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시를 짓고, 노래를 하는가
사람은 왜 시를 짓고, 노래를 하는가
  • 조은비 기자
  • 승인 2020.09.28
  • 호수 1518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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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자국에선 돈을 벌 기 회가 적어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다. 마침 우리나라 에서도 더럽고(Dirty), 위험하고(Dangerous), 어려운(Difficult)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할 사람이 없어 그들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현재 우리나라는 ‘고 용허가제’를 통해 외국 인력이 우리나라 로 들어와 3D업종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외국에서 온 노동자 들에게 발급되는 비자 중 대부분을 차지 하는 E-9 비자는 비전문취업비자로 △건 설업 △농축산업 △어업 등에 취업을 할 수 있는 비자다. 정부는 E-9비자로 들어 온 사람들을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신 청한 기업들에 임의로 배정한다. 이 ‘고용 허가제’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찬반 논쟁 이 이어져왔다. 크게는 ‘현대판 노예제도’ 라는 입장과 ‘불법체류 방지 조치’라는 입 장이 있다.

여러 입장 차에도 분명한 것은, 고용 허가제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쪽 중 어느 누구도 ‘이주노동자들의 손쯤이야 잘려 나가도 괜찮다’고 한 이는 없다. 한국의 고용주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해도 된다고 말하는 쪽도 없다. 이주 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감금, 폭행 등을 당하고, 영혼을 갉아 먹히는 것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 무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고용허 가제가 도입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빈 번하다. 지난 2019년 설립된 주한미얀마 노동자복지센터가 체불된 미얀마 이주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신 받아준 금액만 현재까지 약 8억 원이다. 고장 난 프레스 에 손가락 4개가 잘린 한 이주노동자는 노동부에서 조사하러 오기 전 기계를 고 쳐버린 고용주 때문에 보상을 받지 못했 다. 올해의 일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마주 하는 한국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 나라의 제도와 자 본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분위기 를 온몸으로 겪게 될 때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이들은 거리로 나 와 투쟁한다. 어떤 이들은 배정받은 사업 장을 탈주해 불법 체류자가 되는 길을 선 택한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시를 썼다.

「고용」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中 - 러메스 사연
나는 어느 회사의 직원입니다 / 우리 사장님은 이 도시에서 수많은 / 굶주림과 결핍의 신입니다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이자 시인인 러메스 사연 씨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 국에 왔다. 러메스 씨는 여느 이주노동자 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가 배정해준 사업장에 가서 노동을 했다. 그곳에서 만 난 ‘월급을 주는 사람’을 러메스 씨는 ‘신’ 이라 표현했다.

어느 날 사장님께 말했지요 /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의 신이시며 / 내 삶은 당신의 은덕입니다 / 그래서 생일을 /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요 / 휴가를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 내 덕분에 너는 오래 살 거야 / 이번에는 일이 많다 / 내년에 생일을 잘 보내도록 해라

나는 네라고 말했어요

어느 날 다시 사장님께 부탁을 했지요 / 사장님, 당신은 굶주림의 신의 / 신이십니다 당신의 자비로 집을 꾸며주세요 /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 저에게 휴가를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 좋은 날들은 또 올 거야 / 이번에는 일이 많다 / 다른 길일에 결혼하도록 해라 / 나는 다시 네라고 말했어요


학창시절부터 시작해 시를 쓴 지 20여 년이 넘은 그에게 있어 ‘시’란 “일생 동안의 경험의 표현”이자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다. 러메스 씨는 한국에 와 직접 겪은 경험들을 시로 옮겼다. 그는 실제로 월급 을 주는 신의 말들에 언제나 ‘네’라 대답했 다. 그 신이 다른 날에 결혼을 하라 했기 때 문에 그렇게 했다. 굶주림과 결핍으로부터 구원해준 신이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삶에 너무도 지쳐서 / 내가 말했어요 /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과 결핍을 / 해결해주셨어요 /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 이제는 나를 죽게 해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 알았어 /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 / 그 일들을 모두 끝내도록 해라 / 그리고 내일 죽으렴!


그는 “어떤 사건을 통해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이 시의 영감을 준다”며 “시는 나 의 의식과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 이라 전했다. 그는 어느 날 월급봉투를 쥔 굶주림과 결핍의 신이 자신의 삶과 죽음 까지 통제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 리고 그 때 느낀 것을 시로 옮김으로써 “내 감정이 만족된다”고 했다.

