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속지 마라. 작품이 주는 윤리적 기만에
[장산곶매]속지 마라. 작품이 주는 윤리적 기만에
  • 오수정 편집국장
  • 승인 2020.05.24
  • 호수 1512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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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편집국장>

 

“이제 나에게는 에레혼의 개종을 위해 계획을 펼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새뮤엘 버틀러의 책 「에레혼」의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의 최종 선택을 암시하는 문장이다. 위 대목에서 필자는 주인공 행위에 대한 공감과 비판 사이에서 망설여야 했다.

에레혼은 ‘nowhere’, 즉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을 뜻하는 말로, 고도의 기계 문명에 반감을 느낀 에레혼 주민들은 모든 기계 문명을 거부하고 비이성을 정당한 가치로 받아들였다. 주인공은 우연히 에레혼에 당도해 에레혼 주민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다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난 뒤 함께 에레혼을 탈출한다. 그 뒤 주인공은 기계를 대동해 에레혼을 정복할 것을 결심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필자는 현재의 윤리에 반하는 가치가 통용되는 에레혼을 정복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로 느껴질 뿐 아니라 오히려 퇴보한 그들을 진보시켜주는 주인공의 당찬 태도를 순간적으로 지지할 뻔했다. 그러나 주인공의 행위는 옹호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주인공의 논리가 제국주의 시대 열강의 국권 침탈 정당화 논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의 행위에 대한 순간적인 판단 유보는 앞선 서사에서 주인공의 논리를 따라가다 생긴 일시적 오류였고 결과적으로 식민지배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주인공의 태도는 비판이 당연했다. 

필자의 오류는 비윤리적인 주인공을 내세우는 하위모방 양식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평론가인 노스롭 프라이는 문학을 주인공의 유형에 따라 다섯 가지 양식으로 구분했는데 주인공이 자신이 처한 환경보다 뛰어나지 않고 평범한 존재일 때 ‘하위모방’이라고 정의했다. 하위모방 양식은 주인공을 우리와 같은 보통의 인물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감정 전달에 탁월하며 우리는 작품 속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더 잘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의 평범한 삶을 다룬 작품은 대다수 하위모방 모델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독자는 쉽게 주인공과 심리적으로 동화된다. 

그러나 현대의 하위모방 양식의 작품 속 주인공이 범죄자일 때 우리는  주인공에게 동화되지 않고 비판할 수 있을까.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인간수업」이라는 작품을 둘러싼 논란은 위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수업은 청소년 성매매 포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청소년 범죄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지수’는 도박 중독에 빠진 아버지로 가난한 환경에 처해 평범한 삶을 목표로 돈을 번다. 그러나 가난할수록 평범한 삶을 꿈꿀 수 있는 비용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기에 지수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성매매 산업에 뛰어든다.

「인간수업」이 공개되고, 주인공이 윤리적 고민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극이 전개된다는 특성상 범죄자의 서사를 강조해 범죄 사실을 옹호할 수 있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이를 의식해 인간수업을 집필한 진한새 작가는 “끔찍한 현실에 대해서 반추할 기회를 마련하는데 미력하게나마 기여했으면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인간수업은 이미 존재하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외면됐던 범죄를 직시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수업이 범죄를 그리는 과정에 윤리적 기만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작품임은 분명하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범죄에 빠져드는 과정을 ‘돈’ 때문으로 포장하고 주인공이 범죄 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조력자가 나타나 돕는 서사는 시청자가 주인공의 범죄 사실보다 그의 서사에 집중하게 만들고 심지어 주인공의 범죄가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범죄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논의는 배제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수업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희석된 채 ‘범죄 사실 미화’라는 불편만 남는다. 

범죄자의 서사를 그린 작품을 더욱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작품이라는 이름 아래 윤리적 문제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주인공에 동화된 시청자는 윤리적 논의는 놓치고 가해자의 서사를 두둔하게 된다. 이미 현실에서도 가해자의 서사로 범죄 사실을 희석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작품은 윤리적인 문제를 다룰 때 더 민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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