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정부, 국가고시로 기싸움 중
의대생-정부, 국가고시로 기싸움 중
  • 조은비 기자
  • 승인 2020.09.20
  • 호수 1517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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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병원으로, 휴학계를 제출했던 의대생들은 학교로 돌아가면서 지난달의 뜨거운 감자였던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마무리된 듯하다. 하지만 아직 갈등의 잔재가 남아있다. 국가 공인 의사면허시험인 국가고시에 전체 응시 대상 학생 중 86%가 시험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의대생들이 정부가 추진하려했던 의료 정책에 반대한다는 표시로 꺼내든 단체 행동 방법이었다. 우리 학교 의대생들도 지난 8월부터 이번 달까지 여러 방법으로 단체행동을 하며 정부 추진 의료 정책에 반대해왔다. 특히, 국가고시 응시 대상인 본과 4학년 학생 중 80% 이상이 응시 접수를 취소했다. 지난 13일과 14일 의대생들은 해오던 단체 행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때는 이미 시험 접수일이 지난 후였다. 이것을 두고 정부에선 추가 응시 기회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의대생들을 구제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 의대생들은 ‘구제해 달라 한 적 없다’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 같은 입장 차는 ‘국가고시를 포기한 행동’이 갖는 파급력을 다르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학생과 정부 두 집단 모두 ‘국가고시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 본인이 손해를 봄’에는 동의하고 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고 시험을 포기했다. 우리  학교 본과 4학년의 교육과정은 국가고시 시험에 맞춰져 있다. 졸업반인 이들은 학교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졸업종합시험’을 반드시 봐야 한다. 국가고시에 합격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은 학생들은 이 졸업종합시험을 통과할 수 없도록 설계돼있다. 교수들은 학생들을 위해 국가고시 직전 시험 대비 강의를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진료를 봐야 하는 실기 시험에 같은 날 배정된 학생들끼리 조를 짜서 모의 진료를 해가며 실기 시험을 준비한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우리 학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의대가 시행하고 있고, 이로 인해 전국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합격률은 매년 90% 이상이다. 올해 국가고시를 보지 않겠다고 한 학생들은 교육과정의 혜택을 누리며 시험을 볼 기회를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재학 중 국가고시에 응시하지 않으면, 졸업 후엔 혼자 준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에 국가고시에 미응시한 우리 학교 학생들이 졸업을 미루고 내년에 다시 학교 안에서 시험 준비를 하려 하면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간다. 본과 4학년은 졸업을 하지 못하면 우리 학교 의대 세칙에 따라 ‘학기’ 유급이 아닌 ‘학년’ 유급이 돼 1년 치 등록금인 약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한 번 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대생 개개인의 금전적·시간적 손해는 △의대생 △의료진 △정부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반면 학생들의 ‘대대적인 국가고시 거부’가 갖는 ‘사회적 파급력’에 대해선 서로 다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생 개인의 손해는 있을지 몰라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료계 원로들은 ‘이 일이 개개인의 손실은 물론, 그보다 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의대생들이 한 발씩 물러서야 한다’고 우려한다. 국가고시 실기 시험을 추가로 시행해 이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년부터 의료 인력 수급이 어려워지며, 이것이 내년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국가고시를 치른 의대생들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1년 동안의 인턴, 3~4년 과정의 레지던트 수련 과정을 거친다. 지난 6일 마감된 국가고시엔 응시대상자 3천172명 중 14%인 446명만이 신청했다. 따라서 이들만이 내년도 신규 인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446명으로는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른바 ‘빅5 병원’의 인턴 모집 인원인 약 600명조차도 충족하지 못한다. 매년 모집인원 미달이었던 지방 소재 국립대병원들은 최악의 인력난을 겪을 수 있다. 당장 내년에는 병원 업무 보조 역할을 하는 인턴이 없는 것이지만, 그 다음 해엔 인턴 과정을 수료한 레지던트가 부족해진다. 레지던트 1년차는 보통 주치의로 일하기 때문에, 이들이 없으면 입원환자를 볼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정부는 현재까지도 “의대생들이 재응시 의사를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아 구제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코앞에 의료 인력 수급이 어려울 것이 보이는데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지만 사실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다. 의대생들의 행동에 비판적인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국민 청원과 여론조사 결과는 상당수 국민들이 의대생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싸움은  각자의 명분을 잃게 할 뿐이다. 공익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서로 생각이 달라 시작됐던 정부와 의료계의 마찰은 점점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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