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아고라]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 조하은 대학보도부장
  • 승인 2020.09.06
  • 호수 1516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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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어요. 그냥 춤을 출 때면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아요. 마치 전율처럼”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드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영화의 대표적인 명대사로 꼽히는 이 대사는 필자가 중학교 때 쓰던 도덕 교과서에도 실렸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에 이 영화를 보여주시면서, 꿈을 향한 열망과 그것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셨다.

그러나, 이것만이 「빌리 엘리어트」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의 성장과 동시에 탄광촌 ‘더럼’에선 빌리의 아버지와 형을 포함한 광부들의 파업과 고군분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영화는 더럼마을의 모습을 통해 1984년부터 1년간 치열했던 탄광 광부들의 파업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보수당 마가렛 대처가 총리가 되고 ‘노조 길들이기’ 정책이 시행되면서 23개의 탄광이 폐쇄됐다. 이에 직장을 잃는 것을 두려워 한 영국의 광부 중 90% 가까이가 파업에 동참한다. 하지만 이들은 내부 분열과 정부와의 힘의 차이 등을 극복하지 못했고, 파업은 별다른 성과 없이 1년 만에 끝났다.

빌리의 찬란한 성장기는 파업과 함께한다. 빌리에게만 초점을 맞춰 영화를 감상하면 아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파업 도중에도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하나의 감동 포인트로 다가온다. 반면, 시야를 넓혀 영화 전체의 배경을 바라보면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좁혀지지 않는 정부와의 갈등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빌리가 멋진 발레리노가 돼 가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과거에 스스로 경멸했던 ‘노조의 배신자’가 돼 간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영화 「빌리 엘리어트」도 우리 사회의 현실을 투영한다.  한쪽에서 케이팝 스타의 온라인 콘서트가 75만 명이라는 화려한 관객 수를 자랑하는 와중에도 다른 한쪽에선 수많은 더럼마을 주민들과 같은 사람들이 다름 아닌 ‘생존’을 위해 투쟁 중이다. 저번 주에만 해도 진주에선 대리운전 기사들이 불공정 계약서 작성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농성을 벌였고, 울산에선 민주노총이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전태일 3법’ 입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가 하면 빌리의 아버지처럼 생존을 위해 부당함을 그저 참고 견디며 생업을 이어나가는 자들도 있다. 지난 5월엔 택배기사가 과로로 숨져 택배 기사의 근무 환경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휴식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공사 현장 노동자들이 폭염으로 쓰러지거나 사망했다는 뉴스는 매년 지치지않고 흘러나온다. 소외된 사람일수록, 약자일수록 이런 ‘영화 같은 일’은 더 자주 일어난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이야기일수록 더 집중해서 보아야 무엇이 문제인지, 그들이 무얼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이목이 ‘감염’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사회의 가려진 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 우리 사회는 퇴보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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