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19와 깨진 유리창의 법칙
[칼럼] 코로나19와 깨진 유리창의 법칙
  • 박진우<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
  • 승인 2020.06.08
  • 호수 1514
  • 7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진우<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

 

여러분들의 사는 집 앞에 주인을 알 수 없는 방치된 자동차가 한 대 있다고 상상해보자. 집을 나설 때, 집에 들어설 때 아침저녁으로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자동차에 무의식적으로 눈이 갈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 앞 유리창에 누군가 돌을 던졌는지 금이 가 있고, 운전석 백미러가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누가 던졌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에 자동차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도, 자동차 내부에 손에 들고 있는 쓰레기를 무심코 버릴 수도 있을 것이며, 돌팔매질의 행렬에 동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 내에 방치돼 있는 자동차는 더욱 흉물로 변해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런 사회 현상을 일컬어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라 부른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범죄학을 전공한 두 학자,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L. Kelling)이 주장한 개념이다. 1980년대 낙서투성이인 뉴욕시 길거리와 더러운 지하철에서는 범죄가 계속됐지만, 시 정부와 경찰은 이를 보면서도 방치했다. 1995년 뉴욕 시장에 취임한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는 지하철 내부를 깨끗히 청소하고, 뉴욕시 길거리의 낙서를 모두 지운 다음 CCTV를 설치해 도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단순한 정책 변화는 뉴욕시의 범죄율을 기하급수적으로 떨어뜨리는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가져왔다. 이렇듯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현실세계에서 사소한 변화 하나가 전체 사회를 망가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일상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우리들의 행동이 상황적 맥락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거의 대부분의 행동이 이성적, 도덕적으로 심사숙고한 결과물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신호가 아직 바뀌지 않았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많으면 본인도 따라 건너는 경우나, 쓰레기가 버려진 곳에 쓰레기를 무심코 버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친구들 간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다수가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정보는 신뢰하기 쉬운 반면, 아무도 믿지 않거나 부정적 반응 일색인 정보는 무시하게 될 공산이 크다. 이런 현상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나 행동이 본인의 주어진 상황에서 일종의 규범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주변 타인들의 행위나 반응에 대한 관찰과 분포에 대한 유사 통계적 추론(quasi-statistical inferences)을 통해 얻는 행동의 규범적 기준을 우리는 서술적 규범(descriptive norms)이란 용어로 통칭한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눈팅해보면, 코로나19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지구인들과는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듯한 우주인들의 포스팅을 심심치 않게 목도하곤 한다. 물론 집에서 매일매일 셀프 자가격리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그리 쉬운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찍은 인생컷(심지어 마스크조차도 착용하지 않은)을 업로드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상호작용하는 행위는 생각보다 큰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알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관찰 가능한 범위 안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서술적 규범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여러분들의 무심결에 올린 소셜미디어 포스팅이 집 앞의 방치된 자동차의 깨진 유리창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코로나19의 빠른 종식과 이를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을 비롯한 많은 사회구성원을 위해 성숙한 한양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