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언제까지 사람 잃고 외양간 고칠 것인가
[장산곶매] 언제까지 사람 잃고 외양간 고칠 것인가
  • 오수정 편집국장
  • 승인 2020.05.03
  • 호수 151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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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편집국장>

 

지난달 29일 이천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당 참사의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레탄 작업 중, 우레탄 폼에서 나온 유독가스가 화재 규모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화재 원인으로 해당 건물이 이미 ‘화재 위험 주의’ 경고를 수차례 받았지만 공사 업체가 이를 소홀히 여겼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기되며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해당 참사는 ‘세계 산재 노동자 추모의 날’의 다음날, ‘노동자의 날’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가 2008년 4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과 ‘판박이 사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화재 사고에 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008년 1월 발생한 이천 냉동 창고 사고 이후 강화됐다던 유해위험 방지계획서 등에 사고 위험이 지적됐지만 철저히 무시됐고, 결국 노동자들은 떼죽음을 당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냉동 창고 화재 사고와 이번 사고 모두 기업이 건물 외벽을 유독가스와 가연성이 높은 스티로폼과 우레탄폼 단열재가 내장된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한 것을 대형 참사의 주범으로 꼽고 있다. 이는 기업이 공사 단가를 낮추기 위해 화재 위험을 무시한 결과다. 

우리는 ‘석탄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의 죽음’, ‘구의역 김군 사망 사고’ 그리고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까지 수많은 노동자의 사망을 지나왔다. 노동자의 안전은 당연한 가치여야 하지만 매번 보장받지 못했고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2천여 명이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이는 OECD가입국 가운데 1위며 유럽 연합의 5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올해부터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일명 ‘김용균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벌써 약 20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으며 통계적으로 매일 약 6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산재사망에 주목하지 못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일하다가 사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해 11월 21일에 발행된 경향신문의 1면이 다시금 기억났다. 이날 경향신문의 1면은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천200명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1200’으로 압축된 수를 넓은 종이에 펼치니 짧은 숫자가 줄 수 없는, 넓이가 전달하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1천200명의 죽음 중 그 어느 하나도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었다. 우리는 매년 2천여 명이 넘는 노동자를 산업재해로 잃으면서 숫자에 무감각해졌고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무의미한 통계적 수치로만 지나갔다. 

산재사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정부와 기업이 가장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산재사망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언급했다. 산재사망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의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이천 냉동 창고 사망 사건 때 기업은 단 2천만 원의 벌금을 냈을 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사건은 종결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국내에서 산업재해로 재판을 받은 최고 경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안전에 대한 시설 투자보다 사고가 발생한 뒤 지불하는 벌금이 더 싸기 때문에 기업은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기업이 저지르는 살인을 묵인해줬다. 심지어 기업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을 개인의 안전불감증으로 축소하곤 한다. 실제 우정본부는 집배원 46명이 사망한 것을 두고 ‘개인 특수 사례’라고 일축했다. 이 쯤 되면 산업재해를 ‘사회적 타살’로 봐도 무방한 듯하다. 

필자가 무사히 보낸 오늘, 누군가는 산업재해로 퇴근하지 못했다. 산업 현장에서 떨어졌거나, 깔렸거나 혹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 죽었을 것이다. 또는 업무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수도 있다.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사망을 이례적으로 생각하는 날이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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