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 모두의 리그가 돼야 한다
[사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 모두의 리그가 돼야 한다
  • 한대신문
  • 승인 2020.05.03
  • 호수 1510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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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이하 총선)에서는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을 용이하게 하고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위성 정당의 난입으로 그 목적이 상실되고 말았다. 소수 정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고 우리는 또다시 거대 양당이 독식한 국회를 갖게 됐다. 장애인, 탈북민 등 비주류 계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여성 당선인은 전체의 1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81%는 남성 의원이다. 더욱이 300명 중 20·30세대는 고작 13명에 불과해 ‘늙은 국회’라는 오명을 지울 수 없게 됐다.

선거 때마다 각 정당은 여성 후보의 비율을 할당하거나, 비례대표 후보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 계층을 두면서 다양한 계층을 국회에 입성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런 정책들은 당선을 위한 공수표에 불과했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여기서 대표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국회 구성원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즉, △계급 △계층 △성별의 구성에 우리 사회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 모두 우리 국회는 전혀 대표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가치를 넘어 공동체를 존속하는데 핵심적인 요소가 됐다. 그러나 이번 총선 이후 시각장애인 비례대표 당선자의 안내견 출입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행 국회법상 안내견 출입을 제한하는 법안은 없다. 그러나 국회법 제148조 ‘회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이나 음식물의 반입을 금하는’ 규정에 따라 관례적으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안내견의 출입을 막아온 것이 논란을 키운 것이다. 우리는 국회 밖에서 다양성에 대해 목놓아 부르짖지만, 국회 안에서는 여전히 실천하기 어렵고, 낯설다. 

각 시대에는 따라야 할 흐름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캐나다 총리 트뤼도는 2015년 취임 때 남녀 동수의 파격적인 내각을 구성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2015년이기 때문에’라는 답변을 남겼다. 그 뒤 2017년 트뤼도 내각은 성전환자 보호안을 법적으로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유 불문, 시대정신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된 국회 구성은 캐나다 사회에 다양성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우리 국회도 앞장서서 이런 시대 흐름을 이끌어 가야 한다. △복지 △청년 문제 △평등같이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다양한 관심사와 이념을 국회에 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국회는 사회의 다채로운 모습을 담은 작은 대한민국이 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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