러메스 씨를 포함한 36인의 네팔 노동 자들은 시인이 됐다. 이들이 한국에서 쓴 한국어 시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가 지난 18일 출간됐다. 이들이 시를 쓰는 것은 ‘시의 힘’ 때문이다. 펜을 들고 경험 과 감정을 표현할 고귀한 단어를 고를 때, 아무도 듣지 않는 내적 감정을 종이 위에 토로할 때 “그 순간만큼은 비참한 현실이 괜찮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모여 시를 짓고 낭송했다. 그로써 이들은 영혼 없는 기계 부품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음악을 한다

스탑 크랙다운(탄압을 멈춰라)’이라는 이름의 밴드가 있다. 2004년 이주노동자 들의 천막농성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결 성한 밴드다. 당시는 정부의 폭력적인 단 속으로 14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을 하고, 참다못한 사람들은 회사를 뛰쳐나와 천막 아래서 ‘단속과 탄 압을 멈추라’는 ‘Stop Crack Down’을 외치 던 때였다. 밴드의 원년멤버이자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소모뚜 씨를 만났다. 유명인사인지라 지금까지도 소모뚜 씨에 게 인터뷰 요청이 많은 듯 했다. 그는 100 번은 더 넘게 받은 것 같은 질문들에 표 정 없이 대답했다. 그랬던 그가 음악 이야 기에 눈을 반짝였다.

손무덤」 中 - 스탑크랙다운

기계 사이에 끼어 팔딱이는 손을 비닐봉지에 싸서 품에 넣고서 화사한 봄빛에 흐르는 행복한 거리를 나는 미친놈처럼 한 없이 헤매 다녔지

밴드가 결성된 2004년은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시집 「박노해, 노동의 새 벽」 출간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헌정 음 반이 만들어진 해이기도 하다. 소모뚜 씨 는 그 해의 날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 다. ‘한국’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시집의 헌 정 앨범에 ‘이주노동자’ 밴드가 참여했으 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모뚜 씨는 동료들과 함께 얼떨떨해했다. 그는 “그러다가 노래를 만들어 불러 달라 한 시 「손무덤」을 보자마자 왜 우리에게 줬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당시 ‘스탑크랙다운’의 보컬을 맡았던 네팔인 故미누 씨는 빨간 목장갑을 끼고 「손무덤」을 노래했다.

「월급날」 中- 스탑크랙다운

오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그동안 밀린 내 월급을 주세요 날 욕한 건 참을 수 있어요 내 월급만은 돌려주세요


「손무덤」과 함께 인기를 끈 스탑크랙 다운의 노래다. 소모뚜 씨가 작사, 작곡을 모두 한 이 곡에 대해 “내 이야기를 그대 로 옮긴 것”이라 말했다. 소모뚜 씨는 당 시 ‘스탑크랙다운’이 한 노래들을 “혈기 왕성했던 청년들의 거칠고, 분노에 찬 록 (Rock)”이라 표현하며 “내 이야기를 하는 일은 밤이고 낮이고 할 수 있었다”고 말 했다. 그들에게 음악은 탈출구였다. 그래 서인지 이 때 당시 스탑크랙다운의 멤버 들은 고된 공장 일을 마치고도 연습실에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합주를 했다. “죽은 듯 공장을 다녔지만 밴드를 할 때 만큼은 자아가 살아있다고 느꼈다”고 소모뚜 씨가 회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음악도 달라 져갔다. 스탑크랙다운의 2집 앨범에 수록 된 「와」, 「사랑으로 함께해요」, 「Stop the War」 등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화합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노래다. 소모뚜 씨는 “우리의 생각이 바뀌면서 음악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살기 힘들다”면서도 “하지만 좋은 한국 사람들 을 많이 만나면서 불만만 노래하기 미안 해졌다”고 말했다.

 “사람이라면 모두 인생이 복잡할 텐데 우리 아픔까지 들어 달라고 하기 미안했다. 그래서 같이 살고자 했다. 같이 살면 각자 고된 인생을 살다가도 어느 날 ‘안색 이 안 좋다. 너 어디 아프니?’라고 물어줄 것 같았다” 이렇게 말하는 그들에게 음악 은 자기치유를 넘어, 그들이 살고 있는 세 상과 통하게 해줄 매개체가 됐다.

낯선 땅에 착륙해 이방인이 된 사람들 은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온 감각기 관으로 느낀다. 이방인 중에서도 신분이 노동자라면 견디기 힘든 차원의 경험들을 겪게 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 예술의 근원 은 이곳에서 그들이 사는 삶이다. 여기서 ‘살아있다’고 운율을 뱉어가며 스스로를 지 킨 이들의 삶은 비참하지만 품위가 있다.

도움: 러메스 사연 시인
모한 까르키 번역가
소모뚜 기타리스트
이기주 번역가
황규관 대표
김유진 수습기자 pepperyou@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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