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준비 없는 국회의 그늘 하에 우리는 무엇을 잃었나
[사설] 준비 없는 국회의 그늘 하에 우리는 무엇을 잃었나
  • 한대신문
  • 승인 2020.09.28
  • 호수 151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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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아동을 납치·성폭행해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흉악범 조두순이 오는 12월 13일, 12년의 형량을 마치고 만기 출소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조 씨의 출소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보여주듯 지난 25일 기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 글이 4천여 개가 넘게 게재됐다. 그가 사회로 복귀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으며, 국민 중 일부는 그를 격리하거나 거주 제한을 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에 국회의원들도 국민 여론에 편승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력범죄자들의 출소 후 생활에 제한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각종 입법안을 대중의 관심을 겨냥한 듯 조 씨의 이름을 포함한 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법안이 형사법의 기본원칙에 반(反)하거나 위헌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두순 격리법안’에 포함된 내용인 ‘출소 후 보호수용시설에 수용·관리하는 것은 헌법상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또 ‘조두순 감시법’ 중 일부인 주거지에서 200m 이상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가택 연금에 해당하기 때문에 거주 및 이동 기본권을 제한하며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해당 법안을 제정한다 해도 조두순은 이미 주어진 형량을 모두 마쳤기에 형법상 추가 규제를 할 수 없다. 국회의원 중 일부는 ‘*소급적용’을 제안했지만, 이는 형평성 측면에서 비합리적이다.

이처럼 조 씨의 출소에 대한 사후 처리를 두고 공방이 일은 와중, 그 이면엔 국회의 준비 없는 태도가 존재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문제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조 씨가 수감됐던 12년의 충분한 시간을 뒤로한 채, 국회는 그의 출소까지 백여 일을 앞둔 지금에 와서야 대책이라며 입법안을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내놓은 입법안조차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되지 못하며 국가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에 반(反)하기까지 한다. 이는 국회가 또 한 번 대중의 인기 영합을 위한 ‘포퓰리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방증한다. “조두순을 격리하고 가두라”는 국민의 호소는 그들에게 정치적 이익을 위한 ‘입법 아이템’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로 범죄자의 재범을 막고, 범죄 억지력을 높이고자 했다면 지난 12년을 결코 물 흐르듯 흘려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조 씨의 출소를 앞둔 현 상황, 피해자를 보호하고 또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가해를 예방해야 함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수감됐던 지난 12년간, 국가는 조두순과 또 다른 제 N의 조두순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이슈가 되자’ 특별법, 특례법의 이름으로 여론을 쥐어 잡고 순간을 무마한다면, 들춰보지 않고서 마주할 수 없는 ‘근본적인 것’에 대해 논할 수 없다. 준비 없는 국회의 그늘 하에 우리는 무엇도 더 잃어선 안 될 것이다.


*소급적용: 어떤 법률, 규칙 따위가 시행되기 전에 일어난 일에까지 거슬러서 미치도록 적용하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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