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케케묵어 향기로운
[취재일기] 케케묵어 향기로운
  • 조은비<대학보도부> 정기자
  • 승인 2020.09.20
  • 호수 1517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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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적인 것은 곧 죄악이나 다름없는 시대에 필자는 신문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신문이라니, 뒤떨어지다 못해 애처롭다. 애처롭다는 생각엔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듯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기록을 위한 과정에 깊숙이 합류하면서부터다. 

3년이 넘는 대학 생활 동안 갖은 핑계로 뺀질대느라 학교에 발을 잘 붙이지 않던 필자가 이 낡은 건물에 오게 된 것은 올봄, 그때가 처음이었다. 건물에 들어서니 외관과 궁합이 꼭 맞는 케케묵은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우리 신문사에서 더욱 확실하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묵은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사건을 목격했다. 한 마디로 기삿감이었다. 이 일이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문제의식으로 똘똘 무장한 채 취재에 임했다. 요령도 경험도 부족한 터라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건에 대해 따져 묻고 다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알게 된 것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어난 사건은 하나인데, 사람들은 모두 다른 눈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따라 사건의 모양새도 변했다.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기억하는 진실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 난감한 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고, 이 낡은 곳에 들어서는 순간마다 마주하게 됐다. 고작 종이 한 장 위의 한 문장으로 요약되리만큼 사람들은 그리 단순치 않았다. 단순치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더더욱. 

단순치 않은 것을 단번에 쓸 수 없었다. 무지한 필자가 감히 그중 몇 개를 취사선택해 기록하려니 오래 걸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문장도 대충 쓸 수 없어진다. 자연스레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 내보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 끝에 명쾌한 답을 찾았냐고 묻는다면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더 듣고, 더 볼걸’ 매번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점점 ‘능률’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빨리빨리’가 미덕인 나라에서 거꾸로 걷고 있는 셈이다. 차차 묵은내에 익숙해졌다. 

신문은 새로운 소식과 견문을 담은 종이라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새로운 것을 신속히 전하는 일은 종이신문의 것이 아니게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필자는 이곳에서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가. 나름의 시간과 공을 들인 견문이라 하겠다. 얕은 겉면만 훑어 다 아는 체 하는 기사를 쓰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시간을 들인다. 그 복잡한 세상에서 기록돼야 할 부분을 단번에 뽑아 기사를 내보내기엔 필자가 아직 설익었기 때문에 공을 들인다.

다행스럽게도 이 과정에서 고민하는 고통을 같이 느끼는 동료들이 있다. 한데 모여 아주 오래 고민한다. 그렇게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꼭꼭 눌러 담아 쓴 견문이, 비교적 주의를 기울여 읽어야 하는 촌스런 종이신문에 찍혀나가면 두려우면서도 흐뭇하다. 그렇게 이곳의 케케묵은 향기와 필자가 몸담은 일이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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