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각 소장과 그 날의 역사적 현장을 둘러보다
정진각 소장과 그 날의 역사적 현장을 둘러보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20.09.20
  • 호수 1517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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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기자는 선감학원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역사 속 비극의 현장인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로 향했다. 옛 선감학원은 현 경기창작센터 자리를 비롯한 선감동 마을 구간에 자리했던 곳이다. 비극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선감역사박물관’까지 찾아가는 길은 녹록지 않다. 양계장과 직원관사를 지나 언덕 하나를 넘으면 좁은 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컨테이너 세 개가 이어진 작은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당시의 참상과 증언 등의 자료가 모아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진각<안산 지역사연구소> 소장은 “경기문화재단에서 만든 박물관이지만 자료가 많지 않아 웅장하지 못하고 내부가 협소하다”고 전했다. 또한 정 소장은 “박물관의 개관은 40년간 선감도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고 역사의 반복을 끊어내기 위한 첫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며 “박물관 개관 자체로 그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박물관 근처에는 당시 원생들이 숙식을 해결했던 숙소와 원장 객사 등이 그대로 자리해 있다. 정 소장은 “과거 원생숙소가 남아있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도 꽤 있다”며 “역사적 현장이 이렇게 돼 매우 안타깝다”고 전했다. 원생숙소를 따라 밑으로 내려오면 경기창작센터 건물이 나온다. 주위를 잘 둘러보면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정 소장은 위령비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수많은 소년의 희생을 낳은 ‘청소년 감화시설선감학원’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설립 추진 16년 만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정 소장은 “일전에 정부에게 도움을 요청한 위령비 설립 추진 계획이 무산된 적이 있었다”며 “지금의 위령비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 없이 온전히 시민과 예술가가 힘을 모아 세운 것이라 매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정 소장은 위령비에 대해 “자유를 갈망하는 의미의 방패연, 연이 날 수 있도록 바람을 일으키고 연을 묶어두는 양면적 상황을 나타내는 얼레, 어린아이의 고귀함을 표현한 꽃잎으로 구성돼 있다”며 “지역사회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취지에 공감한 예술가들의 동참으로 생각 보다 쉽게 건립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피해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국가 폭력의 사례가 숱하게 존재한다. 그 중 하나인 선감학원이라는 잔혹한 국가폭력의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정 소장을 비롯한 뜻있는 사람들이 이 비극을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선감학원의 비극 대부분은 아직 많은 이에게 알려지지 조차 않은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피해자 보상이 이뤄질 때까지 온 국민이 국가를 향해 선감학원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해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정 소장의 뜻대로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 선감학원의 진실을 이제는 세상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길, 그렇게 선감도에도 봄이 오길 기대해 본다.

▲ 선감학원 위령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진각 소장의 모습이다.

도움: 정진각<안산 지역사연구소> 소장
이지양 수습기자 liu1535@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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