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부 지식인을 위하여
주변부 지식인을 위하여
  • 한대신문
  • 승인 2006.09.17
  • 호수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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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거일의 『보이지 않는 손』(문학과지성사, 2006)

복거일의 『보이지 않는 손』은 지식인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주변부 지식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 준다. 그는 주변부 지식인의 비애를 ‘지식의 전선’에 대한 무지에서 찾고 있다. 그는 주변부 지식인들은 “지식이 어디에서 형성되었고, 지식의 군대가 무슨 목표들을 공격하는지, 그 목표들을 얻기 위해서 무슨 전술을 쓰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변부 지식들은 항상 재발견과 재발명의 위험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위험은 발전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뚜렷하며, 그로 인해 "한국 땅에서 정말로 뜻있는 연구를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고 고백한다. 이어서 그는 예술에서는 “온갖 문제들을 안은 주변부가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문학에서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언어를 매체로 하는 문학에서 중심부의 사람들이 모르는 언어를 모국어로 가졌다는 사정은 실질적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이라고 하면서 줄곧 한자문명권의 중심부인 중국 대륙의 변두리에 불과했던 조선조 지식인 중의 하나인 박인량을 통해 그 고뇌의 일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러한 박인량의 고뇌는 시공을 뛰어넘어 자신을 포함한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작가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놓인 이러한 상황을 ‘지식의 물매(흐름)’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그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지식의 물매가 인류의 역사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유럽 문명이 동아시아 문명을 지배하고, 다시 동아시아 중에서도 유럽 문명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일본이 19 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를 지배하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단순한 물리적인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지식의 논리로 바라보고 있는 그의 관점은 그다지 새롭거나 문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근대 동양의 역사는 서양 문명의 높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보아야, 비로소 제 모습이 보인”(120쪽)다는 그의 논리는 다분히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부 지식인의 문제와 관련하여 작가는 그러한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이 “균형을 유지하고 주변부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중심부에 대한 열등감을 풀어낸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주변부 지식인이 스스로 중심부에 흡수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지만 “국수주의자가 되면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고 보고 있다. 그가 보기에 국수주의는 ‘열등감을 다스리지 못한 채 그것을 안고 부대끼는 길을 고를 만큼 마음이 넓고 튼튼하지 못한 주변부 지식인이 취하는 하나의 길‘인 것이다. 그는 자신은 “지식의 물살이 거세게 흐르는 비탈에 설 운명을 타고 태어난” 존재이며, 자신은 “나라도 민족도 아”닌 그 “주변부 지식인이라는 그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주변부 지식인에 대한 그의 생각은 중심부 혹은 중심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개체의 차이를 토대로 한 자신만의 독특한 퍼스펙티브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부는 오히려 주변부이기 때문에 중심부에서 볼 수 없는 세계까지도 볼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전략적으로 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정체성 탐색을 가능하게 하는 고뇌의 영역을 거느림으로써 새롭고 역동적인 창조적 파토스를 생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주변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그것을 넘어서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스스로를 주변부 지식인이라고 말하면 정말로 우리는 지식세계의 장에서 밀려난 소외받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일까? 우리는 늘 주변부 지식인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소외를 경험해 왔지만 그 소외란 결국 우리의 이러한 인식 태도가 만들어 낸 것 아닌가? 주변부 지식인이기 때문에 가지는 불안정과 자유로움과 같은 엄청난 파토스와 에너지를 우리 스스로가 감지하지 못한 채 주변부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려 온 것은 우리 지식인들이 가장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심부로부터 오는 지식을 단순히 수입하는 데 급급해 온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그 문제는 두고두고 부끄러운 우리 지식사의 한 장으로 남을 것이다.

이재복 <문학평론가, 국문대·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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