 개입하고, 시청자 개인이 원하는 대로 방송이 이어지길 요구한다. 1인 미디어의 장점이라 볼 수 있는 직접적·실시간 커뮤니케이션 특성에서 파생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방송인은 매 순간 방송 흐름에 신랄하면서도 통일되지 않는 평가와 강요를 받아들이면서 시청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종종 단지 간섭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의 태도나 기량을 지적하는 시청자 일부에 의해서 심각한 혐오 표현과 모욕적 언사가 번지기도 한다. 지난 31일, 초(超)유명 프로게이머 이상혁<T1> 씨의 방송에서 발생한 ‘할머니 패드립’ 사건이 해당 사례다. 선수의 기량에 대한 지적으로 포장한 모욕에 불과했다. 이런 경우 자율규제를 제외하면 어떤 필터링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수용자 주도 규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와이즈앱’ 통계를 참고하면 한 달 동안 유튜브에 10대는 41시간, 20대는 31시간을 할애한다. 50대 역시 20시간에 달할만큼 유튜브 사용자는 노소를 불문하고 폭증하고 있다. 한 편 2018년, 매일 트위치를 이용하는 우리나라 시청자 수만 50만 명이다. 위와 같은 거대 플랫폼들에서 창작자들이 △고인 모독 △소수 집단 희화화 △역사 왜곡 △인종 차별 △청소년 보호법 위반 등 기본 원칙들을 무시하는 콘텐츠는 삐걱대며 운영되는 자율규제만으로 막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엔 영상이든 웹툰이든 정당한 ‘미디어 리터러시’로 콘텐츠를 제대로 분별하고 평가하면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 스스로 콘텐츠를 교정해내려고 한다. 창작자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미디어 코렉트니스’로 변질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 논리와 정치적인 이유까지 들어 창작자를 향한 ‘공격’은 그만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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